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庭園·임효경>무심코 한 일
임효경 완도중 교장
2024년 06월 12일(수) 18:02
임효경 완도중 교장
왁자지껄 행사도 많고, 꽃들이 서로 내가 더 예쁘다고 다투던 5월이 가고, 산천의 초목들이 울창한 초록을 자랑하는 6월입니다. 완도중학교 교장실 창문 바로 앞 꽃밭 한 귀퉁이엔 수국이 커다란 뭉텅이로 꽃을 피웠습니다. 한 살 먹은 어린나무가 가느다란 가지 끝에 풍성한 꽃봉오리를 피워내서 얼마나 장한지 모릅니다. 보라색과 연한 노란색이 섞인 여린 수국의 꽃이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청해진 언덕 위에 피어, 6월은 순조롭고 평화로운 항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 같아 대견합니다.

이 수국은 무심코 한 일의 결과라서 더 고맙고 소중한 꽃입니다. 지난해 이맘때 나주 한 농가를 지나가는데, 한 귀퉁이에 무성하게 피어 있기에 10여 가지를 삽목한 것입니다. 교장실 창문 바로 앞 꽃밭 한쪽 땅에 무심하게 심어 두었던 것입니다. 가을에 몇 그루는 시들어 뽑혀 버리고, 세 그루가 겨울을 이겨내었습니다. 부지런히 물도 주고, 오며 가며 사랑도 주었지만, 청해진의 바람과 햇볕이 키웠습니다. 이 초여름에 제 어미 모습을 닮아 저렇게 찬란하게 꽃을 피어냈습니다. 하하. 정말 신기하고 장합니다.

엊그제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한 아이의 어머니가 교장실로 찾아 와 눈물을 흘리고 가셨습니다. 가정의 어떤 사정으로 전학을 가야 해서, 아이의 물품을 챙겨 가지고 가는 길이랍니다. 가녀린 손목은 살짝 떨고 있었습니다. 헐렁한 옷에 가려지긴 했지만 뼈만 남아있을 몸으로 성(性) 호기심이 발현된 중학교 2학년 아들을 감당하기 힘드셨던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바쁘게 일하면서, 흔들리는 아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바라보고, 완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녀들이 거침없이 나의 영향권 밖으로 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 힘든 변화를 맞닥뜨리면, 우리는 때로는 외면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탓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외줄 타기 광대처럼 위태롭습니다. 가는 밧줄 위를 건너가는 것과 같은 인생길. 이렇게 저렇게 흔들리지만 떨어지지 않는 요행을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부모들 아니겠습니까?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손 잡아주고 안아드렸습니다. 며칠 전, 교문으로 아들을 들여보내며 차로 지나가는데 교문 맞이하던 교장이 그 아들 어깨를 두드리며, 잘 지내라 해 주시는 장면이 그렇게 감사했답니다. 무심코 내 마음이 시킨 일을 했는데, 어머니에게 위로가 되었다니요.

인생이 늘 이러면 재미가 없는 것일까요? 지난 금요일, 교장실로 전화가 한 통 연결되었습니다. 1학년 한 학생의 아버지가 격앙된 목소리로 꽥 소리를 지릅니다. ‘학교가 뭣 하는 것입니까? 분명 우리 아이는 역도 시키지 않겠다고 했는데, 왜 또 마음을 흔들어 놓아 난리를 치는 겁니까? 교장이 책임질 것입니까? 교장실 책상을 엎어버려야 말을 들어줄 겁니까?’

전후 사정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주 월요일에 전국 소년체전 역도 경기가 바로 학교 옆 완도농어민문화체육관에서 열리었지요. 81kg급 부문에 출전한 우리 학교 선수 두 명을 전교생이 나가 응원을 하였는데, 3학년 유망주가 인상, 용상, 종합에서 금메달 3관왕이 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그 영광스럽고 멋진 현장에 있던 1학년 학생이 코치를 찾아 왔답니다.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전화하고, 찾아가 의논하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렇게 화가 나는 어떤 연유가 있겠지요. 아들에게 힘든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고, 편하게 미래를 열어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장에게 그렇게 막말을 쏟아붓다니요? 무심코 던진 험한 말 들이 가슴에 박혀서, 주말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아픕니다.

우리 학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제공하여, 본인의 적성과 흥미를 발견하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장(場) 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모르고, 몰라서 불안합니다. 불안하다고 해서 아예 나 몰라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더 해보고, 더 알아보아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칠지 모를 망망대해 바다를 항해해야 할 학생들입니다. 거칠고 거대한 물결이 다가오면, 무서워서 물러서고 달아날까요? 아니면, 그래 너 어서 와라, 내가 당당히 이겨내리라. 너를 올라타서 당당하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리라, 더 멀리 나아가리라 해야 할까요? 그 아버지의 무심코 한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되어야 할 텐데, 참 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