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아침을 열며·정연권> 화엄사에서 꾸는 ‘한여름밤의 좋은 꿈’
정연권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장
2023년 08월 30일(수) 16:52 |
![]() 정연권 센터장 |
화엄사 야간 개방이 지난 1일부터 자정까지 진행되고 있다. ‘하야몽(夏夜夢:여름밤의 꿈)과 화야몽(華夜夢:화엄사 밤의 꿈)’ 프로그램도 병행한다. 절은 깨달음과 경배의 대상이다. 무소유 실천의 도량이며 자비와 지친 심신을 위무 받고 싶어 찾는 곳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 중생 구제를 위해 나라도, 가족도, 자신도 버리는 무소유를 실천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비는 무한하다. 힘없는 민초들의 아픔과 슬픔을 위무해 준다. 가난하지만 순수한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마음의 평안을 얻어 좋은 꿈을 꾸며 아름다운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보제루에 앉아 나 자신을 성찰해본다. 복잡한 세상의 생각이 교차하고 미움과 원망 등 번뇌가 가득한 나를 알아갔다. 고요함에 마음을 비우니 배려와 서로 사랑하는 이타심이 일깨워졌다. 맞다. 남을 바꿀 게 아니라 나를 바꾸면 되는 것을. 이리도 번민하고 방황했단 말인가.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음이 가벼우니 몸도 가뿐하다. 별빛을 따라 경내를 배회해본다.
웅장한 각황전(覺皇殿)에 발길이 멈춰진다. 각황(覺皇)은 부처님의 별칭이다. 애틋한 중건 전설이 가슴에 다가온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장육전(丈六殿) 중건을 위해 백일기도를 올렸다.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스님들은 손을 씻은 후 밀가루가 있는 항아리에 손을 넣어 밀가루가 묻지 않는 스님이 화주승의 중책을 맡기로 했다. 계파 스님만 밀가루가 묻지 않았다. 중책을 맡고 떠나는 전날 부처님이 꿈속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 시주를 권하라.”고 했다. 다음 날 새벽에 처음 만난 노인에 시주를 청했다. 시주를 할 수 없는 가난한 노인은 소(沼)에 몸을 던져 왕실의 공주로 환생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왕은 감동하고 깨우쳐 장육전 중건 시주를 했다. 중건 후 각황전으로 부르게 했다. 중건으로 인도하고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주역은 밀가루였다. 왜 밀가루였을까? 덕문 주지 스님에게 물었다. “화주승은 신심과 원력이 동반 돼야 하고 신력(부처님의 가피력)이 있어야 한다. 그 당시 신력을 검증할 때 가장 성행했던 방법이 밀가루나 쌀가루였다”고 했다.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쌀 한 톨과 밀 한 알에도 온 우주가 들어 있다. 우주 기운과 부처님 가피를 받은 스님에게 중건의 책임을 맡게 했다.
사람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인연체다. 우주의 기운과 땅에 자양분을 모은 게 몸이다. 광합성작용으로 만들어진 먹거리로 생명을 영위해간다. 성스러운 기운을 받아 중건하려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
구례군에 우리밀 최대 단지가 조성된 계기는 바로 화엄사 각황전 전설에서 시작됐을 터다. 우리밀을 살리려는 구례 농부들의 열정과 사랑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전년도 도시재생어울림한마당 행사로 구례군 제빵사 12명이 모여 ‘골목길우리밀 빵 축제’를 열었다. 제빵용 금강밀과 신품종 황금알밀로 구운 빵이 호평받고 완판돼 경쟁력을 입증한 바 있다.
햇밀로 만든 수제비를 먹고 싶어 아내에게 부탁했다. 우리밀 통밀가루로 감자와 애호박을 넣은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수제비였다. 따끈따끈한 국물을 한 수저 먹었다. 시원하면서 구수한 맛이 온몸을 파고든다. 수제비 맛을 살려주는 건 멸치와 새우 육수다. 필자는 멸치를 무척 좋아한다. 아침에 누룽지와 멸치볶음을 먹는다. 밥맛 없을 때는 멸치를 살짝 볶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입맛이 돌아온다. 바삭거리며 매콤달콤한 고추장의 조화는 환상적이다. 고로쇠 약수를 마실 때도 황태보다 멸치를 선호한다. 비릿하면서 짭조름한 멸치가 약수를 더욱 마시게 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멸치를 이제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슬프고 안타깝다. 지난 24일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검증되지 않아 찜찜하다. 과학적 검증이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만에 하나 문제가 있으면 어찌할 것인가. 우려와 걱정이 깊어만 간다.
이제 오염수를 방류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일본과 평화롭게 잘살아 가기를 갈구하고 희망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꿈꿔 본다. 해산물과 농산물이 어우러져 먹거리가 풍성해지고 어부와 농부, 국민 모두 잘사는 세상을 기원해 본다. 심신 수양을 위해 화엄사 야간 경내 돌아보기를 권한다. 살기 좋은 세상이 열리기를 기원해 주길 바란다.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모두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처럼 함께 꿈꾸며 현실로 만들어 가보자.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