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비극과 희극의 경계…새로운 세상 향한 열망
<돈 조반니>
원작 ‘돈 후안’ 모짜르트 음악으로 완성
18세기 귀족-평민 갈등 작품에 담아내
특권적 계급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오페라 부파 공식…'권선징악·해피엔딩'
2024년 05월 23일(목) 16:44
‘돈 조반니’ 공연 역사상 최고의 출연진이라고 칭송받은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1957~58 시즌 공연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새로운 계급사회의 도래’는 물질만능주의 세상인 작금의 시대에 자주 언급되는 말이다. 거실의 안방극장에서는 민중의 삶과 이반되는 재벌의 삶이 미화돼 드라마로 방영되고 다수의 TV 프로그램에서는 돈이 인생의 성공 기준인 양 떠들어대고 있다. 그리고 이를 거스른 삶을 사는 사람을 특별하게 여기며 ‘언더 독’으로 치부하는 세상이 됐다. 멋진 펜트하우스와 고급 외제 차를 타고 다니는 연예인과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청소년들의 우상이 됐고, 세상의 지혜는 재화를 증식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로 넘쳐난다.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를 고용하며 치외법권의 혜택과 경제활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을 즐기는 일부 특권층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마치 ‘시민혁명’ 이전, 구시대로의 회귀를 보는 듯하다.

현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매스미디어’는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자와 이를 갖지 못한 평범한 다수의 시민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꺼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드물게 약자가 이기는 일은 언론을 통해 ‘정의는 살아있다’라는 수사 어구와 함께 지금 이 시대가 공정한 사회인 양 떠들어댄다. 대다수 시민은 주어진 기회를 독식하는 ‘가진 자’의 대물림을 보며 사회주의, 자본주의라는 이념을 넘어서 현실 사회의 변화를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물질과 권력으로 점철돼 버린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계급 간의 이동은 요원하고 이로 말미암아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은 좀처럼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300여 년 전 18세기는 현대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다. 이 시기 오페라 작곡가 모짜르트(W. A. Mozart, 1756~1791)는 당시 귀족과 평민의 갈등을 극음악 안에 기가 막히게 담았다.

‘돈 조반니’ 역의 전설적인 베이스 에치오 핀자가 열연하고 있다.(1942~43년 공연)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18세기 귀족들은 경제활동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또한, 그들의 삶은 처절함과는 거리가 먼 ‘즐기는 삶’이었으며 이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Don Giovanni, 1787>이다. 원작은 스페인 극작가 몰리나(Tirso de Molina, 1584~1648)의 ‘돈 후안’(Don Juan)으로,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1749~1838)의 각색과 모짜르트의 음악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욕망에 불타는 익명의 인물인 ‘돈 후안’은 이탈리아어로 ‘돈 조반니’이다.

카사노바로 주목을 받은 돈 조반니라는 인물은 귀족으로 사회에서는 비난과 지탄받는 행실을 저지르는 난봉꾼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악행을 일삼으며 무한 욕망을 추구하는데 극 속에서 성욕을 맘껏 과시하는 그의 모습은 한편으로 비난을 넘어서 남성들에게 부러움을 사기까지 했다. 성적 욕구를 향한 그의 막무가내 행동은 나아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권력을 포함한 모든 욕구가 확장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권선징악’, ‘해피엔딩’이라는 오페라 부파의 정해진 룰에 의해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는 응징을 받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형벌을 받는 돈 조반니. (2011 시즌)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돈 조반니>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평민 신분으로 돈 조반니를 주인으로 섬기는 하인 레포렐로다. 이 인물은 선과 대척점을 이루는 돈 조반니와 함께 악의 축에 있는 배역으로 볼 수 있으나, 필자의 시선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으로 보인다. 인간의 욕망에 따른 인간 내면의 갈등을 필역 하는 인물로 이 극에서 환기적 요소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는 주인인 돈 조반니의 악행을 힐난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모방해 여인을 취하려 시도하는 등 주인은 그의 선망 대상이기도 하다. 레포렐로는 돈 조반니란 인물을 설명하고 극의 전개를 효율화시키는 매개자이다. 막이 올라가며 등장하자마자, 레포렐로는 자기 주인인 돈 조반니가 행하는 일을 자조 섞인 어투로 비난하며 자신을 한탄하기 시작한다. 특히 레포렐로의 아리아 ‘카탈로그의 노래’ ‘Madamina! Il catalago e questo - 아가씨! 이게 바로 그 목록이에요’라는 돈 조반니란 인물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여성을 정복하는 것을, 세상 삶의 낙으로 생각하는 돈 조반니의 악행을 수집해 놓은 목록은 돈 조반니에게 농락당한 여인 엘비라에게 수첩을 꺼내 보이며 읽으며 당신만 농락당한 것이 아니라고 위로하기까지 한다.

