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취재수첩>알권리 제한한 검찰의 ‘서면 구형’
송민섭 취재2부 기자
2024년 01월 21일(일) 14:48 |
송민섭 기자 |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공소제기된 혐의에 모두 유죄를 선고해달라”고 밝히며 재판부에 “다만 구형량은 따로 서면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 구형을 반드시 구두로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서면 구형’은 이례적이었다. 서면 구형이 가끔 있기는 하다. 복잡한 사건이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만 나온다. 당시 언론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구형을 서면으로 하겠다는 검찰의 요청에 난감해 했다. 재판부는 “구형은 법정에서 구두로 해야 하며 별도 의견서 제출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공개재판의 실질적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소송 당사자들만 구형량을 알 수 있는 서면 구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면 구형은 공개재판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의견에 따라 지양하는 편이다. 형량 차이는 없지만 당사자 외에는 형량을 알 수가 없어 알권리 제한이라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서면 구형’이 최근 광주에서 나왔다. 지난해 12월 광주지법 형사10단독 나상아 판사 심리로 A씨에 대한 사기·변호사법 위반 혐의 결심공판이 열렸다. A씨는 지난 2020년 12월 사기·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재개발 사업 추진과정에서 B씨 등 피해자들로부터 13억원 가량을 수수한 혐의다.
이날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A씨에 대한 구형을 생략했다. 구두 대신 서면으로 구체적인 구형의견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구형량과 구형의견을 생략한 것이다. 검사는 이후 의견서를 통해 A씨에 대해 징역 4년에 범죄사실금액 추징금 14억8000만원을 구형했다.
검사는 “구형량이 변경될 여지가 있어 서면 구형을 신청했으나 변경되지 않아 그대로 구형했다”고 했지만 쉽사리 납득이 안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워낙 거물급 인사라 조심스러웠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현재 A씨는 광주에서 추진중인 민간공원특례사업 시행사 대표를 맡고 있다. 해당 사업은 2조원대 규모로 지역에서 가장 큰 개발사업이다.
해당 재판은 대표 개인의 비위문제로 민간공원 사업과 관련은 없지만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만약 실형이 선고돼 구속이 된다면 사업 차질도 피해갈 수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수사기관에서 부담을 느꼈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해당 재판이 1심만 4년째 질질 끌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로 분석된다.
재판부도 비판의 대상이다. 재판부는 ‘채동욱 내연녀’ 사건과 달리 서면 구형을 수용했다. 직권으로 거절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이유 또한 밝히지 않았다. 속사정은 이해 되지만 결코 보기좋은 모양새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