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나를 좌절로부터 일으켜 세운 것은 하찮은 잡초 한 포기
380)어떤 봄 기별
“자살의 결심에서 나를 돌아 나오게 한 것은 결국 돌담 아래 풀 한 포기, 답답하던 골방의 한겨울을 지나고 새벽의 이슬처럼 대면하던 봄의 전령이랄까.그 풍경은삶에 대한 일종의 경외 혹은 간절함들이 버무려낸 울음”
“자살의 결심에서 나를 돌아 나오게 한 것은 결국 돌담 아래 풀 한 포기, 답답하던 골방의 한겨울을 지나고 새벽의 이슬처럼 대면하던 봄의 전령이랄까.그 풍경은삶에 대한 일종의 경외 혹은 간절함들이 버무려낸 울음”
2024년 01월 18일(목) 12:31 |
광양 망덕포구, 윤동주시집 보관하였던 정병욱 가옥 |
광양 망덕포구, 정병욱가옥에 비치된 윤동주 육필원고 |
풀 한 포기의 기별, 윤동주와 김지하에 기대어
벌써 두 해가 지났나. 김지하 사후 몇 번의 추모 모임들이 있었다. 나도 불가피한 기회가 있어 관련한 발표도 하고 토론도 했다. 흰그늘에 대해서도 두세 차례 다루었다. 김지하에 대한 재해석이랄까. 그의 손을 떠난 개념을 뒤섞고 흔들어 재구성하는 것은 후학들의 몫 아니겠나. 기왕의 글에서 나는 흰그늘의 두 출처를 말했다. 고향 목포에서 어린 나이에 경험한 갱번의 시신 목격이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이를 삼국유사의 주몽탄생 설화에 오버랩시킨 것은 사회적 경험 혹은 민족적 경험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흰그늘을 생명이라는 화두에 덮어써 말할 때는, 교도소에서 바라본 풀 한 포기 이야기를 대표적으로 거론한다. 서울교도소 쇠창살과 시멘트 받침 사이에서 자라난 개가죽나무 풀, 김지하는 이 풀을 보고 울음이 터져 나와 이유도 모르고 울었다고 했다. 여기서 ‘생명’이라는 울림 혹은 환청 같은 한마디를 접하고 훗날 대표적인 키워드로 내세운 것이 ‘흰그늘’이고 ‘생명’이라는 화두다. 많은 평자가 이를 두고 생명에 대입해 해석했기 때문에 애써 리뷰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 경험에 비추어 풀 한 포기가 전해준 일종의 봄 기별을 생각해볼 뿐이다. 도저한 그이의 경험에 어찌 비교하겠는가만, 그토록 강렬했던 이른 봄 연록의 풀포기와 쏟아지던 울음과 혹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기운들을 떠올려볼 따름이다. 이수복은 <봄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시인은 왜 서러운 풀빛이라고 노래했을까? 봄비 내리면 마치 들불처럼 언덕을 덮는 게 풀빛인데. 그래서일까. 이어서 이렇게 노래한다.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엘리엇의 4월과 같은 심정일까? 혹은 죽음과 삶을 대비하여 일으키는 예컨대 <시경(詩經)>이 노래한 초봄, 생극(生剋)의 서정 같은 것일까? 나는 그보다 윤동주의 시 <길>을 주목한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부박한 내 경험에 비추어 보니 서러운 풀빛이 보이는 듯하다. 자살의 결심에서 나를 돌아 나오게 한 것은 결국 돌담 아래 풀 한 포기였고, 사춘기 시절 차창을 스치던 연록의 언덕도 아마 그러했으리라. 답답하던 골방의 한겨울을 지나고 새벽의 이슬처럼 대면하던 봄의 전령이랄까. 급속하게 나를 흔들어 댄 경험이 아스라하다. 채 고스러지지 않고 살아남은 혹은 봄을 채근하기 위해 미리 올라온 듯한 잡초들과 뒷산의 구부러진 장솔(長松)들과 구름 벗겨진 하늘과 아마도 무슨 인사들을 하며 지나쳤던 마을 사람들과 아! 