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스무 해 평화를 잇는 길…달거리 시즌2는 후배들 몫
376)김원중의 ‘달거리’ 마지막 공연
“광주의 정신을, 남도의 맥락을 평화의 정신에 담아 세계로 내뿜은 김원중, 평화의 전도사에게 찬사를 보낸다.남도의 맥을 아는 후배들, 제자들 떨쳐 일어나 달거리 시즌2를 시작하라. ”
2023년 12월 21일(목) 12:35
김원중 달거리ㅣ 마지막공연 장면-정대하 촬영
김원중 달거리ㅣ 마지막공연 장면-정대하 촬영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 그대 잘 가라~

북한군 중사 오경필(송강호)을 뒤로하고 외다리를 건너오던 이수혁(이병헌)이 쓰러진다. 긴박한 군사들의 동선이 서로 뒤엉키는데, 비 내리는 숲과 나무들 사이로 귀에 익숙한 선율들이 헐떡이며 쫓아온다. 끝내 눈을 감는 주인공의 시야, 마치 헐거운 수의처럼 찢어지는 빗방울들, 빗살무늬의 가락들, 낙엽들, 바람들, 아니 핏방울 선연한 이야기들이 천천히 내려와 흉중을 덮는다. 김광석의 유작 ‘부치지 않은 편지’,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은 정호승의 시와 백창우의 선율 만이 아니다. 박상연의 원작 소설 (1996)의 서사가 그렇고, 이를 각색한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2000)의 전개가 그렇다. 왜 우리는 이 영화의 장면마다 목을 내어 울어야만 했을까? 또 하나의 천년이 바뀌던 그해로부터 우리는 내내 ‘부로맨스(부라더+로맨스)’를 입에 올리고 노무현이며 노회찬이며 혹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 안장 때 이 노래로 추모했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김원중의 ‘달거리’를 그만두겠다고 한 날, 빛고을시민회관 공연장에 가슴 떨리는 이 선율이 다시 흘렀다. 올해 12월 18일 통산 136회, 2003년부터 시작하여 20년을 꼬빡 채운 김원중의 ‘달거리’ 마지막 공연이다. 20년이라니 가히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원중이 말했다. 어찌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성과겠는가. 이 지역 뮤지션들, 예술가들, 아니 광주와 남도 사람들 모두가 힘을 모으고 성원한 결과라고 말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마지막 공연에 참여한 이들 모두 함께 노래하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아쉬워했다.



