교육의 창·김명희>완벽한 바나바
김명희 아동문학가
2024년 06월 30일(일) 18:11
김명희 아동문학가
“제 아이가 학교를 자퇴 하려고 하는데 이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고등학생을 둔 엄마의 말이다.

어떻게든 고등학교는 졸업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퇴한다는 말에 나는 학생의 권리를 저버리려는 사고를 이해할 수 없어 했다.

“아는데요.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학교 가면 수업을 듣지 않고 잠만 자요. 그것이 하루 이틀이지 아무 의미 없이 학교 다니는 본인도 생지옥인 거죠.”

어렸을 적에는 공부를 곧잘 해 반장도 하고 그랬는데 고학년이 되면서 점점 공부하기 싫어하고 그러다 보니까 성적이 떨어지고 떨어지다 보니까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소외당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아마 학교와 멀어지게 됐다는 엄마의 말이 덧붙여졌다. 지금은 우울증약까지 복용하고 있단다.

‘완벽한 바나바’라는 데빈 펜의 그림책이 있다. 바나바는 실험실에서 완벽한 반려동물로 태어나야 할 운명을 가졌다. 그러나, 바나바는 완벽하지 않았다. 반은 생쥐를 닮고 반은 코끼리를 담은 반려동물이다. 한마디로 실패작으로 좁은 유리병 속에서 지내야 했다. 바나바는 가끔 바깥세상이 궁금했다. 바퀴벌레 쫑알이가 얘기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은빛 물결이 반짝이는 호수와 푸르른 나무, 하늘까지 뻗어 있는 산과 빛나는 별에 관해 얘기해 줬다. 언젠가는 풀밭에 앉아 별을 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지만 쫑알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나바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한다. 다음날 실패작들은 재활용이 돼 다시 태어날 거라고 연두고무가 말한다. 바나바를 사람들이 실패작이라고 말했지만 자기 모습 그대로를 좋아했다. 재활용이 돼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좁은 유리병을 이리저리 부딪치고 해 마침내 유리병을 깨고 자유의 몸이 됐다. 바나바는 옆에 실패작인 친구들을 꺼내어 한 명씩 서로 도와 선반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바닥으로 내려온 바나바 일행은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바깥세상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바나바는 친구들과 앞으로의 바깥 생활을 좌충우돌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완벽함을 추구했다.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완벽을 위해 어렸을 적부터 강행군시킨다. 학교 공부도 힘들 텐데 학교가 파하면 학원을 서너 개는 거쳐야 한다. 집으로 올 때쯤이면 모두 파김치가 된다.

얼마 전에 우리 아이들에게도 독후감을 쓰게 했더니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책을 읽지 않으면 앞으로 중학교 들어가면 더 못 읽을 텐데 틈내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자고 해도 잘 실천이 되지 않는다. 한 번은 학원에서 수학 모의고사를 쳤는데 다 찍어 제출했던가 학원 선생님이 전화로 알려줬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수학 문제 푸는 것이 쉽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이 모르는 문제일 경우 푸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나도 학교 다닐 때 그런 적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잘못되었다고 아이에게 꾸중하고 벌을 준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 같았다. 담부터 그러지 않기로 하고 끝냈다.

이처럼 하기 싫을 때가 있으면 하고 싶을 때도 생길 것이다. 세상은 보는 견해에 따라 달리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피사의 사탑도 한쪽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기우는 것이지만 반대쪽에서 보면 왼쪽으로 기울어 보인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이것이 싫으면 저것을 하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듯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지금 아파하는 아이가 있다면 바나나처럼 스스로 깨우침을 통해 그 좁은 유리병 속에서 탈출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소와 굴대’ 이야기에는 찌는 듯한 여름날 소 한 머리가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의 굴대에서 찍찍하고 커다랗게 소리를 냈다.

“이봐, 굴대야,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것은 나인데 너는 왜 쓸데없이 커다란 소리로 울고만 있느냐?”고 말했다.

어쩌면 세상을 끌고 가는 존재로서 소나 굴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굴대는 굴대대로 소는 소대로, 바퀴는 바퀴대로 하는 일이 다 있어서 무거운 짐을 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그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힘센 소도 아무리 큰 바퀴도 튼튼한 굴대라 해도 짐을 옮기는 일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소가 할 일, 바퀴가 할 일, 굴대가 할 일이 각각 있어서 이 사회의 구성요소로서 조화를 이루는 인자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 스스로 바나바처럼 유리병을 깨고 실패작 친구들을 다 끌고 나와야 할 일이다. 학교이든 가정이든 한솥밥을 먹는다는 공동체에서 사는 우리는 구심 작용을 매우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나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 건강하게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느끼는 하루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