현대적 연출로 각색된 오페라 ‘돈 조반니’.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2023년 공연 장면.
레포렐로가 읽는 명부를 살펴보면 이탈리아에서는 640명, 독일에서는 231명, 프랑스에서는 100명, 터키에서 91명,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3명의 여자를 범했다고 돈 조반니의 연성 편력을 전한다. 이어 그는 시골 아가씨, 하녀, 거리의 여자, 백작 부인, 남작 부인, 공작부인 등 모든 계급, 모든 스타일, 모든 연령의 여자를 총망라하고 있으며, 그의 수법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금발 여자는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갈색의 여자는 정숙하다’고 찬양하면서 그는 ‘겨울엔 살찐 여자, 여름엔 마른 여자를 좋아한다’며 몸집이 크면 당당하다고 말하고, 작으면 귀엽다고 명부의 내용을 이야기한다. 나이 많은 여자는 오로지 명부를 채우기 위함이고 그가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순결한 처녀로 부자건 못생겼건, 이쁘건 밉건 치마만 두르면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목록을 읽는 레포렐로는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레포렐로의 이야기를 미뤄 보면 이 오페라는 돈 조반니를 자유분방하게 삶을 즐기는 인간, 즉 성적 욕망을 어떤 제재나 죄악감 없이 즐기는 인간으로 그렸다. 그렇다고 그는 18세기 주류 사회 귀족 남성의 모습을 미화하고 영웅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돈 조반니를 지옥에 떨어뜨리고, 계몽주의 사회를 꿈꾸며, 불합리한 사회에 관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는 당시 방탕을 일삼을 수 있도록 한 특권적 계급사회 구조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용감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돈 조반니 이야기는 모짜르트의 작품이 탄생하기 전 10년 동안 7편의 오페라가 나왔을 정도로 당시에는 대중적인 소재였다. 따라서 이를 작곡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사회 계급 구조와 여성 인권 등을 부르짖었던 <피가로의 결혼>에서 나타난 정치적 위험은 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는 우리가 흔히 접한 코미디 오페라이기보다는 작곡 당시 비밀결사 조직인 ‘프리메이슨’이던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이 가득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한 모짜르트. 출처 위키피디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소설가, 비평가, 정치평론가이면서 영어권에서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 Eric Arthur Blair, 1903~1950)은 그의 평론집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를 통해 예술의 성향을 사회변화를 향한 열망과 결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는 시대의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긍정적인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 정신을 등한시하고 특권을 가지고 사회 구조를 자신들에 맞게 고착화하려는 오류 세력과 이러한 불합리함을 극복하려는 시민과의 투쟁은 인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존재해 왔다. 훗날 시민이 주류로 등장한 이후 이들에게 예술은 끊임없이 응원과 방향성을 제시하며 함께 성장했으며, 그중 오페라는 과거 가장 확장력이 강한 공연 문화예술로서 사회변화를 이끄는 매개체였다. 지금은 오페라에서 확장된 다양한 공연 예술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오페라 역시 시민을 위로하고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 세상을 투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오페라의 융성이 문화 광주의 융성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광주에 수많은 오페라가 올려진다. 그 안에서 재미뿐만 아니라, 작품 안에 담긴 깊은 철학을 음미하며 공연장을 찾는다면, 더욱 감동이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도시 광주’의 중심에 지상최대의 공연 예술인 광주의 오페라가 있다.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