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소류아트의 문민화(文民畵)
396)미국에 뿌려진 한국 민화라는 '씨앗'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덜 걷어 올린 장막 안의 기물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호피장막도의 기물이 아니라, 일월오봉도의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고 달과도 같은 어떤 희망들이었다."
2024년 05월 26일(일) 15:24
소피아김 작 ‘호피장막도’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라하라 <소류아트> 작업실 벽면으로 김승유의 민화작품들이 걸려있다. 4월 하순 TSOM 한국민화학교(교장 정병모)와 소류아트가 합작하여 만든 민화 전문가 과정이 여기서 진행되었다. 소류아트는 김승유(미국 이름 소피아김)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이의 여러 그림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호피장막도(虎皮帳幕圖)다. 호랑이 가죽으로 장막을 쳤다는 뜻, 그런데 그림의 절반 가까이 한글 시가 쓰여있다. 이것도 민화의 한 형태일까? <호피장막도>는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8폭 병풍이 대표적이다. 5~6면의 장막을 걷어 올린 내부 공간에 방의 전모를 묘사하고 있다. 가구를 비롯하여 여러 서책과 문방사우, 구리쇠로 만든 옛날 그릇이나 물건, 도자기 등이 배치되었다. 정병모의 『민화는 민화다』(다할미디어)에서는 ‘정물에서 그 사람의 삶을 읽는다’고 말한다. “이 병풍은 원래 8마리 표범 가죽을 줄에 걸어놓은 그림이었다. 어느 날 이 그림의 주인은 무슨 이유인지 화가에게 호피도에 자신의 서재를 그려 넣어 달라고 주문했다. 무관이거나 중인으로 짐작되는 주인은 평소 학문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문인 주도의 사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표출되는 의식일 것이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서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서재에 놓인 기물들을 통해서 그의 체취까지 맡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소류아트 호피장막도를 통해서 소피아김의 어떤 세계를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민화 그리며 이겨온 세월, 미주지역에 뿌리내린 문민화(文民畵)의 첫 잎새



작년 한국일보 기사 제목처럼 ‘민화 그리며 이겨나간 세월’이 호피 장막 안에 들어 있다. 동양화로 말하면 여백이요 글로 말하면 행간이다. 물론 호피 장막을 걷어 올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모작 단계의 기물들이다. 크게 주목할 것이 없는 풍경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림 위에 쓴 시를 보면 아직 덜 걷어 올린 장막 너머, 채 그려 넣지 않은 이야기, 아니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그렸을 그림을 장막으로 가려둔 풍경을 알아차릴 수 있다. “텅 비어 테두리만 남은 낡은 액자처럼/휘장으로 둘러진 장막 한켠을 들어 올리니/ 낙엽처럼 바짝 말라버린 너의 노래는/ 심장과 뼈가 떨리는 체온이 담긴 말 한마디로 흩어지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지난 2012년부터 유방암 투병 생활을 하며 민화를 접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증세가 깊어진 위중한 상태로 말이다. 치료를 위해 갑상선을 포함한 수차례의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러면서도 열성적으로 민화 그리기를 실천하였다. 여러 차례의 전시회도 열었다. 2023년 전시회 제목은 ‘길상 이야기’였다. 질병을 극복한 길상이란 의미였을까? 소류아트 벽에 걸린 또 다른 그림 <장생도>에는 이런 시가 쓰여있다. “천상의 달콤함을 찾아 내려오는 한 쌍의/ 고고한 학들의 한 자락 털어내는 슬픈 날갯짓....” 불로장생이 아니라 노천명의 시처럼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를 그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일주일여 곁에서 지켜보니 김승유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생활한다. 이 열정을 불러일으킨 것이 민화 그리기다. 단순한 민화가 아니라 사람을 소생시키는 힘을 가진 그림이다. 질병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 그녀는 말한다. 아프다고 포기하지 말라. 이 세상에서 투병하는 모든 암 환자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암은 “암, 그렇지, 낫고말고”의 암이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었다. 지난 10여 년 이상 투병 생활을 하며 얻게 된 지혜이자 알아차림이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덜 걷어 올린 장막 안의 기물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호피장막도의 기물이 아니라, 일월오봉도의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고 달과도 같은 어떤 희망들이었다. “낙엽처럼 바짝 말라버린 가지”에 그린 마지막 잎새가 사실은 소생의 첫 잎새였던 것이다. 대부분 그녀의 민화에는 자작시가 등장한다. 기왕의 민화와는 사뭇 다른 한편의 문인화 아닌가? 그래서 내가 문민화(文民畵)라고 이름을 붙였다. 어민화(漁民畵), 농민화(農民畵) 같은 작명방식이다. 문인화의 격조를 가진 민화라는 뜻이다. 감히 말하고 싶다. 창작의 단계에 이른 민화들이 수많은 디자인을 내놓고 있지만, 문인화의 격조를 띤 문민화는 김승유에 의해서 그것도 미주 땅에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이것은 한국의 민화라는 씨앗이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뿌려져 자라기 시작한 풍경과 관련된다. 씨앗이라고 다르겠는가. 예술이라고 다르겠는가. 김승유의 호피 장막에 들어있는 세계는 고향, 모국, 부모,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오리지널한 한국문화, 어쩌면 목숨 부지하기 위해 하와이로 중미로 남미로 세계 각처로 떠나야 했던 조상들의 세계였다. 내가 미주지역의 민화 창발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미국에 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좀 오래되었다. 정병모에 의하면, 한국민화를 세계화시킨 해가 1977년 미국 LA 퍼시픽아시아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민화전이라고 한다. 민화의 중시조라고 알려진 조자용이 기획한 행사였다. 이후 중단없는 전개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 각양의 단체와 지부를 두는 등 번창 일로에 있다. 나는 김승유에게 두 가지 기대를 걸고 있다. 하나는 민화 그리기를 통한 질병으로부터의 완치요, 다른 하나는 이국땅에 씨를 뿌린 민화의 새로운 창발이다. 내가 이름짓기는 했지만, 문민화라는 장르가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주지 않을까?



