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업인생 33년의 돌아봄…허진 개인전 ‘가을 짐승의 털끝’
내달 7일까지 파주 갤러리 이레
최근 전남대 예술대학 학장 부임
이후 작가로서 역할 첫 대외활동
‘유목동물’ 시리즈 등 24점 선봬
아트북 ‘HURZINE’ 동시 발간도
2024년 06월 10일(월) 17:34
허진 작 유목동물+인간-문명. 갤러리 이레 제공
올해 3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으로 부임한 허진 교수가 이후 본업 화가로 돌아와 개인전을 열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갤러리 이레에서 허진 초대전 ‘가을 짐승의 털끝’이 오는 7월 7일까지 이어진다. 한국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동시대 수묵화단을 견인하고 있는 한 중견작가 화업인생 33년의 대표작 24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 ‘가을 짐승의 털끝’은 ‘장자-제물편’에서 따왔다. 아주 작은 것을 뜻하는 ‘추호지말(秋毫之末)’이 그것이다. 장자는 ‘가을 짐승의 털끝’을 예로 들어 비교 대상에 따라 작은 것도 큰 것이 될 수 있고 큰 것도 작은 것이 될 수 있음을 설파하며 만물을 관계 속에서 바라본다. 허진의 이번 전시는 그림 속에 표현된 인간, 동물, 문명의 관계를 성찰적으로 직조한다.

허진 작가는 10년 넘게 동물 연작에 천착해왔다. 허진의 세계로 대표되는 ‘유목동물’과 ‘이종융합동물’ 연작이 그것. 허 작가가 그리는 동물은 현대인에게 낯설다. 그는 사자, 기린, 하마, 산양, 얼룩말, 코뿔소와 같이 열대 초원에 사는 야생동물을 그린다. 자연에는 실재하나 인간세계에 부재한 존재를 그리는 것. 그의 예술은 ‘재현’과 동시에 ‘상상’하는 일이 된다.

동물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특징, 허진의 화면 속에는 야생동물과 함께 인간의 형태와 신발, 헤드폰, 자동차 등 인공물이 등장한다. 특히 야생동물과 인공물은 사람보다 크게 그려져 있고 사람은 일상생활을 묵묵히 수행하는 집단 속의 개체처럼 그려져 있다.

허진 작가는 인간을 동물, 인공물과 사뭇 다르게 표현한다. 윤곽만 드러내는 실루엣 기법으로 인간의 형상을 그리는데, 먼저 그려진 동물, 기계 등과 중첩되는 부분은 노란색으로 칠하고 배경 위해 배체되는 부분은 바탕의 먹색이 드러나게 둔다. 세부 묘사 없이 노랗고 검은 면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는 존재임이 확인될 뿐, 개별성이 드러나지 않는 ‘익명 인간’으로 표현된다

이렇듯 자연생태계 그대로의 역동적 유목동물과 동학이미지를 병치(倂置)시킴으로써 환원과 기억의 동시성(同時性)으로 풀어내고 있다. 야생동물과 인간, 인공물의 이미지를 한데 등장시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성찰하고 현대인이 잊고 있는 본성(자연)을 일깨우는 작업이다.

특히 이번 전시와 함께 아트북 ‘HURZINE’도 최초로 공개된다. ‘허진 매거진’이라는 뜻의 ‘HURZINE’에는 작가를 묘사한 에세이, 비평문, 대표작 소개, 인터뷰, 그리고 작가 자신이 기술한 독창적 연보가 실려 있다. 이 아트북은 화가 허진, 편집자 이근정, 디자이너 임문택 등 ‘미술작가+편집자+디자이너’ 3인이 각자 기량을 발휘해 전문잡지를 선보인다는 목적으로 발간했다. 향후 콘텐츠를 개발해 2호, 3호도 발간할 예정이다.

허진 작가. 본인 제공
허진 작가는 조선말기 추사 김정희 수제자이자 호남 남종화의 시조인 소치 허련의 고조손이며 근대 남화의 대가인 남농 허건의 장손이다. 특히 200년간 5대에 걸쳐 호남 남종화의 원류, 운림산방의 맥을 잇고 있다. 서울대 예술대학 회화고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90년 개인전 ‘묵시’로 전업작가로 데뷔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3월 학장으로 부임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