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꿈나무들 학업중단 사태 없어야”
지역 출신 ‘딜라이트’ ‘오너’ 자퇴
전국 최초 e스포츠부 창단 불구
프로게이머 학업 연장 대책 전무
“선수 되는 건 소수… 대비책 필요”
2023년 09월 11일(월) 18:26
광주공업고등학교 e스포츠 운동부 학생들이 일과 후 팀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대세’로 통하는 e스포츠는 2023년 들어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스포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리그오브레전드·배틀그라운드 등 8개 게임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 오는 24일 사상 첫 공식 경기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다른 스포츠에 비해 차별 받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학업 연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미비다.

11일 광주·전남지역 e스포츠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광주에서는 전국 최초로 학교 e스포츠 운동부가 창단됐다. 대상은 광주공업고등학교(10명)와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6명)다. 두 학교는 내년부터 광주시·광주시교육청을 통해 유니폼·각종 용품 및 대회 참여비·연습 공간 리모델링 등 일반 운동부와 동일한 지원을 받는다.

e스포츠 꿈나무들을 위한 교육 발판은 마련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운동부로 소속돼 꿈을 키운다 해도 결국 프로구단 입단을 위해 자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 e스포츠학과 교수는 “타 운동과는 다르게 e스포츠는 제도적으로 불리한 점이 많다”며 “e스포츠 훈련 시간이 학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가장 크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자퇴를 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수는 이어 “자퇴하고 18시간 이상 훈련에 임한다 해도 프로 선수가 되는 건 10%도 안 된다. 그런데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면 결국 대학에도 진학할 수 없다. e스포츠 관련 수업을 교육 과정 속에 적용하든지, ‘취업계’처럼 프로 입단 후 학업 일수를 인정해 주든지 등의 제도망이 필요하다. 학업의 연속성이 있어야 청소년들도 부담 없이 이 생태계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실제로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국내 학생들은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리그오브레전드(LoL) 선수인 T1 페이커(이상혁)도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 페이커는 여러 인터뷰에서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서도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을 두고 못내 아쉬워했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 광주·전남 출신 선수들도 있다. 올해 리그오브레전드 한국 리그(LCK)에서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젠지 딜라이트(유환중·목포중앙고)와 T1 오너(문현준·광주동신고) 선수다. 두 선수는 5년 만에 한국서 열리는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 각 팀의 대표로 출전한다. 이들 모두 고등학교 3학년 당시 프로게임단 입단을 위해 학교를 자퇴했다.

과거 오너 선수를 지도한 박유지 동신여고(당시 동신고) 교사는 “현준이가 졸업 몇 달을 남기고 프로게이머 준비를 위해 자퇴했다. 정말 근면·성실한 학생이었다.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웠다”며 “다행히 잘된 모습을 보니 뿌듯하지만, 당시에는 도저히 남은 출석 일수를 채워줄 방법이 없어 몹시 속상했다”고 회고했다.
지난달 31일 광주e스포츠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광주공업고등학교와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의 학교운동부 e스포츠팀 창단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
전문가들은 e스포츠 산업이 확장되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지역 내에서 e스포츠 선수를 육성한다 해도 대부분 수도권으로 가야 하는 현실에 ‘지역 교육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정연철 호남대e스포츠학과장(광주시e스포츠교육원장)은 “얼마 전 광주 특성화고 2곳에서 e스포츠 운동부가 창단됐다. 공식적으로 지역 e스포츠인을 키운다는 것은 굉장히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라면서도 “오래전부터 가장 아쉬웠던 것은 지역 내 e스포츠 유망주들이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상경한다는 점이다. 현 제도상 게임과 학업은 연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결국 자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광주시교육청 체육예술인성교육과 관계자는 “이제는 e스포츠가 단순한 게임이 아닌 체육의 한 종목으로서 분류됐다. 교육청도 교육과 스포츠 사이의 ‘미래 투자’로 e스포츠부를 신설한 것”이라면서도 “(학업 인정 등) 문제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고 있다. 현재 광주 두 e스포츠 운동부도 (정규 수업이 아닌 탓에) 방과 후 따로 연습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업 중단을 하지 않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 면밀히 검토해 보겠다”고 전했다.

김현우 광주아시아e스포츠산업지원센터장은 “현재 e스포츠부 학생 선수들은 전문 선수로 등록되지 못해 교육청으로부터 ‘전문 체육 지도자’도 배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e스포츠가 다른 스포츠들과 함께 아시안 게임에도 출전한 만큼, 이제 관련 제도를 빠르게 정비해야 한다”며 “광주·전남 지역에는 e스포츠학과 대학이 3곳이나 있다. 특기자 전형 등을 활용한다면 지역 e스포츠인 유출·학업 연장 등의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