평화의 전도사, 김원중의 달거리에 대한 헌사



토크 손님으로 무대에 올라온 박구용(전남대 교수, 철학)이 말했다. 눈물 젖은 빵을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은 지구별 여러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김원중이 달거리 공연을 시작한 이유가 북녘 어린이들에게 빵을 보내기 위해서였음을 환기하는 말이다. 굶주리는 자신에게 빵을 만들어 보내준 이에게 어찌 함부로 총구를 겨냥할 수 있겠나.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오버랩되는 시선이랄까. 김원중이 당초 생각했던 바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겨레신문 정대하 기자가 명료하게 정리해두었다. 김원중은 2003~2004년, 2010~2018년 11년 동안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빵 만드는 달거리 공연’을 열어 1억 1,456만 3,000원을 ‘북녘어린이 영양빵 공장사업본부’에 전달했다. 이 공연은 다시 올해까지 이어졌다. 달거리 브로셔에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분단의 현실 속에서 민족적 아픈 현실을 바라보고 예술가들의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 공연하는 공공예술이다. 2003년부터 공연했던 <북한 어린이를 위한 사랑 모으기>를 2010년부터 확대하였다. 북한에 보낼 빵을 표방했지만 뮤지션 나아가 이 지역의 아티스트들에게 창조 활동의 거점 역할을 제공해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매달 주제를 바꾸어가며 다양한 상상력을 기획하고 그것을 매개하는 역할을 자임했다. 장르별, 테마별, 매체별 다양한 시도를 하니 가히 예술의 용광로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광주 혹은 남도의 고유한 음악을 찾거나 자연주의적 감성을 표방하고 새로운 풀뿌리 음악의 사랑방 역할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20년을 채운 지금 더이상 지속하기 힘들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제목이 빵 만드는 달거리 공연인데,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지속되면서 북녘에 빵을 전달할 수 없게 되었다. 공연의 중요한 목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달거리 공연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2023년 브로셔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불던/ 훈풍이 삭풍으로 바뀌고/ 따스하던 공평한 햇살이 일순간/ 먹구름에 덮혀 암흑으로 변한 것 같은/ 시간입니다 지금은/ 이것은 결코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자리가/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것과 다르게/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역천(逆天)입니다....” 그렇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고 남북한의 관계들도 새롭게 진행되더니 시방은 뜬금없고 황당한 대북 적대 정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에 비교하면 김원중의 노래 ‘직녀에게’는 순천(順天)이다. 문병란 시인이 이 시를 쓴 까닭도 그러하다. 적대하고 살육하던 지난 시절로부터 마치 그믐을 보낸 달이 새로 떠오르듯이 남북이 만나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별이 너무 길다 /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고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여기 놓은 노둣돌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부로맨스’ 아니었던가. 박구용이 덧붙였다. “김원중의 노래에는 자연, 사랑, 희망, 생명 이런 키워드들이 쌓여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평화로운 기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평화를 사랑하게 됩니다. 김원중이 만들어준 평화의 메시지가 세계의 평화를 견인할 것입니다.” 얼씨구!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빵 만들기 공연의 메시지요 종착역 아니겠나? 광주의 정신을, 남도의 맥락을 평화의 정신에 담아 세계로 내뿜은 김원중, 평화의 전도사에게 찬사를 보낸다. ‘달거리’가 민요 월령가(月令歌)의 뜻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 뜻은 월경(月經)이다. 전통적으로 가임과 임신과 출산의 의미들을 담고 있는 낱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광주 나아가 남도가 지닌 평화의 공간 평화의 전령이라는 시대적 소명이 있다. 나는 이를 갯벌과 갱번의 사유를 통해 있음과 없음을 교직하는 공간으로 해석했고 이것이 광주와 남도의 토대라고 주장해왔다. 역사의 곡절마다 시대의 기점마다, 나라가 흔들리고 사회가 어지러울 때 가장 먼저 떨쳐 일어난 곳, 기울어진 세상을 바로잡고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동력을 낳았던 곳 말이다. 달이 차면 기울고 또다시 차는 것이 천지자연의 이치다. 달거리가 품은 평화의 아이를 잘 키우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김원중은 다시 어디선가 또 다른 작업을 이어갈 것이지만 감히 바란다. 남도의 맥을 아는 후배들, 제자들 떨쳐 일어나 달거리 시즌2를 시작하라. 그것이 지난 스무 해 김원중이 헤쳐온 평화를 잇는 길이요, 광주와 남도를 재창조해가는 길이다.



남도인문학팁

김원중과 빵 만드는 공연 달거리가 걸어온 길



김원중씨(64)씨는 전남대에 다니던 1985년 ‘바위섬’으로 등장하였고 ‘직녀에게’를 발표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013년 광주평화음악제 총감독, 2014년 오월창작가요제 총감독, 2016~2019년 (사)월음악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3년 <북한 어린이 사랑 모으기 김원중 달거리>로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공연을 시작했다. 2004년 12월 ‘북녘 어린이 빵공장 사업본부’ 공연성금을 기부하고 2005년 평양 대동강 <북한영양빵공장> 설립에 함께 했다. 2010년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매월 세 번째 월요일에 공연했다. 이후 전문가 평가 최우수공연 선정, 김원중의 달거리 참여작가 그림전, 2013년 평화음악제, 2014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돕기 공연 등 광주와 남도지역 예술가들이 함께 하는 공연을 계속했다. 2013년 12월 통산 136회 공연을 끝으로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시즌1을 마감했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