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메마르고 뒤틀린 시대… 그 안팎에 움트는 생명
375)조각가와 소설가의 어떤 해후(邂逅)
“해골은 이미 추악함을 벗어났고 나비 또한 이미 아름다움을 벗어났으니 둘 사이에 그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내 연구의 평생 화두인 재생과 거듭남에도 맞닿아 있는 생각들이다”
2023년 12월 14일(목) 12:46
송기원, 강대철 특별전-해남땅끝순례문학관 제공
송기원, 강대철 특별전-해남땅끝순례문학관 제공
송기원, 강대철 특별전-해남땅끝순례문학관 제공
“한평생 짊어지고 온 삶/ 땅끝마을에 내려놓고/ 담배 한 대 피워무는 그대/ 아스라이 걸려 있는 시간들을/ 무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네/ 그렇게도 보기 싫고/ 때로는 지워버리고 싶었던 발자국들 속에/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네~” 지난 양력 동짓달 초순, ‘땅끝순례문학관’에 울려 퍼진 잔잔한 노래의 들머리, 내가 장구 하나 들고 남도 고유의 당골(무당) 소리로 음영(吟詠)하였다. 조각가 강대철이 소설가 송기원에게 헌정한 시(詩)에 음률을 넣은 곡이다. 강대철이 발의하여 준비하고 <도서출판 살림>이 힘을 보탰으며 해남의 땅끝순례문학관이 주최한 자리였다. 인생 후반기, 한반도의 땅끝 장흥과 해남에서 송기원을 만난 강대철이 벌인 난장, 고목이 시나브로 땅에 스미듯 땅끝머리에서 그윽하게 말년을 맞던 송기원을 소환하여 잠언시를 쓰게 하였다. 그 영감으로 강대철이 조각하고 꾸민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한국문학의 전설 송기원은 누구인가? 1995년 가을이 한창 깊어가는 무렵, 소설집 『인도로 간 예수』 후기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그렇듯 더러운 욕심만이 돋보이는 내 글에도 만일 실오라기 같은 진정이 깃들여 있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어쩌다 불운하여 내 삶에 자칫 잘못 끼어든 것 같은 그런 진정을 느낄 때마다, 나는 무슨 은총처럼 눈부시고 그렇게 눈시울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처연하여 오히려 아름다운 독백 아닌가? 내가 송기원의 마지막 제자가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줄곧 한다. 2013년 송기원의 소설집 『별밭공원』의 발문을 쓴 윤지관은 ‘경계에 선 그대가 가는 곳’이란 제목으로 이렇게 술회한다. “김대중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9년 형을 선고받은 민주투사였고 출옥 후 어머니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실을 알게 된 사연을 가슴 아프고도 담담하게 그려낸 『다시 월문리』에서의 작가였다”. 이후 김대중의 간곡한 정치 권유도 뿌리치고 애오라지 문학의 길만 고집한 한국문학의 전설이다. 또 딸의 죽음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근자의 소설 『숨』이다. 오롯이 문학사의 벼랑길을 걸어온 수도자라고나 할까. 조각가 강대철에 대해서는 본지 칼럼에서 장흥 토굴조각이란 제목으로 다루었기에 생략하니 참고 바란다. 한국문학과 한국미술의 중심축이었던 그들이 40여 성상을 지나 남도 끝자락에서 만났으니 어찌 해후(邂逅)라 이르지 아니하랴. 송기원은 강대철의 조각과 그림, 각양의 부조들에 대해 특유의 해골 그림으로 화답하였다. 몇 주 전, 해남문학관 2층에 전시된 한지(韓紙) 부조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는데, 경기도 쪽에서 왔다는 어떤 분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해골 위에 있는 나비는 작가 자신이겠지요? 자기 자신이 나비가 되어 자기의 해골을 바라보고 있겠지요?”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예, 물론이지요. 작가도 아마 그런 생각으로 그렸을 것입니다.” 물론 이를 작가 송기원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답변을 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했다. 송기원은 어쩌면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나,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곧 향아설위(向我設位)를 이미 넘어서 있다. 또 그이의 작품에 이름을 붙이고 한지 부조와 그림과 각양의 작품들로 꾸며낸 강대철의 심상 세계가 이미 그러하다.



