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려인>“카호우카 수력발전소 댐 파괴는 끔찍한 인권유린”
(16)우크라이나 카호우카 댐 붕괴와 라쇼몽 효과
심각한 테러 행위이자 생태학살극
러·우크라 서로 상대방이 폭발 주장
어느 당사자도 책임 배제할 수 없어
인권 환경 국제거버넌스 구축 절실
2023년 07월 20일(목) 14:04
헤르손 주민들이 홍수를 피해 대피하고 있다. 알렉스 바벤코 작가 제공
지난 6월 10일(현지시간) 카호우카 댐 폭파 여파로 우크라이나 헤르손주에 위치한 주택이 물에 잠긴 가운데 기름이 떠다니고 있다. 헤르손=AP/뉴시스






우크라이나 드네프르 강이 흐르는 헤르손 지역의 카호우카 수력발전소 댐이 붕괴되었다. 드네프르 강은 러시아 서부의 발다이 구릉 남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벨라루스를 거쳐 우크라이나에서는 남북으로 가로질러 흑해로 흘러들어 가는 길이 2,290km의 강이다. 발다이 언덕의 늪지대 남쪽 끝 강물이 흘러나오는 곳에는 푸틴 대통령의 관저 중 하나가 있다.

카호우카 저수지는 식수와 관개, 산업용으로 중요하게 사용되어 왔다. 댐에서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운하가 건설되어 산업용수 및 식수를 공급했다. 특히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의 물 공급에도 사용되었다. 이 수력발전소와 댐은 1956년에 건설되었다. 이는 우크라이나 최대 규모의 에너지 시설 중 하나였다.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전기를 공급해 왔다.

이 댐은 2023년 6월 6일 새벽 2시경에 무너졌다. 수력발전소 댐이 붕괴되고 홍수가 시작되어 막대한 경제적 피해, 심각한 사상자 및 주민들의 대량 대피로 이어졌다.

러시아가 통제하는 헤르손 지역은 홍수 지역에 22,000명이 살고 있는 14개의 정착지가 있었고 주변의 총 80개 정도도 위험에 처했다. 주민들은 드네프르 강 주변을 떠나 대피했다. 헤르손 지역에는 최대 40,000명이 재난 지역에 도착했다. 노바 카호우카(Нова Каховка)가 침수되었고 물은 6월 11일 저녁까지 도시를 완전히 지나갔다. 헤르손 지역에서는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홍수로 18명이 사망했다. 노바 카호우카 당국은 일주일 이내에 도시를 정상 생활로 되돌릴 것으로 예상하였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도시의 물은 식수에 적합하다고 하였다. 비상 상황부는 약 75톤의 식량을 홍수 지역에 전달했다. 헤르손 지역에서는 구조 작업이 인도주의적 작업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비상사태 이후 해당 지역의 학교, 유치원 및 의료 시설에 대한 예비 피해는 100억 루블(1,5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되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가 통제하는 헤르손 지역의 지역에서 32개의 정착지가 침수되었다. 헤르 손 지역에는 약 15,000채의 집이 침수되었다. 헤르손 지역의 침수된 정착지에서 7,200명이 대피했다. 붕괴의 결과로 5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되었다.

또한 댐 붕괴는 동물의 대량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태학적 재앙을 일으켰다. 특히 국립공원에서 수천 마리의 동물이 죽었다. 동시에 동물들은 2022년에 도시 동물원에서 크림반도로 옮겨졌다. 드니프로페트로프스카 지역에서는 물고기 떼죽음이 보고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철갑상어 공장에 범람이 있었다.

카호우카 수력발전소의 파괴는 전략적인 영향에 앞서 경제적으로 피해가 많았다. 우크라이나 농업 정책부에 따르면 관개 네트워크의 손실만으로도 2021년 기준 15억 달러(약 1,935억 원) 상당의 400만 톤의 곡물과 유지 종자를 생산한 584,000헥타르의 관개 경작지가 박탈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가을에 전 세계에서 빵, 해바라기 기름, 설탕, 양파 등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렉시 마케예프 독일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수력발전소 파괴로 인한 피해액을 140억 달러(약 18조 원)로 추산했다.

그러나 카호우카 수력발전소는 드네프르 강에서 전쟁의 희생이 된 것이 첫 번째가 아니었다. 1941년 8월 소련군 사령부는 독일 국방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댐을 폭파하였다. 홍수로 20,000명에서 100,000명이 사망했다. 동시에 경고를 받지 못한 소련군도 익사했다. 독일군은 점령 기간 동안 댐을 복원했지만 1943년에 다시 폭파하여 드네프르 강을 소련의 대규모 반격에 맞서는 방어선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방어 작전의 일환으로 강의 댐이 두 번 폭파되었고 두 번 모두 방어하는 측이 실패했다.

이 당시 드네프르 강에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은 소련 전체 계획의 우선순위 프로젝트였으며 이는 전국의 전력화를 가속화했다. 1920년대 초에 건설 승인이 되었고, 포로를 포함한 거대한 인원이 실행에 투입되었다. 소비에트 당국은 자문을 받기 위해 미국의 수력 건축업자를 초청했다. 수력발전소용 발전기와 터빈도 미국 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GE)과 뉴포트 뉴스 조선소(Newport News Shipbuilding)에서 공급받았다.

