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기우뚱한 귄, 남도문화의 비대칭적 아름다움
400 기우뚱한 아름다움, 허튼미(美)
오랫동안 미학의 범주로 제안되었던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만으로는 남도 혹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우뚱한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허튼미(美)다.
2024년 06월 20일(목) 18:02
강은영의 진도북춤.
국가유산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였던 무송 박병천 선생. 뉴시스.
임수정의 진도북춤.
고 박병천 명인의 북춤사위 중 ‘갈까 말까’ 하는 동작이 있다. 오른쪽으로 가는 듯한데 왼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는 듯한데 오른쪽으로 가는 동작을 거듭 반복하며 좌우로 움직이는 춤사위다. 이를 ‘갈뚱말뚱 사위’라고 한다. 남도의 정체라고도 할 수 있는 ‘귄’의 문화를 설명할 때 나는 곧잘 이 춤사위를 인용해왔다. 비정형의 정형, 흩뜨려야 비로소 균형에 이르는 비대칭의 미학이다. 남도인문학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400회를 연재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세월이다. 남도문화의 정체와 아름다움(美學)에 대한 천착이었다. 동안에 정리해온 남도인문학의 기치는 갯벌과 갱번이라는 생태적 배경과 남도라는 장소성 소환,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가셨던 사람들의 문화적 저력 깊게 들여다보기였다. 나아가 미래의 주역들에 대한 비전을 가지런히 다듬는 여정들이었다. 하찮은 것 속에서 귀한 것을 찾고,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의 부상을 의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이 흘렀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도 문화를 넘어 한국문화 아니 아시아문화로 그 지평을 넓혀왔다. 2016년 본 지면에 첫 회를 시작하면서 내세운 키워드가 갯벌과 갱번을 배경으로 한 ‘귄’이었다. 남도 문화를 딱 한 마디로 말하라면 바로 ‘귄’임을 여러 사례를 통해 소개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 민요와 판소리를 듣고, 홍어와 젓갈, 막걸리를 마시며 삭힘과 삭임을 이야기했다. 신화, 전설, 민담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역사를 풀어 말하고, 바야흐로 이른 소설 시대의 이야기하기 방식과 민화(民畵)의 그리기 방식에 대해 말해왔다. 오랫동안 미학의 범주로 제안되었던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만으로는 남도 혹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우뚱한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다를 말로 하면 허튼미(美)다. 산조(散調)의 본래 말이 ‘허튼가락’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내가 지어낸 미학적 준거이자 방법론이다.



