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박창규> 인간 이순신이 그리운 시대
박창규 전남도립대 교수
2023년 09월 07일(목) 13:26 |
![]() 박창규 교수 |
1597년 9월 16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중과부적의 열세 속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단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 함선을 격파하고 십만여명의 왜군을 물리치는 기적의 대승, 명량대첩을 거두게 된다. 대체 열세 척으로 어떻게 백서른세 척을 이겼을까? 그 해답을 찾고자 8일부터 열리는 명량대첩축제장인 울돌목으로 달려가 본다. 해남 우수영과 진도 녹진 관광지가 보이는 이곳 바다는 물이 운다고 하여 이 물목을 울돌목이라 불렀다. 이곳에 오면 생사와 존망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을 만한 한 줄기 역류가 먼 곳에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삶과 죽음이 뒤엉켜 부딪히는 사지에서, 순류와 역류의 혼재 속에서 펼쳐진 이 곳에서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수 많은 전라도 백성들의 삶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 명량이 일궈낸 승리에는 이순신과 남도 백성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남의 땅을 넘어 살육의 칼날을 들이대던 침략 앞에 이 땅 남도의 백성들이 내민 무기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요, 작은 일상을 일구고 지키고자 한 소박한 꿈이었다. 그 믿음과 꿈은 이순신을 만나 성난 울음의 물길이 되어 ‘승리의 바다’를 이루었다. 426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이 지키고자 한 소박한 일상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꿈은 오늘 우리에게도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이것이 바로 저 명량의 물길 앞에서 우리가 다시 서야 하는 까닭이다.
올해 초 지식인들이 선정한 사자성어에 ‘과이불개(過而不改)’라는 생경한 단어가 뽑혔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음(논어)’이라는 뜻이란다. 과연 나라판을 품평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지 의문이지만, 어찌 됐건 ‘참여하는 양심,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의지를 담아 올 한해가 잘못된 일은 반성과 참회가 이루어져 역사의 진실과 교훈이 이 사회에 울려퍼지길 바란다는 의미로 들린다. 동북아의 역사 문제 속에는 우리 시대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인권과 평화라는 주제가 남아 있다. 또한 인접국과의 상호번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동북아 바다해양을 가진 나라들과 협력의 과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명량해협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치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국난을 극복하고 민초들의 힘이 모아져 어려움을 이겨내 왔는지를 보여 주는 기적의 스토리이다. 당당할 수 있는 나라가 되라는 회오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 시대의 리더들에게 진보와 보수, 성장과 분배 등의 다양한 가치를 통합하고, 지역, 세대, 직종간의 갈등을 해소하여 대한민국 사람을 모두 행복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역사적 소명이라는 외침도 들려오는 것 같다. 그저 나아갈 뿐. 소용돌이치는 허연 민낯 속에 수많은 표정을 머금고, 깊은 바다에서 치솟는 울음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물길은 우리에게 기적같았던 역사를 잊지 말라고 울려주고 있다. 9.8~10일 땅끝 해남 우수영과 진도대교에서 2023 명량대첩축제가 열린다. 축제가 이곳저곳에서 한창이다 보니 여느 축제와 같다고 여기게 되어 단순한 이순신축제가 개최된다고 치부하여 가볍게 넘길 수 있다. 그러나 명량대첩의 현장, 울돌목에서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어른에 이르기 까지 단순한 축제를 넘어 생명의 힘을 느끼는 감동의 역사적 시간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명량대첩축제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사적 가치가 여기에 흐르고 있다. 유난히도 격동하는 작금의 국제상황은 동북아 정세가 여간 심각하지 않다. 힘든 시기를 보내오면서 “아직 저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이순신의 상유십이(尙有十二) 정신을 되새기며 어려운 상황에서 언제나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보고,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떠올렸던 명량대첩의 역사적 현장, 울돌목에 서 있다면 삶의 에너지를 얻어 가는 감동의 역사적 시간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