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동물약, 불법번식장 악용
광주 불법번식장 동물단체 적발
모견 등 120마리… 10년 넘게 운영
분만촉진·안락사용 등 약품 사용
동물약국서 처방전 없이 구매 가능
“학대 악용 ‘약사예외조항’ 손봐야”
2023년 09월 25일(월) 18:01
이달 초 광주 남구서 적발된 한 불법번식장의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광주 도심 한복판에 버젓이 간판을 내걸고 운영되고 있던 불법번식장서 안락사약 등 동물약품들이 다량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동물용 의약품은 ‘약사예외조항’에 따라 의사 처방 없이 구매 가능한데, 이를 악용한 사례가 일어난 것이다. 동물보호 단체는 해당 제도가 동물 학대 등에 오남용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25일 광주 남구 등에 따르면, 이달 초 관내서 10년 넘게 운영돼 온 불법번식장 2곳이 잇따라 적발됐다. 1곳은 미허가 업체, 또 다른 1곳은 판매업으로만 등록된 곳이었다.

미허가 업체에는 116마리의 개들이 있었고, 관내 펫샵들을 대상으로 불법 교배까지 해줬던 것으로 드러났다. 판매업으로 등록된 곳은 대여섯 마리의 모견과, 수십 마리의 새끼들이 발견됐다.

해당 업체를 지자체에 신고한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의 이세현 부대표는 “미허가 업체는 초등학교 옆 도로변서 크게 간판을 걸고 10년 이상 운영해 왔다”며 “일부는 성대수술을 해 짖지 못하게 했고, 모견들의 젖은 퉁퉁 불어있었다. 정액을 채취해 모견들에게 주사기로 주입한 정황도 찾아냈다”고 전했다.

신고 접수 이후 비글구조네트워크와 함께 현장을 확인한 남구는 해당 업체들을 동물보호법와 수의사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미허가 업체선 동물학대와 불법 투약 행위가 이뤄졌다고 판단했고, 판매업체선 ‘전남서 운영하고 있는 허가 번식장이 공사 중이라 잠시 개들을 옮겨놓은 것’이라는 사업주의 주장에 따라 자가 진료 등에 따른 수의사법 위반만 적용된다고 봤다.

남구 관계자는 “이전까지 해당 업체들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거나 점검 시 적발된 사항은 없었다”며 “미허가 업체는 정액 채취 등 증거가 명백히 발견돼 동물 학대가 적용된다. 다만 또 다른 업체에서는 동물학대로 볼 만한 정황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달 초 광주 남구서 적발된 불법번식장서 호르몬제, 항생제 등 동물용 의약품이 다량 발견됐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충격적인 것은 해당 업체들서 동물의약품이 다량 발견됐다는 것이다.

‘안락사약’부터 분만촉진제로 쓰이는 ‘옥시토신’ 등 종류도 다양했다. 해당 약품들은 개들을 교배시키거나 번식 기능을 상실한 개들을 처리하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의사법에 따르면 수의사는 동물에게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투약할 필요가 있을 때는 처방전을 발급해야 한다. 처방전은 직접 진료하거나 검안해야만 발급할 수 있다.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은 마취제, 호르몬제, 항균·항생제 등이다.

이번에 적발된 광주 불법번식장서 발견된 약품 대부분도 처방대상에 해당한다.

다만, 여기에는 ‘약사예외조항’이라는 허점이 존재한다.

약사예외조항이란 약사법 제85조 7항에 따른 것으로 ‘약국개설자는 동물용 의약품을 수의사 또는 수산질병관리사의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물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의약품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판매기록부 거래현황을 작성하면 된다.

즉, 처방대상 의약품도 수의사 진료 없이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동물용 의약품이 동물 학대로 손쉽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보호 단체들은 불법번식장서 약품이 발견되는 일이 흔하다고 전했다.

임용관 광주동물보호협회 위드 대표는 “불법번식장서 마취도 없이 수술하거나 발정제를 주사하는 경우가 있다”며 “안락사 관련 약품은 비교적 엄격히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항생제나 호르몬제 등의 경우에는 제재가 없는 것 같다. 악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동물용 의약품과 관련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광주 남구서 적발된 한 불법번식장의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전문가들은 ‘판매는 합법, 투약은 불법’인 제도의 모순점을 지적했다.

수의사법 제10조에 의하면 수의사가 아닌 자는 동물을 진료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약사법에 따라 약사들은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해도 법망에 걸리지 않지만, 이를 구매한 뒤 ‘자가 진료 후 투약’한 소비자는 처벌받는 실정이다.

대한수의사회 전남지부 관계자는 “약품을 판매·구매할 수 있는데, 투약하는 것은 불법인 점 등 수의사법과 약사법의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소비자만 범법자가 되는 상황”이라며 “악용될 소지가 있는 약품들은 ‘판매’를 엄격히 관리해 최소한의 보호 법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