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46> 정서의 움직임, 감각의 서사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제3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조명’
동양화와 차별된 한국화의 동시대성
유근택 지필묵 근간 일상의 리얼리티
성태훈 인생사 표현 선유도왈츠 눈길
허진 순환적 생태관 담은 유희세계 등
2023년 10월 09일(월) 14:33
유근택 작 Hometown.
제3회 국제수묵비엔날레. 이선 제공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수묵·채색화 등 동양미학에 토대를 둔 작품들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비엔날레와 차별화된다. 현재 동시대 현대미술계와 아트 페어 등에서 한국화 위상이 점점 위축되고 있는 실정으로 서양 미술의 득세 속에서도 중국의 중국화, 일본의 일본화가 저마다 자국 내 미술계·미술시장에서 주목과 관심을 받으며 활발하게 열리고 있지만, 한국의 한국화는 그렇지 못한 게 지금의 현실이다. 제3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국내외 전통적·현대적 수묵·채색 작품, 동양미학이 녹아든 다양한 현대미술품을 한 자리에 모아 작품들을 통해 한국화의 의미와 가치, 현대미술의 한 축으로서 나아갈 방향 등을 조명하고 모색하는 전시회라 하겠다. 필자는 ‘수묵의 대중화’를 주제로 열린 수묵비엔날레를 다녀오고, 국내 한국화 작가4명의 연구를 통해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는 기획자 시각에서 이번 칼럼을 써 내려가고자 한다.

먼저 ‘한국화’의 사전적 의미는 한국의 전통적인 기법과 형식에 따라 그린 회화를 총칭하는 말이다. 흔히 ‘동양화’라고도 말하지만, 이 경우 일본의 우키요에나 중국의 회화까지도 포함될 수 있어서 좀 애매할 수 있다. 사실 아주 넓은 의미의 한국화는 고분 벽화까지 한국화로 칠 수 있다. 한국화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동양화단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말이었다. 이 시기 ‘한국화’라는 용어는 비단 특수한 화가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나 특정 시대의 회화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닌 한국의 동양화를 두루 일컫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한국화라는 용어 사용에 있어서 1983년의 변화는 교육의 측면에서 1981년 교육과정 재편과 함께 1983년 기존의 동양화라는 명칭을 한국화로 바꾸어 표기하기 시작했다. 국내 미술계에서도 1982년 대한민국미술 대전에서 동양화를 한국화 부문으로 지칭한 것이 변화의 시초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동양화를 다루는 각종 전람회, 회고전, 기획전 등에서 ‘한국화’란 용어가 널리 정착되고, 1980년대 한국에서 탄생한 동양화 전반에 대해 한국화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했다. 이런 변화를 잘 알려주는 사례로 1978년 『한국현대미술사 : 동양화』 라는 책이 발행되었는데, 이 책은 이후 수정 보완되어 1984년 재출간할 때 ‘동양화’ 대신 『한국현대미술사 : 근대 한국화의 흐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이 사실은 약 7년의 짧은 기간 동안 용어에 큰 변화가 생겨난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1985년 『미술세계』 11월호에 이석구가 기고한 글은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한다. 그는 한국화의 현주소를 진단하며 “한국화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채 몇 년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한국화 논의의 출발점을 청강 김영기의 기고문들과 활동들로 잡았다.

그 당시 많은 한국화 작가들이 급변하는 도시화 및 서구화 속에서 전통적인 소재, 재료, 기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도전과 실험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동시대의 역사와 시대 인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화면 안에 병치함으로써 현실적 삶과 밀착한 작업, ‘그림’을 담아내는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국화를 모티브로 변화되는 시대의 현대 회화로 바라보고 작업하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유근택 작가는 전통적 동양화의 지필묵을 근간으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일상을 담아내고 리얼리티를 기억하는 현대미술 작가이다. 그의 작업에 전환점을 마련해준 ‘맹인을 이끄는 맹인(1999)’, ‘창밖을 나선 풍경(1999)’ 등에서 보이는 소재의 일상성과 설치 방식은 그의 작품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작가의 화풍을 살펴보면 먹이 퍼지는 발묵 뿐만 아니라 과슈와 호분을 이용한 채색으로 차별화된다. 그의 화면은 서구의 원근법과 동양의 사상, 개인의 경험이라는 삼단계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현대회화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그리고 평이하고 가벼운 ‘일상’이라는 주제는 역사성과 서사로 확대된다. 먹으로 온전히 기록된 일상이라는 모티브를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 사이를 기록하기 위한 방법으로 ‘리얼리티’를 사용함으로써 그 깊이가 더해간다.

성태훈 작 선유도왈츠3.
한국화 전통적 형식과 기법으로 현대적 내용과 주제를 포용하여 한국화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꾸준히 모색해 온 성태훈 작가는 최근 재료와 소재, 주제에서 또 다른 심리적 표현주의를 자신만의 내러티브적 요소를 담아 그려 넣어 시대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선유도왈츠’ 연작들은 아크릴 재료를 사용했지만, 동양화의 준법과 채색법이 강하게 느껴지는 최근 대표작품이라 하겠다. 작가는 “대학졸업, 교통사고로 인한 병원 생활, 결혼, 출산, 가족, 부모님의 작고, 조니 워커 킵워킹펀드상(Johnnie Walker keep Walking Fund Award, KWF) 수상, 그 간의 작품 활동, 작업에 도움을 준 사람들 등 나의 지나온 삶의 여정을 모티브로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을 왈츠로 표현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굵직한 현대근대사들(8·15, 6·25, 4·19, 6·10, 5·18)과 남북분단으로 인한 긴장상황을 전투헬기와 장갑차로 표현했다”고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허진 작 유목동물.
허진 작가는 수묵화의 전통적 특징인 함축미를 벗어난 서사적 미적구조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형상적 유희세계를 채색화적 성격이 강한 표현방식에 의해 표현고자 한다. 이는 전통이라는 중층적 의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세이며 모더니즘에 대한 다중적 콤플렉스를 승화시키고자 하고 있다. 작업의 주요 주제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합하는 순환적 자연 생태관을 지키고자 하는 친환경론을 주제로 삼은 작품세계를 제시한다.

권기수 작 능수버들의 소리.


마지막으로 권기수 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과 기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작가는 성별이나 나이로 규정지어지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기호인 동구리를 창조, ‘사회적 상호 작용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작업에 담아낸다. 웃는 얼굴의 캐릭터적인 요소를 통해 작가는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희로애락 속웃음이라는 사회적 가면을 쓴 현대인의 모습을 선명히 드러낸다. 또한 단순화된 형상의 캐릭터가 지닌 한계를 확장시키기 위해 작가는 강열한 색감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소재를 선택, 구성하며 화면 안에 담아낸다.

위 국내 4명의 현대 한국화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와 현대미술 안에서 작가가 살아있는 본연의 일상적 삶과 작업 사이 고민하고 행하는 관점을 들여다본다. 오늘날 시대의 미적 현상과 독자적인 관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현하며, 먹과 한지의 재료와 산수풍경을 넘어 지금 여기, 시각적 리얼리즘의 확장을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작품을 통해 우리가 경험했거나, 경험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과 정서의 움직임을 제공하는 종합적 감각의 서사(narrative)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