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거듭남과 재생, 부활을 염원하는 북두칠성 우주관 반영
382)진도 윷판바위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와 더불어 윷놀이는 남도의 4대 상장례다. 장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될 매우 소중한 유산일 뿐 아니라 인류에게 널리 알려야 할 ‘탁월한 보편’이다.”
2024년 02월 01일(목) 10:31
제주도 항파두리 주춧돌 윷판형 암각화. 장장식의 논문에서 발췌
진도 의신면 내동마을 왜덕산 윷판바위. 이윤선 촬영
진도군 의신면 내동마을 뒷산에 윷판바위가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삼별초군들이 윷놀이하면서 새겨두었다고 한다. 졸저 『산자와 죽은자의 축제』(민속원)을 쓰면서 이 정보를 얻게 되었으므로 답사한 지 꽤 되었다. 하지만 책이 편집 완료된 시점이어서 졸저에 싣지는 못했다. 이후 전남지역의 윷판바위를 추적하던 차에 광양에도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에 있는 성혈 바위에도 윷판바위와 유사한 패턴들이 있다. 다만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지 않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는 중이다. 전북 임실의 윷판바위에 대해서도 본 칼럼에서 두어 차례 소개한 바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일군의 연구자들 요청으로 진도의 윷판바위를 소개하여 답사하게 하였다. 장차 논문 등 연구자료가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설화 등을 근거 삼아 추적해보면 광양, 진도 외 전남지역에도 윷판바위가 더 있을 것이다.



진도의 윷판바위는 왜 삼별초와 관련되었나?



진도군 의신면 내동마을 뒷산은 일명 왜덕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죽은 일본군의 시신을 거두어 매장해주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칼럼에서 일본 교토의 코무덤(귀무덤)과 견주어 몇 차례 다룬 바 있다. 2022년에는 진도문화원 주관 위령제에 하토야마 전 일본총리가 참여하기도 했다. 박주언 전 진도문화원장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관련 족보에 왜덕산이나 와덕산이라는 지명이 상당수 등장한다. 하지만 일부 마을 주민들은 기와를 굽던 곳이라는 의미의 와덕산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윷판바위는 마을 동북쪽으로 얕은 고개의 중턱쯤에 있다. 윷판그림이 바위 위에 새겨져 있기에 편의상 그렇게 부른다.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윷판 암각화, 윷놀이판 바위그림, 윷판형 암각화, 윷판형 바위그림 등으로 부른다. 이름은 약간씩 달라도 윷놀이 도판을 바위 위에 새겼다는 뜻은 동일하다. 대개의 윷판바위는 고인돌이나 청동기시대와 관련짓는다. 하지만 진도는 삼별초군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승된다. 삼별초군들이 진도에 주둔할 당시 윷놀이를 하면서 새겼다는 정도의 이야기다. 또 하나의 고려를 표방했던 왕섬이었으니 삼별초와 관련된 이야기가 덧붙여지거나 만들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연초에 차남준 전 이장의 설명을 들었다. 왜덕산(와덕산) 산꼭대기를 망재라고 한다. 삼별초군들이 해남 삼지원 방면에서 치고 들어오는 여몽연합군을 망보던 자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동쪽 해안을 군직기미라고 하는데, 이 또한 군사들이 거처하던 ‘곶(바다 쪽으로,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으로 해석한다. 이외 부무골(풀무골), 절골, 다랫뿔치 등의 지명이 모두 삼별초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산은 삼별초가 왕궁 삼았던 용장산성의 남쪽 기슭에 있다. 토성과 석성의 흔적들도 남아 있어 산성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 항파두리 윷판바위와 관련 없을까?



