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일제시대부터… 100년 ‘지산 축구대회’ 아시나요?
1921년 8월15일 시작 이어져 와
코로나 여파로 잠정 중단됐지만
올해 다시 시작돼 100회째 맞아
“고향 사람들과 추석 한나절 뛰면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곤 했어요”
2023년 09월 26일(화) 17:21
지산축구대회는 지난 1921년 8월 15일 일제 강점기 때 시작 돼 올해로 100회째를 맞았다. 사진은 1932년도 대회에서 행사에 앞서 출정식을 갖는 마을 주민들읲모습. 독자제공.
일제강점기때부터 이어져온 지산축구대회가 올해로 100회째를 맞았다.

26일 광산구와 광주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코로나 19 여파로 3년간 치르지 못한 지산축구대회가 오는 29일 개최될 예정이다.

올해로 대회 100회째 맞는 지산축구대회는 지난 1921년 8월 15일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작됐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옛 광산군 지산면 지역 80여 자연마을 친선 체육대회로 출발한 이 대회는 일제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석 때마다 한자리에 모여 지역민의 화합을 다졌다.

특히 6·25 때도 전쟁을 피해 열릴 정도로 역사와 전통이 깊다. 이렇게 지속돼 온 대회는 면 단위 소규모 지역 축구대회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체육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이 전통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져 매년 추석 명절 기간(2일간) 옛 광산군 지산면 지역인 현재 광주 북구 건국동, 양산동 일대 자연마을 단위 중심으로 개최되고 있다.

광산군 지산면은 1957년 광주시로 편입되기 이전까지 전남에서 가장 큰 면이었다. 이곳에선 1921년 지산면민 체육대회를 출발로 매년 추석 명절이면 주민 축구대회가 열리는 전통이 100여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경평(서울과 평양) 축구대회보다 8년 빠르다. ‘경성-평양 축구대항전’(경평전)은 1929년 10월8일 처음 개최됐다가 1935년 중단됐다.

‘지산면 축구대회’는 1932년 대회 때부터 자료가 남아 있다. 대회는 초창기부터 지산면 지역 자연마을 별로 팀을 만들어 출전하는 전통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경기장은 지산초등학교로 경기에 사용한 공은 초창기에 짚을 돌돌 말아 만든 ‘짚공’이었다고 한다. 선수들은 ‘짚공’을 가지고 추수가 끝난 논 등지에서 연습하며 경기력을 키우기도 했다.

1957년 지산면이 광주로 편입되고, 양산초등학교, 광주북초등학교, 주암초등학교(폐교) 등이 신설되면서 지산체육대회는 한동안 나눠져서 개최됐다. 지산초 동문들과 별도로 각 학교 졸업생들은 동문회를 중심으로 각 학교 단위로 추석 때마다 출신학교에서 축구대회를 열어 한때 ‘건국동 지역 축구대회‘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통합 여론이 높아지면서 2003년부터는 지산초, 양산초, 광주북초, 주암초 등 4개 학교 졸업생들이 추석날 모두 한자리에 모여 축구를 즐기고 있다. 출전 자격도 옛 지산면 자연마을 출신이거나 지산면 지역 4개교 졸업생 이외에도 자연마을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이면 가능하도록 확대했다.

명칭도 ‘지산지역 한마당 축구대회’로 바뀌었다. 경기장은 북구 연제동 연초제조창으로 옮겼다. 대회운영도 기수별 주관에서 지산면 지역 출신인사들로 구성된 지산체육회가 책임지도록 했다. 출전팀도 거주민이 많은 마을은 2~3팀이 출전할 수 있다. 행사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청년부와 장년부로 나눠 진행되는 마을 단위 축제인 셈이다.

2016년 지산축구대회 개최 모습. 대회에 앞서 마을주민들이 국민의례를 갖고 있다. 독자제공.
암울했던 일제시대 추석과 축구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주민들이 모두 모여 마을잔치를 여는 추석은 농촌에서 가장 큰 명절이었다. 또 당시엔 조선 사람들의 모임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친선 축구대회는 가능했다.

도촌마을에 사는 김찬영(57)씨는 “어른들로부터 ‘고향 사람들끼리 추석 한나절을 뛰면서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곤 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워낙 경쟁이 치열해 30년 전까지만 해도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고 전했다.

정환담 전남대(법학과) 명예교수는 “우승한 마을의 청년들은 영웅 같은 명예를 누렸고 축구 시합은 마을의 단합을 과시하는 경쟁의 장이었다”고 했다.

지역사회 결속을 이끌어 왔던 축구는 현재 고향과 고향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고향을 찾은 이들은 축구대회를 위해 성묘를 마친 뒤 곧바로 운동장으로 달려온다. 통상 서울과 대전·울산 지역 등에서 성묘를 온 출향인까지 500여 명이 참여한다.

한국전쟁 기간에도 거르지 않고 대회를 계속 이어가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와 전쟁도 막지 못했던 지산축구대회가 코로나 시국으로 2020년, 2021년 개최되지 못했다. 많을 땐 23∼24개 팀이 참가했지만 지난 2022년엔 17개 팀으로 줄었다.

지산체육회는 올해 지역민의 화합과 애향심 고취에 기여했던 제100회 지산축구대회를 성대히 개최할 계획이다. 28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인기 가수 김연자 씨를 초청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한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윷놀이와 투호, 여성 승부차기 등 행사가 마련됐다.

 김동윤 전 대회위원장은 “그동안 코로나 여파로 축구대회가 열리지 못했다. 100회째를 앞두고 있어서 마을주민들이 아쉬움이 많았다”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지산축구대회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