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 에세이>지난 날 내 고향의 찬란한 가을로 돌아가고 싶다
주현진 수필가·광주문인협회 이사
2023년 12월 07일(목) 13:20 |
![]() 주현진 수필가 |
어쩌면 해지는 산그늘을 타고 오는 서늘한 바람의 탓이었을까. 반쯤은 마르고 푸석해진 풀잎이 이제 막 눕기 시작하는 밭 언덕에는 늙은 호박덩이들이 잠시 낮잠을 즐기는가 하면 낮고 쓸쓸한 무덤들 너머로 총총히 어우러진 억새들이 춤을 추는 듯이 흰 머리채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뙤약볕 내리는 헛간의 지붕위에는 붉은 고추가 널리고, 뒤뜰에서는 휘어진 나뭇가지, 끝의 색 바랜 잎사귀들을 제치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고운 감들이 얼굴 자랑을 했다. 동백도 밤송이들도 그렇게 익고, 가시나무 울타리에 셀 수 없이 탱자들까지도 노란색으로 눈부셨다. 또 어느 해나 그렇듯이 그 곳의 가을은 개울을 막고 물을 퍼내서 고기를 잡는 일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정말 어떻게 그리 많은 물고기가 흐린 물속에서 어울려 살고 있었을까.
그 곳의 가을은 늘 그렇게 왔고, 그때마다 드넓은 들을 에돌아서 흐르는 긴 강물은 어느 때보다 더 깊었다. 바람이 한 점 없어도 물결이 있었고 그것들은 신명이 난 듯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기우뚱하게 돛을 펼치고 고등어를 잔뜩 싣고 통통거리며 바다를 거슬러 올라 온 때쯤이면 서쪽 산등성이에 지는 노을을 뒤에 두고 기러기들은 끼욱끼욱 울면서 들녘을 날았다. 어떤 놈은 혼자 맨 앞장을 서고 다른 것들은 양쪽으로 나란히 줄을 지어 깃털구름의 하늘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와글 와글 강바닥을 흩던 청둥오리들도 행여나 기러기들에게 질까 봐 새 까맣게 날아오르고 내려앉기를 온종일 거듭했다. 그럴 때에는 강물까지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일없이 출렁거리다가 넓은 갯벌에 몸을 던져 스스로 찾아드는 모양은 한 편으로 애잔했다.
이렇듯 가을이 깊어지다 보면 그 곳의 사람들은 누구나 무척 부산했다. 어느 한 사람도 쉴 틈이 없이 종종걸음으로 논과 밭을 오고 가느라 발바닥이 부르 틀 지경이었다. 더욱이 어머니들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부엌일은 말 할 것도 없고, 텃밭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들을 더듬어야 하는 힘들고 고된 일이 끝이 없었다. 실을 잣고 베를 짜고 옷을 짓는 일까지 그 손으로 다 해냈다. 그렇다고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한 해 동안 죽어라고 농사를 지어서 거둔 것이 다음해 봄이 되기도 전에 바닥을 볼지언정, 곡식을 팔아 돈을 사서 자식들의 학비로 보내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것은 어찌하랴.
세상의 모든 부모가 다 같지만, 특히 그이들에게는 자식들을 멀리 도시로 내보내서 공부시키는 것이 살아가는 낙이요 보람이었으므로, 그래서 그 곳 들녘의 하루해는 너무도 짧았다. 들의 끝머리에서부터 집 안마당에까지 등에 볏짐을 지고 나르는 남정네들에게는 잠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시간도 아까웠다. 논둑에 선 채로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이고, 다시 논바닥에 들어가서 허리를 굽히는 모습들은 절대 한 폭의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곳 사람들의 생활이었으며 현실이었다.
아침때가 되어서 새참을 머리에 이고 들길을 건너오는 아낙들의 실루엣마저도 그곳에서는 새삼스럽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의 가을을 살아가는 이들은 틈만 나면 지게막대기로 장단을 맞추며 육자배기에 흥타령을 주고 받았고, 더욱 흥이 오르면 수제비 칼국수를 나눠 먹으며 밤새도록 깽매깽매 풍물도 쳤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공터에 영화가 들어오면 줄을 지어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거기에서 처녀총각들은 사랑도 나누었다. 그리고 또 면에서 나락수매가 있는 날이면 어른이건 애들이건 집안을 비우다시피 했고, 누구네 집에 갑자기 초상이 나거나 새신랑이라도 드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은 여지없이 일손을 놓았다.
이것이 바로 내 옛 고향의 가을날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거나 변하고 말았지만, 이런 풍경들만은 내 마음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황폐해진 요즘의 고향이 아닌, 옛 고향의 모습을 배경으로 꿈을 꾼다. 내가 맨발로 강둑을 달리며 물총새를 쫓고, 쏟아질듯 한 밤하늘의 별을 세며 소월과 같은 시인이 되기를 희망하던 지난 날, 내 고향의 찬란한 가을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