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려인>우크라 전쟁 초래한 ‘민스크 협정 이행 실패’
<36>민스크 협정의 교훈
우크라·러시아·서방 간 중첩된 갈등으로 협정 휴짓조각
2022년 대선 당시 국힘 윤석열 후보도 민스크 협정을 언급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과 선택이 전쟁과 평화 결정적 역할
우크라·러시아·서방 간 중첩된 갈등으로 협정 휴짓조각
2022년 대선 당시 국힘 윤석열 후보도 민스크 협정을 언급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과 선택이 전쟁과 평화 결정적 역할
2024년 04월 18일(목) 15:01 |
지난 2014년 9월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부가 포로 교환을 추진한 가운데 동부 지역 도네츠크주에서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 모습. 양국 정부는 2014년 9월 5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무력 사용 금지, 포로 교환, 우크라이나 동부 특수지위 부여 등을 골자로 하는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도네츠크=AP/뉴시스 |
민스크 협정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022년 2월 25일 2차 법정 TV토론회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자체 국방력과 동맹의 도움 없이 민스크 협정에만 의존했다가 전쟁을 맞이한 것처럼 발언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우크라이나는 미국, 유럽 등 서방의 지원을 받았고, 민스크 협정의 미이행 책임은 우크라이나가 가장 컸다.
민스크 협정은 2014~2015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이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이 유럽 안보 협력기구의 중재 아래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체결한 협정이다. 돈바스 분쟁의 출발점은 소위 2014년 유로마이단(Euromaidan) 이었다. 이는 처음에는 평화로운 시위로 시작했지만 무력 충돌로 확대되어(러시아 측 쿠데타, 우크라이나 측 혁명)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대통령 야누코비치의 정부를 전복시키고 러시아에 반대하는 새로운 정권의 수립으로 이어졌다. 새 정부는 러시아어의 공식 지위를 박탈하고 오데사와 마리우폴 등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의 러시아어 사용 지역에 대해 잔혹한 탄압을 가했다.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역 주민들은 우크라이나의 권력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새로운 우크라이나 정권에 반대했다. 활동가들은 정부 건물을 점거했고, 이후 이 지역에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DPR)과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LPR)이 선포되었다. 2014년 5월 11일에 이들 지역에서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DPR의 유권자 89% 이상이 독립을 지지했고, LPR은 96%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처음에는 상황이 정치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지만, 점차 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군사 행위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는 DPR과 LPR의 새로운 지도세력과 그들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규군은 반테러 작전이라고 부르며 시민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 두 번의 우크라이나 군사 작전은 실패했다. 타스통신에 의하면, 이 기간에 14,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난민과 국내 실향민이 되었다고 했다.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이런 군사 행위로 인해 우크라이나 당국은 민스크 협정을 체결해야 했다.
2014년 유럽 안보 협력기구 의장은 군사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유럽 안보 협력기구 대표로 구성된 그룹이 결성되는 이니셔티브를 표명했다. 그러자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모든 협상 참가자들에 대한 안전 보장과 무기를 내려놓은 사람들에 대한 사면 가능성을 담은 평화 계획을 제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자칭 공화국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제안했다. 이들이 제안한 계획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최초의 민스크 협정의 기초가 되었다. 2014년 9월 5일 민스크 협정이 채택되었다. 민스크 협정의 조항에는 공격 중단에 관한 합의 외에도 우크라이나의 권력 분산과 조기 지방 선거가 규정되어 있었다. 아울러 9월 19일 참가자들은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서 휴전을 약속하는 각서에 서명했다.
협상이 이루어졌지만 돈바스에서의 적대 행위는 멈추지 않았고 갈등의 강도는 계속해서 증가했다. 2015년 초 상황은 다시 악화됐다.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했다. 이를 위해 2015년에는 2월 11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 4개국 정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2월 12일 13개 항목이 포함된 새로운 이행 패키지가 승인되었다. 이것이 극적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합의안이 바로 민스크 협정-2이었다. 민스크 협정은 분쟁 당사자들에 의해 일관되게 이행되어야 했다.
