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교육의 창·조재호>티볼구단주가 될 초등학생 KJ
조재호 초등학교 교사
2023년 07월 02일(일) 14:14 |
![]() 조재호 교사 |
티볼이란 야구 변형 운동을 10년 이상 지도하면서 많은 어린이들을 만났다. 대체적으로 티볼팀을 지도하면서 보는 어린이들은 처음에는 ‘공’이 좋아서 시작하고, ‘친구’가 하니까 연습을 하며 교육감배 대회와 같은 시합을 통해 ‘팀’을 체험하며 성장한다. 팀이란 공동체 속에서, 자기 역할과 기능을 익힌다. 야구형 종목은 ‘희생’개념을 몸으로 체화하는데, 주자 1루와 2루 상황이면 공을 1루 쪽으로 타구를 보내 점수를 낼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을 익힌다. 교사인 나는 티볼이란 공놀이에 이렇게 심오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어린이들이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성을 익혀 나의 개성과 공동체가 함께 성장할수 있다 확신했다. 그런데, KJ에게는 안통한다.
KJ에게 ‘팀’이란 개념은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아 보였다. 그는 오로지 자기의 타격만 관심을 갖는다. 아이들이 경기를 하고 패배를 하면 눈물을 보이며 분해하기도 하는데, KJ는 아주 해맑다. 지난 6월 초 티볼협회장배 대회를 나갔을 때 일이다. 티볼만의 독특한 룰에 의해 ‘잔루’에 의해 너무 아깝게 패배했다. 예전에 지도 했던 아이들 같으면 눈물을 흘리고, 코치인 나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같이 성장하자’고 같이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KJ는 패배 후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해맑았다. 나는 이런 ‘해맑은 장난꾸러기’가 당황스러웠다. 그가 계속 쫑알대는 이야기는 자기의 ‘타격’이었다. “선생님, 나 오늘 잘 쳤지요? 아. 조금만 더 멀리 갔으면 홈런이었을건데요, 말이죠”… 패배로 진짜 쓰라린 사람은 어른인 나 뿐이었다. 그래서 KJ가 얄미웠다. “너가 실수해서 점수 준 것은 생각 안나니?”라고 면박을 줘도 “글러브가 안좋았어요. 손에 잘 안들어간다 말이에요”(글러브는 학교에서 제공한 것임)라면서 아주 해맑게 웃는다.
이런 장면은 내가 예상한 ‘교육계획각본’과 전혀 다르다. 지금까지 나는 패배를 한 아이들을 토닥이며, 함께 짜장면을 먹으며, 우리가 몸으로 체화한 ‘어떤 것’을 나누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KJ라는 “개인”은 이런 ‘각본’을 시대에 뒤쳐진 꼰대의 낭만으로 바로 만들어 버렸다.
KJ와 관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KJ는 급식실에서 나를 볼 때 크게 “조샘. 안녕하세요?”라고 쩌렁쩌렁 인사를 하여 동료교사들이 “인기가 아주 좋으시군요”라는 말을 듣게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가 10명이 뛰는 티볼 경기에서 주전자리를 보장 받기 위해 아부하는 것이라는 걸. 그는 공을 글러브에 넣는 케치볼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우리 팀은 남녀학년 불문 36명이 경쟁체제로 주전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기아타이거즈보다 더 치열하다고 생각함) KJ는 내가 가르쳐준 대로 벽에 공을 던지고 글러브에 넣는 지루한 연습보다 차라리 ‘아부’하는 쪽으로 노력하는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KJ에게 이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했더니 ‘헤헤헤, 아니에요. 그럴리가요?’라고 하지만, 난 아이의 그 맑은 눈매와 표정과 느낌으로 내 직관이 옳다는 확신을 했다. 수비는 재미도 없고,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 노력보다는 차라리 감독인 내게 ‘잘보이기’ 전략을 택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의 개인이 과거의 모든 관계, 정서를 “대기속으로 사라지게”만들고 오로지 이익을 위해 그 투자과 수익을 계산하듯.
지난 주, 연습게임을 위해 다른 학교로 이동하는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KJ가 제안했다. 초중고 스포츠클럽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1년에 하루만 하는 ‘대회’가 아닌 매주말 가까운 학교끼리 게임을 하고 싶은게 내 바램이다. 그럴려면 “승합차 스타**가 필요한데 돈이 없다”고 했더니, KJ가 진지하게 고민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사드릴께요. 선생님. 내가 크면 부자가 될건데요. 아마 천억정도는 벌거에요. 그럼, 그때 선생님이 티볼감독님을 지금처럼 하고 있으면 스타** 한대 사드리죠”
나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환하게 웃으며 게오르규 짐멜의 ‘돈이란 무엇인가’가 떠올린다. 돈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 나는 KJ란 개인을 움직이게 하는 힘에 대해 생각했다. “돈”이 아닌 “재미”가 그를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돈”도 훌륭한 것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전문 스포츠와는 달리 돈안되는 이 공놀이를 위해 ‘투자’해주겠다는 미래 구단주 KJ와 난 정식으로 내용증명서를 함께 작성했다. 팀 동료인 두명의 증인과 함께. 이 맛에 교사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