내 시선에 잡히는 모든 것들이 그리도 사랑스럽게 쏟아져 들어오던 그 풍경 말이다. 어린 내게는 너무 충격적이고 놀라운 경험들이었다. 오랜 후에야 나는 이 경험이 삶에 대한 일종의 경외 혹은 간절함들이 버무려낸 울음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근자에 윤동주의 흰그림자와 김지하의 흰그늘을 견주어 생각해보고 있다. 그림자와 그늘은 다른 말이기도 하고 같은 말이기도 하다. 차차 밝히겠지만 나는 그것을 ‘맑은 그늘’로 정리하는 중이다. 판소리의 웅숭깊은 세계를 ‘그늘’이라고 표현하듯 ‘그늘은 그늘이되 아침이슬처럼 맑고 고운 그늘’이라는 뜻으로 내가 지어낸 말이다. 주역의 괘로 말하면 건하(乾下) 곤상(坤上) 즉, 하늘(乾)과 땅(坤)이 완전하게 뒤바뀌어 있는 지천태(地天泰)괘다. 내가 여러 차례 언급했던 ‘죽고 살고’의 세계관을 포섭한 개념이다. 나를 좌절로부터 일으켜 세운 것은 사실 하찮고 보잘것없는 잡초 한 포기가 보내온 기별이었던 것이다.
남도인문학팁
흰그림자와 흰그늘, 그리고 맑은 그늘
광양 망덕포구에 가면 엉뚱하게도 윤동주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다. 정병욱이 그이의 어머니를 통해 윤동주의 시집을 숨겨두었다가 세상에 알린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통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윤동주의 시 ‘흰그림자’의 일부다. 정병욱은 훗날 ‘나의 아호 백영(白影)’이라는 글에서 동주에게 매료되었던 내력을 말하며, ‘흰 그림자’는 말할 것도 없이 겨레의 상징이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늦게야 정병욱의 아드님이 보내온 글을 임진택 명창을 통해 전달받았다. 마침 김지하의 흰그늘을 상고하던 때였다. 돌이켜보니 동주의 흰그림자는 일제강점기, 지하의 흰그늘은 유신과 군부독재라는 배경이 있었다. 동주는 이국땅에서 옥사하였고 지하는 사형집행 막바지에 살아나왔다. 생사는 달리했지만 두 분 모두 암흑 속에서 빛을 추억하거나 예감했다. 탁양현이 ‘그늘과 그림자의 사유방식(동양철학연구 제68집)’에서 밝혔듯이 ‘그늘’과 ‘그림자’는 상호 근친적 의미로 사용된다. 물론 동양철학적인 ‘볕과 그늘’, 서양철학적인 ‘빛과 그림자’의 사유방식은 함의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동주의 흰그림자와 지하의 흰그늘을 견주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림자와 그늘을 넘어서는 꿈 혹은 초월이 이미 두 시인의 내면에 포섭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해품달’, ‘달품해’의 경지라고나 할까. 그래서다. 두 시인 모두 흰(白衣, 순결, 정조, 생명 등) 색감을 통해 조국이나 민중, 삶과 죽음의 초월을 말하였다면, 나는 잡초 한 포기의 기별을 들어 ‘맑은 그늘’을 말하고 싶다. 너무 맑아서 탁함마저 품어버리는 그늘, 벨칸토 창법의 맑은 목청이 탁한 듯한 판소리의 수리성에 포획되는, 빛과 그늘의 구별조차 의미 없을 그런 그늘 말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쓰러지고 넘어질 때마다,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흰그림자와 흰그늘 고즈넉한 남도의 언덕, 하찮은 잡초 자라던 내 유년의 마을로 돌려보낸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