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간인 희생·일제 피해 회복 아직 멀었다"
●유엔 특별보고관의 한국 평가 보고서
지난해 한국 인권현황 조사 발표
5·18, 日 징용 등 다양한 사례 검토
“군 수뇌부 사과 無”,“신원 공개 안 돼”
조사권한 제한 진화위2기 연장 권고
2023년 09월 20일(수) 18:24
파비안 살비올리(오른쪽 두 번째)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유엔 특별보고관이 지난해 6월12일 광주 서구 5·18기념재단을 방문해 5·18진상규명 과제 관련 간담회에 참석했다. 5·18기념재단 제공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 유엔 특별보고관이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해 국내 인권사안들을 들여다보고 현황을 조사한 보고서가 국제사회에 공개됐다. 보고서에서는 5·18, 일제강제징용 등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가 언급됐다.

파비안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지난해 6월 8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세종, 광주, 대전, 안산 등의 추모 유적지, 옛 수용소, 기념공간 등을 방문해 한국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를 평가했다. 이후 그는 이같은 내용을 지난 13일 54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안건으로 상정해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 방지에 관한 특별보고’를 발표하면서 27개의 권고안을 공개했다.

●5·18 “군 수뇌부 사과 없다”

파비안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5·18민주화운동의 진실규명, 피해 보상, 사죄와 명예 회복의 현황을 정리해 발표했다. 그는 지난 2019년에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설립됐으며, 희생자와 유족에게 지원금과 의료보험, 주택, 교육, 취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파비안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4명이 공식 기념식에 참석해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다는점을 명시했다. 다만 그는 “인권 침해에 책임 있는 군 수뇌부는 사과하지 않았다(The military leaders responsible for the human rights violations did not apologize)”고 단호하게 전했다.

또한 인권 침해 책임이 있는 보안, 사법 등의 관리들이 여전히 재직 중이며 이들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사실도 국제 인권사회에 알려졌다. 그는 “2018년부터 간첩조작사건과 형제복지원, 5·18민주화운동 등 가해자들에게 수여된 국가포상이 취소됐지만 이들의 신원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모, 기념사업에 대해 5·18 국가기념일 제정, 국립5·18민주묘지 조성, 기념식과 기록관 등을 언급하며 호평이 내려졌다. 특히 파비안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옛 광주교도소를 지목하며 추모 공간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의견과 함께 광주시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외교부 의견서가 日 강제집행 막아”

파비안 살비올리는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강제징용된 피해 사례도 주목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1990년대부터 숱한 소송에서 패소했다가 2018년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음을 설명하며 ‘대한민국 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를 법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판결’임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외교부가 대법원에 재판을 미뤄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과 관련 파비안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배상금 지급이 예정된 2022년 7월, 정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해 지급이 이행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어 “일본기업의 법적 책임을 면제하고 일부 피해자들의 동의가 부족했다”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도 “피해자의 3분의 2가 합의에 동의했다”는 한국정부의 의견을 인용했다.

●진실화해위 활동 “연장토록”

파비안 살비올리는 2000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2004년 국정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발전위원회 등이 출범했지만 외부기관의 방해나 조사 제한이 커 역량과 성과가 제한됐다고 분석했다.

현재 진행중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2기에 대해서는 “국정원, 경찰청, 행안부 등 인권 침해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부기관의 문서와 기록물에 대한 접근 권한이 부족해 기관의 업무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보고서에 담긴 27개 권고안 중 진화위 2기의 임기를 연장하고 조사권한을 확대하라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현재 진화위 2기는 오는 2024년 5월26일자로 임기가 만료되지만 그때까지 조사 진행도가 57%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때문에 추가적으로 1년 더 활동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현행법에 따라 대통령실과 국회에 협조를 구할 방침이다.

진화위 관계자는 “이번 유엔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를 토대로 임기 연장을 협의할 계획이다. 이번 보고서 발표가 한 건이라도 더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