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해태(海駝)는 사자를 본(本)으로 삼는 한국의 독창적인 이름
385)해태(海駝)
“세계가 공유하는 사자의 화신을 외뿔 해치로 해석한 것은 명백히 잘못이다. 더군다나 서울의 상징으로 내세운 상징이 허투루 해석되었다면…, 고종 이래 잘못 씌어 온 것이니 지금이라도 수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계가 공유하는 사자의 화신을 외뿔 해치로 해석한 것은 명백히 잘못이다. 더군다나 서울의 상징으로 내세운 상징이 허투루 해석되었다면…, 고종 이래 잘못 씌어 온 것이니 지금이라도 수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4년 03월 07일(목) 14:09 |
1903년경 광화문 사자상. 출처=Lillias H. Underwood, 1904 |
대검찰청 별관 앞 공원 해치상-조승환작, 김영균 촬영 |
청동 해치상-동한~위진시대, 중국 감숙성박물관 소장 |
해태는 궁궐의 화재 액막이로 세운 상징으로 해치와 전혀 다르다
한마디로 말해 해태는 사자를 본(本)으로 삼는 한국의 독창적인 상징이지만 해치는 전혀 다른 본을 가지고 있다. 일찍이 서울시가 해치라는 이름을 상징으로 내세운 것은 구한말의 혼용으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구한말부터 우리는 해태와 해치를 혼용하게 되었을까? 전혀 다른 기원을 가진 상징물이자 캐릭터임에도 말이다. 혹시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집단적인 최면을 당했던 것일까? 아니면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혼란과 혼돈의 시대가 일으킨 착오일까? 이에 대한 명료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김영균의 두 번째 박사학위논문 『고종~일제강점기 한국 사자상에 대한 인식변화와 분석』(2023, 경주대 문화재학과)이 그것이다. 의학박사로서, 명저 『탯줄코드』(민속원)를 집필하더니 급기야 전형적인 우리 도상의 진위를 가리는 탁견을 제시했다고나 할까. 우리 문화의 원본 사고에 대한 보기 드문 천착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은 논고다. 이 글에 의하면 광화문 앞 사자상을 해치로 처음 지칭한 것은 1870년 고종이었다(고종실록 2월 12일자). 이후 이 석수상(石獸像)은 해치로 통용되었고 황실의 능묘나 석물 조각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심지어 현재 국어사전에도 해치와 해태를 같은 말이라고 풀어놓고 있다. 고종이 한번 언급하였으니 무작정 따라 한 것일까? 문헌 중심 해석의 빈틈이라고 해야 하나? 해치(獬豸))는 시비와 선악을 가릴 줄 안다고 하는 동아시아 공유의 상상물이다.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머리 가운데 뿔이 하나 나 있다. 『이물지(異物志)』에 의하면 해치는 동북 지방의 거친 황야에 사는 외뿔 짐승으로,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사람이 논란을 벌이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물어뜯는다고 한다. 외뿔이 가장 중요하므로 머리에 뿔이 없으면 해치가 아니다. 반면에 해태(海駝)는 머리에 뿔이 없으며, 소설 『해태』에서 비늘로 덮인 근육질로 묘사했듯, 원무늬로 덮여있다. 원무늬는 임수영이 박사학위 논문 『조선시대 사자상의 도상적 변화-사자와 해치의 관계성』(2018, 경주대 문화재학과)에서 여러 가지 이칭들을 종합하여 총칭한 것인데, 나는 이를 물방울무늬로 해석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해태가 가진 본연의 기능, 즉 불을 제압하는 서수(瑞獸)로서의 기능을 아주 단순하게 보여주는 용어라는 점에서 그렇다. 굳이 한자로 표현하자면 수주문(水珠紋) 정도 될 것이다. 음양오행론적 관점에서는 물을 더욱 확장해 해석할 수 있다. 차차 풀이한다. 기본적으로 궁궐의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세운 것이 광화문 해태상이다.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광화문을 경복궁과 틀어지게 배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태는 불을 다스리는 물짐승 사자다. 그런데 왜 사자의 화신인 해태를 해치라고 오해하게 되었을까? 김영균은 이를 고종의 발설 후 해치라는 용어가 사자-해태-해타-해치의 착종으로 이어져 여타의 용어를 흡수해갔을 것으로 분석하였다. 성경에서 낙타(駱駝)를 약대로 번역하듯이 해태는 해타(海駝)에서 온 말이다. 외뿔이 없으니 해치가 아니다. 해태를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컨대 상상의 동물 기린(麒麟)의 도상 특징인 두 개의 뿔을 없애버리면 더이상 기린이 아닌 것과 같다. 용의 도상에서 용뿔을 없애버리면 더이상 용이 아니듯이 말이다. 물론 신화나 캐릭터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일부 학자들은 해태와 해치의 역사적 혼용을 주장한다. 하지만 사자의 화신인 해태를 해치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중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권에 고대로부터 사자와 해치의 캐릭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상서로운 상상 동물의 하위급에 해당하는 해치를 광화문 앞에 세워두고 더군다나 이를 서울시의 상징으로 내세울 이유가 전혀 없다. 선학들이 말하였다고, 고종이 발설하였다고 그대로 따르는 것은 역사책에 폭군을 성군이라고 기록했어도 믿거나 따르자는 얘기와 같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의 용기다.
남도인문학팁
해태(海駝)는 사자를 본(本)으로 삼는 한국의 독창적인 이름이다.
오늘날 해태는 그 의미가 덧붙고 증폭되어 심지어 서울시의 상징으로 확대되었다. 남도 사람들이 이구동성 해태 타이거즈를 입에 되뇌었던 이유까지 합하면 그 의미는 더욱 크다. 중국의 사자가 한국으로 넘어와 해태라는 독창적인 이름으로 재탄생하였다. 일본으로 넘어가서 고마이누(高麗狗, 고구려개)가 되었다. 상징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물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표지(標識)나 기호를 말한다. 예컨대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가 공유하는 사자의 화신을 외뿔 해치로 해석한 것은 명백히 잘못이다. K-컬쳐가 세계문화사에 우뚝 서게 된 오늘날, 더군다나 서울의 상징으로 내세운 상징이 허투루 해석되었다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우리를 뭐라고 손가락질하겠나? 고종 이래 잘못 씌어 온 것이니 지금이라도 수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계의 사자라는 보편성을 포섭하며 독창성도 담보하는 해태는 유네스코에서 강조하는 탁월한 보편을 지니고 있다. 화재 액막이용 캐릭터를 넘어 물의 시대, 여성의 시대 등으로 시대정신을 담아낼 충분한 여력도 지니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사자의 화신 해태로 수정하고 장차 세계를 견인할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김영균을 통해 우리는 서울시의 상징을 바로잡을 수 있는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서울시는 해치에 대한 해설이나 도상, 캐릭터 디자인들을 전면 재구성하고 우리 고유의 상징, 글로벌한 사자의 화신이자 우리만의 독창적인 이름인 해태(海駝)로 즉각 수정하기 바란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