협정의 조항에서 중요한 것으로 첫 번째는 분쟁 지역의 안보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돈바스에서의 포괄적인 휴전이었다. 두 번째는 정치적 문제인데, 그중 주요 문제는 우크라이나 법률에 따라 그곳에서 지방 선거를 치르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특별한 지위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민스크 협정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논란이 되었던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민스크 협정은 우크라이나가 헌법 개정을 수행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그 핵심 요소는 분권화였다. 민스크 협정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도네츠크 및 루간스크 지역의 특정 지역의 영토는 새 헌법에 명시된 일종의 특별 지위를 받아야 했다. 즉, 민스크 협정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공화국의 탈퇴나 독립이 아닌 우크라이나 내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당국은 DPR과 LPR의 특별한 지위에 대한 문제로 이들 공화국 대표들과 직접 협상하고 그들의 의견을 고려하는 것을 거부했다. 우크라이나는 분리주의자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소위 도네츠크 및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과 직접적인 대화를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러한 대화는 전적으로 러시아에만 이익이 된다며, 우크라이나는 협정 내용을 냉소적으로 보았다. 우크라이나는 민스크 협정의 이행을 국가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민스크 협정의 완전한 이행은 현재의 돈바스 지역 공화국이 마침내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역의 별도 지역으로 변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이처럼 민스크 협정에 대한 의견 차이로 협정을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돈바스에서는 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2014~2015 분쟁 참가자에 대한 사면도 없었다. 당사자들은 포로 교환만을 달성했다. 우크라이나는 지속적으로 의무를 회피해 왔다. 반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민스크 협정 하에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협정에 따르면 돈바스에서 지방 선거가 실시되어야하며 특별한 지위를 받아야 하며 그 후에 국경이 우크라이나의 통제로 이전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즉, DPR과 LPR은 공화국에서 지방 선거를 실시하고 헌법에 분권화 개념을 도입하여 약속한 우크라이나에서 특별한 지위를 받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국경이 자신의 통제하에 옮겨진 후에만 선거를 치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민스크 협정의 보증인인 러시아는 지방 선거 실시, 돈바스의 특별한 지위를 우크라이나 헌법에 명시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그러한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거듭 밝혔고, 우크라이나 당국은 국가 기본법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제외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양측은 민스크 협정에 관해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입장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민스크 협정은 분쟁 발생 수준이 우크라이나 내 갈등 (마이단과 반 마이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갈등, 러시아와 서방 간의 갈등 등으로 중첩적이었다. 민스크 협정은 군사-정치적 자위의 도구로서 이런 갈등 해결에 아무것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러시아 라브로프 외무부 장관도 한쪽이 다른 쪽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이를 서방이 전적으로 지지하는 유일한 갈등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갈등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민스크 협정 이행에 있어서 유럽연합과 개별 국가의 중재 노력은 어떠한 기대를 할 수 없었고, 오래된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러시아가 돈바스 공화국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공화국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러시아의 결정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것은 러시아가 민스크 협정을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그동안 러시아는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끈질기게 우크라이나에 노력해왔지만 어떤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유엔, 유럽 안보 협력기구, 유럽 평의회 등 국제기구의 지도부에서는 결정을 재고하고 협상 과정으로 복귀하라는 비난과 요구를 표명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먼저 민스크 협정이 무산됐다고 강조했고, 2022년 2월 21일 러시아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의 주권(독립 국가)을 인정했다.
러시아는 2월 24일 돈바스 등 우크라이나에서 특별 작전을 시작했다. 나토 국가와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 그 파트너들은 이 행위를 국제법 위반이자 러시아의 일방적인 민스크 협정 탈퇴로 평가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민스크 협정은 2014년 이후 합의가 실질적으로 존중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휴짓조각에 불과했다고 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분쟁의 선동자라고 비난했고, 독일 메르켈 전 수상은 민스크 협정 체결은 우크라이나에 더욱 강해질 귀중한 시간을 주려는 시도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고 실망스럽다고 했다. 이후 올랑드 프랑스 전 대통령과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군사 행동을 준비하기 위한 합의가 이뤄졌었다고 믿으며 2022년 2월의 특별군사 작전이 더 일찍 시작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민스크 협정은 아무에게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민스크 협정을 중재했던 벨라루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할 수 있었고 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루간스크와 도네츠크 지역의 특정 지역의 특별 지위를 공식화하고 그곳에서 지방 선거를 실시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우크라이나는 따르지 않았고, 러시아는 당시 민스크 협정을 이행할 것이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돈바스 지역의 연방화 가능성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의 특별한 지위를 고려한 분권화를 포함하는 헌법 개혁을 규정하는 민스크 협정의 이행을 단호히 배제했다. 심지어 젤렌스키 대통령은 민스크 협정은 무능하게 작성된 것이며 우리를 패배자의 위치에 놓이게 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민스크 협정을 이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결국 전쟁이 중단되고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보존하고 평화로운 정착과 해결의 길을 열 수 있었던 민스크 협정은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미국, 프랑스, 독일은 어떤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을 종식하고 돈바스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겠다는 약속으로 인해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문제 해결에는 희망을 주지 못했다.
따라서 민스크 협정은 돈바스 지역의 주권, 영토의 완전성을 지키고 평화를 가져올 출구였지만,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힘만 믿고 러시아를 우습게 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과 선택은 국가에 전쟁과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있다. 다가올 평화 협상에서도 주체적이고 이념이 아닌 현실주의 측면에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