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피난민들, 전쟁 소강국면에 고려인마을 떠난다
향수병 등 고통…올들어 11명 출국
2023년 12월 10일(일) 14:12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 한국으로 탈출한 박에릭(가운데)씨가 최근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려인마을 제공
지난 8일 고려인동포 신발레리아(55)·고알렉산드르(57)씨 부부가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고려인마을 제공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고려인마을에 입국해 살고 있던 피난민들이 하나 둘씩 고향으로 떠나고 있다. 올들어 벌써 11명째다.

10일 광주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지난 8일 고려인동포 신발레리아(55)·고알렉산드르(57)씨 부부가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앞서 우크라이나에 있던 두 부부의 자녀가 내년 양파·토마토 농사를 위해 복귀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신씨 부부는 지난해 6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피해 국내로 입국했다.

이들은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한국을 떠날지 고민했으나 녹록지 않은 국내 생활에 복귀를 결정했다. 그간 비좁은 주거시설과 국적취득의 한계 등으로 영구정착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신씨는 “‘불안한 전쟁 상황이지만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일용직을 전전하는 것도 이제는 힘들다. 곡창지대에서 농사꾼으로 지내는 게 더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고려인마을에는 현재까지 500여 명의 피란민들이 머물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해 고려인마을이 지원한 항공권을 받아 입국한 후 국내 정착한 900여 명 중 일부다. 처음 광주에 정착했지만 많은 수가 부족한 일자리로 인해 타지로 떠났다. 이 가운데 11명은 전쟁중인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지난 10월에는 피란민 박에릭(72)씨가 우크라이나 고향 마을을 찾아 지난 1년6개월 동안 머문 고려인마을을 떠났다. 그는 한국에 있으면서 극심한 향수병에 시달렸다. 1년이 넘는 기다림에도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박씨는 결국 ‘죽어도 고향에서 죽겠다’는 뜻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마을 자체적으로 피란민 정착을 위해 쉼터와 협동 농장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이 고향을 잊고 새 출발을 하기에는 재정·규모 등에서 한계가 있다. 고려인마을 협동농장은 지난 2월 광산구 새마을회로부터 농지 3000평을 무상 임대 받아 토종닭·친환경 농산물 등을 재배·수확하고 있는 ‘집단 농장’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현지 농지 규모에 비해 작다 보니 되레 고향 생활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게 마을민들의 설명이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마을의 노력에도 피란민들의 전쟁 상처와 향수병을 치유하는 데 역부족이었다”며 “이제는 피란민들 ‘마음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심리·상담 치료가 필요하다. 마을 예산·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행정당국 지원과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