사실 대다수의 우크라이나 농민들에게 수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하는 것이 기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932년 드네프르 수력발전소에서 90,000명의 근로자가 고용되었다. 이는 1939년에는 이미 유럽에서 가장 큰 것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것으로 간주되었다. 건설의 승리는 대규모 공업화의 시발점이자 계획경제 도입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소련이 이 댐을 건설하는 동안 수십 개의 정착지가 물에 잠겼다. 14개 마을이 완전히 침수되었고, 또 다른 42개 마을은 부분적으로 침수되었다. 그러나 불과 2년 후 소련 당국은 그러한 희생이 있었던 수력발전소를 폭파하기로 결정했다. 드네프르 강을 건너는 독일군의 위협에 소련군은 수력발전소를 무력화시키고 지뢰를 매설했다. 오랜 시간 건설된 댐이 폭발되었다.

한편, 문제는 2023년 6월 6일 카호우카 수력발전소 댐 붕괴를 두고 서방 언론에서는 누가 파괴를 한 것인지, 누구에게 더 유리한 것인지 수많은 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댐 폭발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일어난 일에 대해 서로를 비난했다. 마치 라쇼몽(Rashomon) 효과가 다시 나타난 방식으로였다. 이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해석해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이다. 양측은 정보, 선전, 심리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의 관점을 주장하고 포기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사건을 서로 ‘심각한 테러 행위이자 재앙’, ‘생태학살’, ‘전쟁 범죄’라고 불렀다. 하지만 고의로 댐을 파괴했다는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난의 원인에 대한 세 가지 버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것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우크라이나의 버전, 러시아의 버전, 나머지는 댐이 자체적으로 붕괴되었다는 버전이다. 카호우카 수력발전소 댐이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폭파했을까? 아니면 댐이 저절로 무너진 것일까?

첫째는 우크라이나의 버전이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공세를 방해하기 위해 댐을 폭파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보트로 상륙 작전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전에 러시아군이 통제했던 강변은 강력한 요새 지역으로 덮여 있었지만, 실제로 이제는 물로만 덮여 있다. 폭파 전까지는 상륙정이 그곳들을 지나갈 수 있었다. 보트도 최근 미국에서 우크라이나로 인도되었다고 알려졌다.

또한 홍수 후에 상륙군은 숨을 곳이 없을 것이며 흙 요새 건설이 어려울 것이다. 또한 얕은 저수지 바닥을 따라 좌안에 있는 부대에 보급을 공급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대부분의 장비는 이동 통과할 수 없다.

둘째는 러시아 버전이다. 이는 드네프르 강에서 러시아군을 해방하거나 왼쪽 강변에서 더 쉽게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 군대에 의해 댐이 폭파되었다는 것이다. 댐 폭파가 되면 대규모 우크라이나군이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던 카호우카 저수지의 폭은 필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댐 아래뿐만 아니라 강 위의 위협을 고려해야 했었다. 이 위협을 막으려면 대규모로 무기를 새로운 강둑으로 이전해야 했었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이 통제하는 드네프르 강의 우안은 러시아군이 통제하는 좌안보다 높다. 사실 가장 큰 고통을 겪은 것은 러시아군이었다. 우크라이나 군대의 상륙 가능 지역에서 강력한 지뢰밭이 파괴되었다.

드네프르 우안에서는 헤르손의 강변 지역과 다른 여러 정착지가 부분적으로 침수되었다. 우안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군사 인프라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댐 붕괴의 결과는 미리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구축해온 좌안 러시아군의 전체 방어 시스템이 파괴되었다. 홍수는 주로 러시아 통제 하에 있는 마을을 위협했다. 드네프르 강의 우안에서 철수한 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반격 가능성을 예상하여 좌안의 지뢰밭과 기타 요새를 세웠다. 그리고 홍수 후 드네프르 좌안에는 피난처가 부족하게 되었다. 이제 러시아는 헤르손을 점령하고 드네프르의 다른 강변에 교두보를 만들고 물자를 공급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오데사를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이 사고의 책임이 없다면 왜 드네프르 수력발전소의 방류를 하지 않았을까 의심한다. 사고 전에 카호우카 저수지의 수위는 이미 최대였다. 그것이 이번 재앙의 원인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셋째는 중립적인 버전이다. 이는 댐이 저절로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2022년 11월 11일 러시아군이 드네프르 강 우안을 떠났다. 그 이유는 강을 건너 대규모 보급품을 공급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때 러시아군이 철수하면서 댐의 육교를 폭파했고, 동시에 수력발전소 댐 자체가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어 수력발전소 지역에서 심한 전투가 벌어졌다. 댐에서 드론과 대전차 미사일이 사용되었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 근처 드네프르 섬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여러 지역 작전을 수행했다. 이때 댐은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봄 내내 카호우카 저수지의 수위가 상승하여 댐 파괴의 위협이 생겼다. 댐 폭발을 보여주는 동영상은 없다. 두 상대방이 열화상 카메라를 포함하여 수력발전소 지역에 감시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1단계가 시작된 같은 날에 댐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너무 이상하게도 우연의 일치로 보인다. 이때 하이마스(HIMARS·고속기동포병다연장로켓시스템)가 거기에 맞았다고 보고 있기도 한다. 먼저 러시아 측의 교량 파괴로 인해 손상된 틀이 부러진 다음 우크라이나 측의 공격으로 발전소 건물에 인접한 남쪽 부분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카호우카 수력발전소의 댐 파괴는 끔찍한 인간의 비극이다. 생태파괴 문제가 건강권, 생명권, 식량 및 물에 대한 권리, 주거권 등과 같은 인권의 향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이를 침해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인권법상의 의무 이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화와 국제협력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 결국 카호우카 인권 환경 국제거버넌스의 구축이 절실히 요구된다.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