허튼 가락에서 기우뚱한 아름다움까지



‘허튼’에 대한 용례가 많다. 전성희의 <민속예술 연구에서 ‘허튼’의 용례와 성격>(비교민속학 78집, 2023)에 의하면, 음악 영역에서는 허튼 가락을 비롯하여 허튼타령, 느린 허튼타령, 중허튼타령, 작은 허튼타령, 허튼 굿거리, 허튼 변주곡, 허튼 가락 등이 있고 춤 영역에서는 허튼춤, 입춤(허튼춤), 허튼 놀이, 허튼상, 허튼 찍음상, 허튼발, 벅구 갈지자 허튼 상치기, 허튼 잔재주, 허튼 몸짓, 허튼 덧배기춤, 배김허튼춤, 달구벌 허튼춤, 허튼 살풀이, 허튼 법고춤 등이 있다. 그가 든 세 가지 특징 중에서 미적 기준에 대해 정의한 부분이 주목할 만하다. 즉, 대부분 ‘선택된 전통(가락, 춤, 타령 등)’을 중심에 두고 규칙-불규칙, 정형-비정형, 단성(單聲)-다성(多聲), 의도성-즉흥성, 수동성-자율성 등의 이원적 관계 속에서 미적 지향점을 후자의 속성에 두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핵심적인 것은 기악(器樂)의 대표 장르인 산조(散調)의 본래 이름이 ‘허튼 가락’이라는 점에 있다. 나는 이를 굿판의 난장 음악인 시나위와 연결하여 설명하였고 마치 서양의 재즈와도 같은 즉흥적 교섭이 직조해낸 장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오래전 이 지면을 통해 ‘산조란 무엇인가’를 소개해두었으니 참고 가능하다. 운문(韻文)에 대칭되는 장르로 산문(散文)을 말하는 까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어의 배열에 일정한 규율 또는 운율을 강제하는 운문에 비해, 율격과 같은 외형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으로 쓴 소설, 수필 따위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산(散)이 ‘허튼’이다. 흩뜨리다, 풀어놓다 등으로 설명한다. 이를 ‘낯설게 하기’ 혹은 ‘비틀어 보기’ 등에 대입하면 ‘기우뚱한 아름다움’에 가 닿는다. 차차 풀어쓰겠지만 민화(民畵)의 세계가 또한 그러하다. 불규칙, 비정형, 다성, 즉흥성, 자율성 등이 도드라지는 미적 감각이 ‘기우뚱한 아름다움’이다. ‘기우뚱한 균형’에 견주어 내가 만든 말이다. ‘기우뚱한 균형’이란 용어와 개념은 김지하가 즐겨 사용하긴 했지만, 김진석이 앞서 사용하던 말이다. 김진석은 그의 책 기우뚱한 균형에서 이렇게 말한다. “처음 ‘기우뚱한 균형’에 대해 생각하고 쓴 것이 초월에서 포월로(1994)를 낼 때쯤이었다.”소외에서 소내로포월과 소내의 미학등 그가 내놓은 개념들이 그윽하다.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긴 하나, 그중에서 몇 개만 추려보면, “끊임없이 우로 좌로 부딪쳐야 기우뚱 무게를 잡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잡은 균형도 무거운 중심추를 마음 놓고 바닥에 늘어뜨려 놓지는 못한다는 것, 결과적으로는 어중간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기우뚱거림의 작은 차이들은 새파란 칼날에 베일 때의 싸한 아픔의 연속이라는 것, 그래서 균형은 그 자체로 완성된 산술적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완성은 결코 아니라는 것, 목적으로서의 완성이 오기를 기다리는 결함 많은 상태는 아니라는 것, 기우뚱거리며 흔들리고 가는 일은 이미 그 과정으로 충분하다는 것.” 등이다. 김지하도 흰그늘의 길등 여러 자리에서 기우뚱한 균형을 말했다. 붉은악마 응원단의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3분박이라고 오해하긴 했지만, ‘기우뚱’을 엇박자의 ‘엇’으로 풀이한 것만은 여전히 유효하다. ‘엇모리’ 장단이 바로 그러하다. 김지하는 이를 문예부흥과 문화혁명의 후천개벽까지 확장해 발설하곤 했다. 과도한 해석 같지만 기우뚱한 아름다움이 곧 ‘허튼미’이고 이것이야말로 남도문화 나아가 한국문화를 설명하는 데 긴요한 전거이자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저 내가 주목하는 것은 기우뚱함을 발현하는 실체가 남도 문화 나아가 한국문화에 그윽하게 스며있다는 데 있다.



남도인문학팁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 그리고 허튼미(美)

이론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안된 개념들의 유기적 그물(網)”이라고 정의된다. 그간 남도를 주목하면서 이론적인 틀을 강구 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시기부턴가 한국 나아가 동아시아 미학에 대해 천착하며 시나브로 기우뚱한 아름다움 곧 허튼미(美)를 발설하기에 이르렀다. 김진석이 말한 포월(匍越)적 접근이다. 뜬구름처럼 훌쩍 뛰어넘는 초월(超越)에 맞서면서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사고를 시작하여 엉금엉금 기어 넘는 미학이다. 미적 범주로 흔히 네 가지를 든다. 우아미(優雅美)는, 조화로운 부분이 질서를 유지해 통일된 전체를 이뤘을 때 나타나는 미의식이다. 숭고미(崇高美)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숭고한 경지를 체험하게 하는 미의식이다. 비장미(悲壯美)는 자연을 인식하는 ‘나’의 실현 의지가 현실적 여건 때문에 좌절될 때 나타나는 미의식이다. 골계미(滑稽美)는 풍자나 해학으로 우스꽝스런 부분을 표현하는 미의식이다. 주로 일탈적이고 부조화한 부분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이 네 가지의 미의식만으로 남도 문화의 대강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예컨대 갈뚱말뚱 사위의 진도북춤을 어떤 미의식으로 설명할 것인가? 남도인들이 공유하는 미학적 전거 ‘귄’을 어떤 미의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고안한 것이 기우뚱한 균형, 즉 허튼미이다. 남도의 여인네가 등에는 아이 업고 머리에 물동이 이고 양손에 질그릇 하나씩 들고 걷는 인고의 춤사위와도 같은 것, 뒤뚱거리며 걷지만, 물동이의 물 한 방울 튀거나 흘러내리지 않는 것, 이것이 기우뚱한 균형이자 아름다움이고 허튼미다. 이제 앞선 네 가지의 미적 범주에 허튼미를 보태어 다섯 개의 범주로 설명해야 할 때가 왔다. 엉거주춤하고 기우뚱하며 다소 모자란 듯 흩뜨린 것, 어설프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할수록 징하게 이쁜 것, 그 귄진 것이 오히려 완전하다. <도덕경> 22장을 다시 빌린다. 멀리 돌았기에 온전하고 굽었기에 곧다. 그것이 허튼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