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돈삼의 마을이야기>마을 앞 흐르는 보성강… 석곡 돼지 숯불구이 일품
●곡성 능파마을
450년 전 평산신씨 형제때 형성
물길 아름답고, 강변에 암석 많아
능파·능암 두개 마을로 이루어져
‘우리 사이 좋은 사이’ ‘기적의 집’
대문 옆 문패 보는 사람 미소짓게
이순신 하룻밤 묵은 능파정은 터만
450년 전 평산신씨 형제때 형성
물길 아름답고, 강변에 암석 많아
능파·능암 두개 마을로 이루어져
‘우리 사이 좋은 사이’ ‘기적의 집’
대문 옆 문패 보는 사람 미소짓게
이순신 하룻밤 묵은 능파정은 터만
2024년 03월 07일(목) 13:46 |
능파마을 앞으로 흐르는 보성강 풍경. 보성강은 죽곡을 거쳐 압록에서 섬진강과 만난다. |
보성강변에 다시 지어진 능파정. 마을 주민과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로 쓰이고 있다. |
마을 골목의 담벽에 그려져 있는 벽화. 보성강변에서 뛰놀던 옛 사람들의 추억을 떠올려준다. |
옛 능파정의 흔적. 당시 묵객들이 다녀간 흔적이 바위에 글귀로 새겨져 있다. |
주소와 함께 대문 옆에 걸린 문패(門牌)의 문구다. 얼굴에 옅은 웃음을 짓게 한다. 자연스레 발걸음도 멈춘다. 문패가 집집마다 걸린 곳은 곡성 능파마을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능파리에 속한다.
“3∼4년 됐을 거요. 마을사업 할 때 한꺼번에 달았응께. 우편함이랑 같이. 보기 좋소?”
골목을 하늘거리다가 만난 마을 어르신의 말이다.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하면서 문패와 우편함을 함께 달았다는 것이다. 문패가 마을의 이미지까지 바꿔준다. 시나브로 마을에 대한 호기심도 생긴다.
능파마을은 석곡초등학교 옆 능파사거리에서 보성강변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대나무가 줄지어 자라는 야산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능파사거리에도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석곡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한진상회’다.
능파리는 능파(淩波)와 능암(淩岩) 두 개의 마을로 이뤄져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보성강의 물길이 아름답고, 강변에 암석이 많다고 이름 지어졌다. 보성군 웅치면에서 물길을 이룬 보성강은 북쪽으로 흘러 석곡을 거쳐 곡성 압록에서 섬진강과 만난다.
능파마을은 450여 년 전 평산신씨 신대년의 형제가 들어와 살면서 형성됐다고 전한다. 신대년은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927년)의 후손이다. 신숭겸은 927년 후백제군과의 공산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입고 대신 전사했다.
신대년은 일찍부터 관리로 살았다. 보성강변에 정자 능파정(淩波亭)도 지었다. 능파정은 강변에 자리한 정자라고 ‘강정(江亭)’으로도 불렸다.
신대년은 이순신과도 가깝게 지냈다. 신대년과 이순신은 속마음까지도 알 정도로 오랜 친구였다. 정유재란 때도 이순신이 신대년을 찾았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지를 받고 조선수군을 재건하는 길에서다.
진주에서 하동, 구례를 거쳐 곡성에 온 1597년 음력 8월 7일이다. 병기와 병참선 확보가 시급한 이순신은 석곡과 순천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옥과현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순신은 아침 일찍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본군이 어디에 진을 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지만, 머릿속에선 보성강변의 강정을 그렸다.
이순신은 목화꽃 핀 겸면천을 따라 석곡으로 향했다. 옥과에서 순천부까지 가는 길은 멀었고, 보성강변의 강정에서 하룻밤 쉬어 가기로 했다.
이순신은 강정에서 신대년을 만났다. 신대년의 동생 신대수, 신대춘, 신대충, 신대림도 와서 이순신에게 주변 정황을 설명했다. 신대년의 다섯 형제는 지역의 사정을 구석구석까지 꿰뚫고 있었다. 이순신은 밤늦게까지 신대년 형제와 함께 일본군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지 머리를 맞댔다.
강정에서 잠을 자던 이순신의 꿈에 큰 황룡이 나타났다. 황룡은 ‘자기를 밟고 강을 건너 군사와 물자를 옮기라’고 했다. 아직도 어두운 새벽에 눈을 뜬 이순신은 바로 길을 나섰다. 서둘러 보성강을 건너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강변의 새벽은 차가웠다. 초가을이지만 강바람은 초겨울의 것이었다. 사방이 어두운 탓에 어디가 강이고 땅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횃불을 밝힐 수도 없는 처지였다. 언제 어디서 일본군 정탐꾼이 엿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군사들을 독촉해 보성강을 건넜다. 다음 목적지는 병참창고가 있는 창촌의 부유창을 염두에 뒀다. 부유창은 지금의 순천시 주암면 창촌마을에 있었다.
이순신이 하룻밤 묵은 능파정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일제강점기에 폐허가 됐다. 보성강변에 터만 남아 있다. 당시 많은 묵객이 다녀간 흔적으로 남긴 글귀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문장이 새겨진 바위를 보성강변에서 볼 수 있다. 그 자리에 조그마한 정자가 세워져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마을에 능파정도 최근 새로 지어졌다. 마을 끄트머리, 강변의 전망 좋은 곳에 세워진 정자는 마을주민의 쉼터로 쓰인다. 강변을 지나는 사람도 잠시 쉬어 가기에 맞춤이다.
능파정 앞 강변에 나루터도 있었다. 강 건너 목사동면의 공북마을과 대곡마을을 잇는 배가 다녔다. 이 일대 뱃길의 중심지였다. 50여 년 전까지 그랬다.
강에는 누치, 꺽지, 쏘가리, 송사리 등 민물고기가 많이 산다. 예전엔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름날 강물은 어린이들의 물놀이터이기도 했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물놀이를 하던 옛 추억의 모습이 마을 골목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강변에 세워진 복돼지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돼지는 독특한 맛과 향으로 유명세를 탄 흑돼지 숯불구이를 연상케 한다. 숯불구이는 석곡의 별미다. 호남고속국도가 뚫린 뒤 찾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지만, 맛은 예전 그대로다. 지글지글 익은 불고기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쌈채에 싸서 입에 넣으면 불향과 함께 전해지는 불고기 맛이 일품이다. 특유의 누린내도 없이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