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취재수첩>오염수가 앗아간 선상의 추억
송민섭 사회부 기자
2023년 08월 31일(목) 12:53 |
송민섭 기자 |
시간이 흘러 잠잠해진 배위에서 낚싯대를 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결국 몇마리 잡지 못하고 육지로 돌아왔지만 배 위에서 지인들과 함께 끓여 먹은 라면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갈치 대신 세월만 열심히 낚아 하루만에 폭삭 늙었다”며 웃기도 했다. 배멀미, 추위 등과 싸운 탓에 농담처럼 하루만에 추레한 모습으로 변하긴 했지만, 함께 고생한 덕에 값진 추억으로 남았다.
지인은 지난 주말에도 수산시장에 다녀왔다고 한다. 단지 평소 좋아하던 회를 포장하러 간 것이었는데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횟집 주인은 “그만두고 싶어도 한평생 이것만 해왔는데 이제와서 뭘 더 할 수 있겠냐”며 울먹였다고 한다.
지인은 횟집 주인의 말을 듣고 필자에게 전화해 하소연을 했다. 그는 “나처럼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염수가 방류되도 먹는다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그럴거 아니냐. 이제 회에 소주 한잔을 하자고 해도 흔쾌히 가자고 대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라며 “우리가 나눴던 선상위의 추억도 마찬가지다. 배낚시는 바로 잡은 생선을 배 위에서 먹는 맛인데 이제 누가 같이 배낚시를 가겠나. 앞으로 나눌 추억이 줄어든다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를 한 것을 두고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과학을 믿어라”라고 한다. 정부와 대통령실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정치적 선동이 아니고 과학”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희석 방류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과학과 생물학계 발표에도 국민들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학적 해명만으로는 불안을 해소시키기에 역부족이다.
단순히 ‘과학적으로 검증 됐으니 믿고 먹어도 된다’라고 말하기엔 국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게 현실이다. 선상위의 추억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함께한 추억들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배낚시로 잡은 신선한 생선을 배 위에서 즐기던 그 시간들도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오염수 문제는 과학적으로 해명이 된다는 것 이상의 문제로 여겨져야 한다. 수산업 종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더 큰 사회적 고민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