해골과 나비의 해석, 향아설위(向我設位)에서 호접몽(胡蝶夢)까지



전시장 입구에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해골을 떠받치고 있는 조각품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강대철이 빚은 송기원의 손이고 송기원의 해골이다. 스스로 자신의 해골을 모아들고 있으니 시천주요, 또 다른 몸 나비가 되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향아설위다. 주지하듯이 동학 즉 천도교의 시천주(侍天主)는 내 몸에 한울님을 모셨다는 뜻이고 향아설위(向我設位)는 제사상을 벽을 향해 차리지 않고 자손들을 향해 차리는 법식을 말한다. 한울님이 항상 내 마음에 계시니 내가 한울님이다. 그러하니 또 무엇을 향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은 전태일 분신 사건을 접한 후, 문익환, 서남동 목사 등이 ‘오늘은 예수의 이름이 아니라 전태일의 이름으로 기도하겠다’고 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공자나 예수 혹은 최재우 등의 온전한 면모를 해석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송기원과 강대철의 작업은 예술작업을 넘어선 신인일체(神人一體)의 기능을 깊숙하게 포섭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송기원의 해골 그림에는 마치 세트처럼 나비와 꽃과 혹은 그 무엇들이 직조되어 있다. 해골과 나비, 해골과 꽃, 죽음과 삶 혹은 절망과 희망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그이들의 만년의 벗 유홍준이 화답한 장문의 평론에 그 일단이 보인다. ‘시인의 초상, 또는 조각가의 상념’이라는 전시회 표제부터 그러하다. 오프닝 작품해설에서 제창한 기격(奇格)이라는 조어(造語)도 이같은 해설을 반영한다. 기이하고 기발한 품격이라는 뜻이다. 유홍준은 이렇게 말했다. “추악함과 아름다움의 경계, 인생 말년에 한반도의 땅끝 해남과 장흥에 머리를 기댄 송기원과 강대철의 애틋한 해후(邂逅)를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인 필체로 그려냈다.” 하지만 송기원의 독백을 보면, 추악함과 아름다움의 대칭성 혹은 삶과 죽음 등의 직유보다는 오히려 장자의 인유(引喩)에 가깝다. 송기원은 이렇게 말한다. “화선지 한쪽에 해골을 그려놓고는 그 여백에 글을 쓸 것이오. 나에게 해골은 자신을 밤낮없이 바라보고 있는 내면의 눈길입니다. 내면의 눈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제 얼굴에 있는 눈의 눈길이 아니라 또 다른 눈길을 말합니다. 사마타 명상....” 그렇다. 불도를 닦기 위해 잡념을 버리고 정신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명상 말이다. 나는 한발 더 나아가 이렇게 해석한다. 예컨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나비의 꿈을 해석하는 시선이다.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는 물화(物化)의 시선, 혹은 나비와 장주(장자의 이름)가 사실은 한 몸이라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시선 말이다. 해골은 이미 추악함을 벗어났고 나비 또한 이미 아름다움을 벗어났으니 둘 사이에 그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내 연구의 평생 화두인 재생과 거듭남에도 맞닿아 있는 생각들이기에 거듭하여 이 작품들을 감상하는 중이다.



남도인문학팁

송기원과 강대철의 헝거스톤(hunger stone)과 레퓨지아(refugia)

강대철의 작품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갈라지고 부르튼 균열과 그 안에 싹튼 어떤 생명이다. 송기원의 심상을 끌어다 부조한 작품 만이 아니다. 스무 해 성상 장흥 토굴작업에 매진하여 작품세계가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초기 작품들과 토굴의 원형적 형상을 연결해 보면 시종(始終)을 관통하는 내력이 보인다. 극심한 가뭄에 공처럼 움츠렸다가 수분을 받으면 재생하는 부활초(復活草)같은 ‘이미저리’라고나 할까. 송기원이 말년에 천착한 화제(畫題) 또한 각양의 해골과 그 안팎에 움트는 꽃과 나비들이니 두 거장의 세계가 다르지 않다. 품은 철학이 이러하니 남도 땅끝마을에서 아름다운 해후를 할 수 있었으리라. 나는 이 작품들을 통해 헝거스톤(hunger stone)을 읽고 레퓨지아(refugia)를 읽었다. ‘내가 보이거든 울어라!’, 가뭄으로 강과 호수가 마르면 드러나는 헝거스톤의 경고는 오래전 유럽의 돌이 아니라, 기후위기의 시대, 아니 휴머니즘을 통째로 상실한 우리 시대를 경고하는 문구일 것이다. 졸저 <한국인은 도깨비와 함께 산다>(다ᄒᆞᆯ미디어)에서 누누이 강조했던 것도, 빙하기의 생명 공간 레퓨지아였다. 헝거스톤이나 레퓨지아처럼 메마르고 뒤틀린 시대를 강대철은 조각이라는 이름으로, 송기원은 해골 나비와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실상을 드러내 보인 것 아니겠나. ‘해남땅끝순례문학관’, <시인의 초상, 또는 조각가의 상념> 특별전은 2023년 12월 31일까지 전시된다. 문의는 총괄 기획 이유리 학예사에게 하면 된다. 전화: 061-530-5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