진도의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가 자리 잡았던 항파두리 항몽유적에도 윷판바위가 있다. 진도 지역에 전승되는 이야기대로라면 진도나 제주도 항파두리의 윷판바위는 삼별초군들이 윷놀이를 하던 흔적일까? 항파두리 윷판바위에 대해 장장식의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 내성지 출토 ‘윷판형 암각화’의 상징성」(민속학연구 38호, 2016)이란 논문을 참고하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건물지의 주춧돌 기능을 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주춧돌의 윷판형 암각화는 은비적(隱祕的, 숨겨서 비밀로 한다는 뜻) 상징성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첫째, 확고한 별자리인 북두칠성의 주천(周天-天體가 각기의 궤도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일)을 모사한다. 둘째, 전후좌우, 대각대칭의 완전한 기하학적 완전공간을 만든다. 셋째, 천문학적 질서를 지상의 건축물에 치환(transposition)한다. 넷째, 건축물의 영구성과 이상적 질서를 확고하게 담보한다. 따라서 북두칠성의 주천을 모사한 윷판을 주춧돌에 새겨 우주론적 질서를 부여하고, 전후좌우, 대각의 완전 대칭인 기하학적인 윷판을 통해 중심성을 부여한다. 장장식은 이를 새로운 해석의 시도라고 말하며 항파두리 주춧돌의 윷판형 암각화를 분석했다. 진도의 윷판바위도 삼별초에 의해 구상되었던 모종의 건물과 관련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용장산성 왕궁터에서 윷판형 주춧돌이 발굴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용장산성에서 이런 유형의 주춧돌이 발굴되었는지 아직 듣지 못했다. 또한 왜덕산의 삼별초 윷판바위가 그려진 곳은 주춧돌이 아니라 넓적하고 경사진 마을 중턱의 바위에 새긴 것이다. 그럼에도 이하우가 그린 항파두리 주춧돌 도면은 진도 삼별초 윷판바위 도면과 닮았다. 삼별초 정부가 여기에 어떤 건물을 지으려고 했던 것인지 지금의 정보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인돌 등에 새겨진 암각화이든 항파두리 주춧돌이든 모두 북두칠성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는 새김이라는 점이다. 정초에 행하는 윷놀이를 해석하는 시선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는 이것을 칠성판 등 여러 가지 예증을 토대로 남도의 상장례와 연결시켜 북두칠성 놀이로 해석했던 것이다. 북두칠성이 자미원의 우주 자궁, 출생과 죽음이 순환되는 곳이라는 관념은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철학적으로 재구성되어 널리 유포되었다. 상가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다시래기가 ‘다시 태어난다’는 뜻을 가진 재생 놀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정초의 윷놀이나 상가의 윷놀이도 모두 거듭남과 재생, 부활을 염원하는 북두칠성놀이라는 내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도인문학팁

남도의 윷판바위를 추적하는 까닭

내가 윷판바위를 추적해온 것은 고고학적 관심사와는 다르다. 진도를 비롯한 서남해 일대에서 행해지는 상가(喪家)의 윷놀이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졸저나 본 칼럼에서 이를 의례의 하나로 분석하고 소개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가 윷놀이는 밤샘을 위한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적인 행위였다. 육십대 이상의 남도 지역 특히 서남해지역 마을 출신들에게 물어보면 이런 경험담을 확인할 수 있다. 씻김굿의 이슬털이나 고풀이 등을 재해석하고 그 내밀한 의미에 천착한 까닭도 다르지 않다. 만약 어떤 놀이나 행위가 어떤 시간과 어떤 장소에서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의무적인 것이라면, 거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설날에서 대보름까지의 기간에 토정비결을 보거나 윷놀이를 하는 것이 한 해 농사를 점치거나 운수 비결을 보는 것이라고 해석하듯이, 초상집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윷놀이가 왜 그러한지, 그것은 무슨 뜻인지 질문하는 것이 연구자의 마땅한 태도일 것이다. 그냥 밤샘하기 위해 하는 놀이라고 사람들이 대답한다고 해서, 과연 그렇다고 기록하면 새로운 해석이 들어설 여지가 없어져 버린다. 예컨대 오랫동안 씻김굿의 ‘이슬털이’에 대해 질문했어도 돌아오는 답은, 밤샘하고 새벽에 이슬 털며 귀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렇다고 기록했다면 이 의례에 반드시 구비되는 누룩, 솥뚜껑 등의 의미와 술 만들기의 맥락, 불탑 노반(露盤)의 이슬털이를 어찌 새롭게 해석할 수 있었겠나? 어찌 기독교의 세례의식과 연결하여 해석할 수 있었겠나?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와 더불어 윷놀이는 남도의 4대 상장례다. 장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될 매우 소중한 유산일 뿐 아니라, 인류에게 널리 알려야 할 ‘탁월한 보편’이다. 진도의 윷판바위가 전해주는 무언의 메시지를 나는 그렇게 읽는 중이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