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개최지 오늘 발표…16년 전 '여수' 재조명
재도전 끝 2007년 유치 성공
민간·정부·차치단체 등 총력전
이건철 “코트라 적극활용 핵심”
서갑원 “경쟁도시 지지국가 설득”
2023년 11월 27일(월) 18:27
2030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을 하루 앞둔 27일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동구 주민 등이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염원하며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
2030세계엑스포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16년 전 전국민이 함께 염원해 유치에 성공했던 여수세계엑스포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07년 11월27일(프랑스 현지시간) 여수시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모로코 탕헤르를 누르고 ‘2012세계엑스포’ 개최권을 따냈다. 2002년 12월 중국 상하이에 고배를 마신 뒤 5년 만에 재도전한 끝에 이뤄낸 쾌거였다.

여수시민들은 당시 여수시청 앞에서 밤샘 응원전을 펼쳤고, 최종 개최권을 따낸 직후 열렬히 환호했다. 정치계·경제계, 전국민 모두는 전남의 작은 도시 여수가 만들어낸 신화에 크게 열광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당시 “여수엑스포를 국가 전체의 발전을 이루는 ‘대한민국 엑스포’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포부를 밝혔고 정확히 2012년 여수에서 개최된 여수세계엑스포에는 석 달간 800만명의 관람객이 찾으며 대흥행을 거뒀다.

여수엑스포 유치에는 민간·정부·자치단체 및 주요 인사들이 대내외적으로 활약했다. 중앙유치위원회에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위원장을 맡아 총지휘했고 청와대 인사수석을 지낸 경력이 있던 정찬용 상근부위원장 등 민간과 정부 부문이 함께 참여했다.

명예위원장인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의 활약상도 빼놓을 수 없다.

정 회장은 그룹의 경영 방향을 엑스포 비상체제로 전환하면서 유치 활동에 온힘을 쏟았다. 당시 70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돌며 여수 지지를 호소하는 등 여수엑스포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 또 삼성전자, SK그룹, 한진그룹 등 국내 대기업들도 여수엑스포 유치에 큰 공헌을 했다.

정부에선 한덕수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둔 정부유치위원회 소속 강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또 여야 의원 15명으로 구성된 국회 유치특별위원회가 꾸려져 전세계 순방을 통해 여수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당시 이인기 위원장, 서갑원·김재경 의원이 간사로 활동했다.

지역사회도 여수엑스포를 위해 한마음으로 뛰었다.

박준영 당시 전남도지사가 국회와 중앙정부를 잇따라 방문하면서 여수의 인프라 확충을 위한 국고예산 확보 활동을 펼쳤고 범 정부 차원의 대외 유치 교섭에도 적극 나섰다. 오현섭 여수시장 역시 엑스포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으며 유럽, 중남미 등 17개국을 돌며 박람회 유치에 총력을 쏟았다. 오 시장은 또 조수미, 박찬호, 최불암 등 저명 인사 33명을 명예 홍보대사로 임명해 대내외적으로 여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당시 여수엑스포를 국제행사로 기획한 ‘숨은 공신’ 이건철 전 전남관광재단 대표이사는 “당시 박준영 도지사에게 여수엑스포를 해양엑스포로 제안했고, 이후 해양수산부를 통해 국가계획으로 반영됐다”며 “여수엑스포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해양을 살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해양선언’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는 “정부에서 열심히 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이고 무역이다”며 “코트라라는 조직을 적극 활용한 것이 유치 성공의 핵심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여야 특위 간사였던 서갑원 전 국회의원은 “당시 정몽구 회장과 전세계의 나라를 함께 다녔다”며 “모로코를 지지하기로 했던 나라들과 1시간 동안 면담하면서 설득하고 지지를 호소한 것이 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단절됐던 사회간접기반시설이 여수까지 확대되는 데에는 엑스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세계의 관광도시로 발돋움 하게 된 것은 여수엑스포 때문이었다. 100년이 되도 안됐을 일이 엑스포를 통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최황지 기자 hwangji.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