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 만세!” 고려인마을서 ‘봉오동 전투’ 재현
● 제78주년 광복절 행사 현장
고려인동포·시민 등 300여명 참여
홍범도거리 대규모 전투퍼포먼스
남녀노소 태극기 들고 행사 참여
“봉오동·홍범도 역사 계승 노력”
2023년 08월 15일(화) 17:57
광주 시민과 고려인마을 주민, 호남대 인문도시지원사업단, 학생 등이 15일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를 재해석한 거리 행진을 펼치며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있다. 나건호 기자
“대한독립 만세! корея ура!(코레아 우라!)”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애국정신을 계승하고 순국선열을 기리는 제78주년 광복절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참가자들은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조상들의 정신을 되새겼다.

15일 오전 10시 30분께 찾은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마을 초입에 다다르자 파란색과 빨간색 우의를 입은 시민들이 돋보인다. 이들은 이날 11시에 열릴 ‘봉오동 전투 재현 행사’에 참여하는 독립군들로, 저마다 태극기 우산·물총 등을 들고 거리 곳곳에 숨어있는 일본군들을 찾아냈다.

봉오동 전투는 1919년 3·1운동 이후 이듬해 6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부대 1300명이 중국 지린성 봉오동에서 중무장한 일본군 500여 명과 싸워 대승한 무장항쟁이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전사자 157명과 3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독립군은 4명이 전사하고 2명이 다쳤다.

웅장한 독립군가 음악이 흘러나오는 홍범도거리에서 역사적 무장항쟁을 재현하던 많은 참가자는 33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들은 홍범도 장군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의 “대한독립 만세” 구호에 맞춰 한발 한발 앞으로 행진했다. 검은 우의를 입은 일본군들은 뒷걸음질 치며 독립군들과 물총 전투를 벌였다. 이에 질세라 마을 관계자들도 곳곳에서 고압 분사기 등으로 하늘에 물을 뿌렸다. 빗속 전투를 연상케 하는 모습에 참가자들은 더욱 재현 행사에 몰입했다.

가족과 함께 온 김모(7)군은 “광복절의 의미를 잘 몰랐는데, 행사 시작 전 할머니가 알려줘서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일본에서 나쁜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했다고 그랬다. 오늘 (이들을) 쫓아내는 (재현) 행사를 한다고 해 동생과 같이 왔다. 물총도 쏘고 사람들이 웃기게 연기도 해줘서 너무 재밌었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과 고려인마을 주민, 호남대 인문도시지원사업단, 학생 등이 15일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를 재해석한 행사를 펼친 가운데, 한 어린이가 태극기 우산을 펼치고 있다. 정성현 기자
행진을 이어가던 참가자들은 일본군을 몰아낸 뒤 홍범도공원(다모아어린이공원)에 모여 ‘최후의 저항(박 터트리기)’을 이어갔다. 공원 중앙에 설치된 두 개의 박을 준비된 물풍선으로 터뜨리던 참가자들은 각각의 박에서 ‘대한독립 만세·광복의 완성’이라는 현수막이 펼쳐지자 환호를 내질렀다.

지난 2017년 가족들과 러시아에서 고려인마을로 온 이니키타(18)군은 “광복절 행사를 처음 경험해 본다. 함께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힘들었지만, 막상 (행사가) 시작되니 다 잊혔다. 날이 너무 더웠는데 물놀이처럼 축제 분위기가 조성돼 너무 신났다”며 “이번 기회로 광복절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내년에 열릴 행사에도 꼭 함께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대성여자고등학교 학생 22명이 봉사활동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일본군 역을 맡은 대성여고 1학년 박소이양은 “8·15 광복절을 기념해 고려인마을에서 뜻깊은 행사를 한다고 해 참여했다”며 “평소 광주 사람임에도 고려인마을에 대해서 잘 몰랐다. 이번 기회로 홍범도 장군·고려인 등에 대해 알게 돼 좋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학생들을 인솔한 정지윤 대성여고 사회교사는 “최근 국가·지역적으로 광복절 행사를 다채롭게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려인마을에서 좋은 행사를 기획하게 돼 함께하게 됐다”며 “학생들이 광복절과 고려인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지자체 등의 지원 없이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후원으로 꾸려졌다. 실제 고려인마을은 봉오동 전투 재현 행사를 위해 물총과 우의·고압 분사기 등의 장비들을 한 달 전부터 해외 구매하며 준비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광산구는 내년부터 고려인마을과 홍범도장군·독립 행사 등 각종 사업들을 함께하기로 했다.

재현 행사 내내 함께했던 김양숙 광산구 외국인주민과장은 “지난 삼일절 행사를 비롯해 오늘 광복절 기념행사까지 고려인마을에서 좋은 의미의 행사들이 개최돼 정말 뿌듯하다”며 “광산구에서 내년 ‘중앙아시아 역사테마관광지구 조성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오늘의 봉오동 전투 재현 행사가 역사마을 1번지 조성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구에서도 역사 보존·계승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무더운 날 모두가 즐겁게 참여해 줘 감사하다. 앞으로도 고려인 독립투사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한민족으로서 더욱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최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한편, 시민 300여 명이 참여한 봉오동 전투 재현 행사는 고려인마을·호남대학교 인문도시사업단이 주최·주관하고 광주시교육청·한국연구재단 등이 후원했다.
광주 시민과 고려인마을 주민, 호남대 인문도시지원사업단, 학생 등이 15일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를 재해석한 거리 행진을 펼치며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있다. 나건호 기자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