남도인문학팁

한국민화학교 TSOM의 미주학교 진출과 기대

김승유의 주도로 한국민화학교(이사장 김영애)가 미국으로 시범 진출하였다. 민화지도자 자격증을 주는 과정이다. 이번 1학기 강의에서는 교장 정병모와 내가 이론 강의를 하였고, 민화작가 문선영이 실기지도를 했다. 문선영의 헌신적인 지도로 일주일 만에 맹호도 대작을 모두 그려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뿐 아니라 과테말라에서도 참여하였다. 많게는 비행기로 혹은 몇 시간씩 운전하여 참여한 이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강자 중 아이다호주에서 온 구미나는 전 크리스찬 디올 뉴욕 수석 디자이너다. 이같은 열기는 한국민화학교의 노하우와 소류아트의 열정이 합작한 결과이기도 하다. 싸목싸목 전 세계로 그 세를 펼치는 중이다. 물론 이번 작품들은 모작(模作) 혹은 방작(倣作) 수준의 접근이었다. 이는 불화나 판소리 등 전문예술의 영역에서 문법처럼 준수해온 전통이다.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을 오리지널로 치고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불화 등 종교적인 그림일수록 변형을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에 자기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가하면 방작이 된다. 판소리로 치면 ‘더늠’을 넣는 방식이다. 이 단계를 거치면 순수한 창작의 단계에 진입한다. 판소리도 그렇지만 우수한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모작, 방작의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기초가 튼튼해야 더욱 훌륭한 창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김승유를 포함한 미주지역 민화가 창작의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기대된다. 백여 년 훨씬 전 해외 이주를 통해 조선이라는 씨앗이 뿌려졌고 바야흐로 후손들이 그 열매를 수확하는 중이다. 김승유의 문민화를 통해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김승유가 가진 모국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미국 혹은 중남미지역의 토양에서 자라고 있기에, 한국적 전통을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주의 외면들을 담아내는 독창적인 창작품이 생산될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고된 질병을 이겨내고 마지막 잎새를 그리듯 새로운 잎을 그려내고 있으니 그 성과가 더욱 찬연하지 않겠는가. 이는 기적이 아니라 마땅한 노력이 마땅한 결과를 낳는다는 믿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김승유여 완쾌하라! 해외 민화작가들이여 창발하라!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