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도선인 기자의 인도네시아 미술여행>밀림 속 신비한 사원 보로부두르를 가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만다라’ 유적
8세기 지어진 10층 높이 건축물
열반 향한 붓다의 행적 형상화 등
19세기 제국주의 영국인에 발견
199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2023년 11월 26일(일) 17:07
지난 23일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의 모습.
만다라. 부처가 열반에 오르기 위해 거쳐온 일생의 끝으로 우주 진리를 갖춘 상태다. 특히 미술 용어로는 단에 부처와 보살을 배치하거나 동일한 무늬를 반복적으로 그려낸 원형의 도상을 뜻하기도 한다. 깨달음의 안내도와 같은 이 무늬의 결정체를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자바섬 중심, 족자카르타 도심에서 차로 1시간 즈음 떨어진 곳에 있다. 거대한 고대의 건축물을 연상케 하는 이 돌탑은 부처의 경지에 압도당하게 한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미얀마 바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함께 세계 3대 불교 사원으로 불린다. 단일 건축물 가운데서는 최대 규모인데, 경사가 급한 계단을 타고 올라갈수록 점점 면적이 작아지는 10층 높이의 피라미드 형태를 띠고 있다. 곳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부처상과 불교 오브제(사리탑 등), 깎아낸 석조 벽화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중에는 머리가 없는 부처상도 있었는데 도적의 흔적이라고 한다. 강렬한 동남아의 태양 때문일까? 부처의 기운 때문일까?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석조건축물에 숨이 차올랐다.

지난 23일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의 모습.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의 사각형 테라스의 벽면 부조.
이 석조건축물이 미스테리하게 다가오는 것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기록이 없다는 점에 있다. 다만 벽화에 사용된 문자 형태로 보아 8세기 전후 중부 자바에서 번영한 샤일렌드라 불교왕조 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또한 10세기 중엽에 정치·문화의 중심이 서부 자바로 옮겨가면서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1814년 제국주의 영국인들에 의해 발견됐다. 이 거대한 건축물이 1000년 동안 잊혀 있었던 이유는 또한 몇가지 거론되고 있다. 인근 메라피 화산폭발, 그로 인한 지진, 생활이 쉽지 않은 열대우림, 불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을 겪으면서 중요성이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

발견 당시에도 거대한 밀림과 화산재에 덮여 방치된 모습이었다고 한다. 20여 년간의 발굴과 복원으로 보로부두르 사원은 199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8세기. 어떻게 이 정교한 부처상을 다듬고 접착제 없이 돌을 맞물려 건물을 쌓을 수 있었을까? 생각에 잠겼다. 인도네시아 현대미술 아트씬에 스며든 전통문화의 실체적 모습을 확인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각상 하나하나 얽힌 설화를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미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끝 없이 펼쳐진 그 시대의 석조조각에 화려한 장식과 무늬를 좋아하는 이곳 정서도 공감이 됐다. 괜스레 내년의 운세를 맡기고자 부질없이 손을 모으며 보로부두르 사원의 계단을 내려왔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