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의정단상·이명노> 주거불안정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명노 광주시의원
2023년 09월 07일(목) 15:02 |
![]() 이명노 시의원 |
재난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아파트, 황궁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행태와 이기주의를 다룬 디스토피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도입부에 나오는 동요 ‘즐거운 나의 집’이다. 익숙하게 들어온 귀여운 동요의 노랫말이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다소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금 우리는 즐거운 곳에서 오라 하여도 마다할 내 집이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가.
광주 첨단에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피해자가 최소 160여 명에 달하며 대다수 청년으로 파악되는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다. 하루아침에 수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된 임차인들은 당장 빚을 메꿀 목돈이 없다면 금융권에 기대어 앞으로 수년을 빚 갚는 데만 몰두해야 한다.
지난달 31일, 지인인 제보자로부터 간절한 호소의 연락이 왔다.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전세 오피스텔의 임대법인이 파산해 경매로 넘어간단다. 대학 다닐 때부터 각별한 친구이자 언급한 오피스텔에 방문한 경험도 있다 보니 언론에 노출되는 여느 전세사기 사건보다 사뭇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정황은 대략 이러하다. 각자 유한회사 법인을 운영하는 임대사업자 부부는 매물을 그들 딸들의 명의로 임대했고, 재계약 시점에 맞춰 법인으로 임대인을 변경하며 파산을 신청했다. 게다가 해당 매물을 중개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임대사업자 부부의 딸 소유이며, 계약할 당시 이 가족은 서로 모르는 사람인 양 행세했다고 한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이미 폐업 후 잠적했으며 이들 모두 연락되지 않는 상태다. 파산 신청 이후 임차인들에게 등기가 발송됐고 경매가에 따라 전세보증금은 폭락할 것이다. 3명으로 시작한 피해자 단톡방은 하루 만에 70여 명의 규모로 늘어났고 피해자들이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많게는 200명 이상의 피해자가 각 5000만원 이상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에 소재한 오피스텔이라 입주자의 대부분은 인근 대학, 광주과학기술원(GIST)의 대학생, 연구원이거나 첨단 인근에 입주한 기업의 종사자 및 사회초년생과 취업준비생 등 젊은 청년들이다. 약 1억4000~5000만원인 전세가를 전세대출을 받는다는 가정하에 80%의 대출금을 제외한 나머지 20%, 3000~4000만원의 대출보증금은 이마저도 대출이거나 어렵게 모아온 사비다. 같은 청년들이 그만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들인 노력과 시간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수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된 절망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안 되겠다 싶어 지난 6일 제319회 광주시의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에 나서 이 사건을 수면 위로 올렸다. 적극 행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사기 사건이 없어지려면 사기꾼이 없어져야 한다. 임대차 과정에서 임대인은 도덕성, 임차인은 칼날 같은 신중함과 법적 지식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사기를 칠 수 있도록 방임한 사회의 책임을 모조리 국민에게 돌려서는 안 될 것이며, 피해를 모조리 임차인에게 지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같은 날 본회의에서 광주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는 전세사기 예방 패키지 조례를 통과시켰다. 의회에서도 시민들이 입은 피해와 상처를 치료하며 앞으로 또 다른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본회의장에서 꾹꾹 눌러 담은 감정으로 촉구했다. 수사권을 가진 기관에서는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즉각 수사에 착수하고, 행정기관에서는 국토부에 의존하지만 말고 우리 시에서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정책금융을 활용해 피해자를 대상으로 대출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대신 갚아줄 수 없는 일이라면 차근차근 빚을 지워낼 수 있는 여유라도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즐거운 곳에서 오라 하여도 마다할 내 집이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가장 편안하고 즐거워야 할 집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병들게 하기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재난 없는 디스토피아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 청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행정과 의회, 언론과 법조계가 모두 나서 사회를 바로잡아야 할 때다.
시민들을 보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