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향한 온갖 훼방과 왜곡, 폄훼 볼 수 없었죠”
●주소연 서울광진교육지원청 교육장 강연
광주여고 3학년 취사반 활동
항쟁 현장 기록한 일기 기증
광주여고 3학년 취사반 활동
항쟁 현장 기록한 일기 기증
2023년 05월 29일(월) 18:18 |
5·18민주화운동의 생생한 모습이 담긴 ‘주소연 일기’의 주인공인 주소연 서울광진교육지원청 교육장이 29일 광주 서구의 한 카페에서 ‘동국대 오빠 <계엄군 진입 전날밤 도청>’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김혜인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여고 3학년으로 전남도청 취사반에서 활동하며 항쟁의 현장을 낱낱이 기록했던 주소연씨가 광주를 방문해 시민들에게 그날의 참상을 알렸다. 주씨는 현재 서울광진교육지원청 교육장으로 일하고 있다.
광주시가 주관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운영하는 ‘국가폭력과 민주인권 제2강 동국대 오빠 <계엄군 진입 전날밤 도청>’을 주제로 한 이 교육장의 강연이 29일 광주 서구 풍암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주씨는 “1980년 5월 22일 도청 집회에서 취사반 모집 안내방송을 듣고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동국대를 다닌다던 대학생 오빠의 인솔 하에 밤에는 주먹밥을 만들거나 식판을 설거지하고, 낮에는 도청 밖으로 나가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배달했다”고 설명했다.
주씨는 “최후 항전이 일어난 27일 새벽에 동국대 오빠가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며 동명교회를 나와 몇몇 사람들을 대피시켜줬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주씨가 만난 동국대 오빠는 현재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박병규 열사로, 위험하니 돌아가지 말라는 주씨의 부탁에도 “끝까지 싸우겠다”며 도청으로 돌아간 모습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박 열사는 27일 아침 도청 근처 화단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계엄군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겨우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신만 살아나왔다는 미안함이 그를 짓눌렀다. 주씨는 “북한군도, 괴뢰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계엄군에게 곤봉으로 두들겨맞고 있는데 무엇 하나 진실되게 보도한 뉴스가 없었다”며 “이틀 내내 항쟁 기간에 보도된 모든 신문을 스크랩하고 잘못 보도된 기사에 ×를 쳐가며 모두 거짓이라고 기록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주씨는 두려움과 상처로 일기를 꽁꽁 묻어둔 채 교직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그토록 궁금했던 동국대 오빠의 이름을 알게되면서 일기를 세상에 내놓게 됐다.
주씨는 “5·18을 향한 온갖 훼방과 왜곡, 폄훼를 두고볼 수 없었던 찰나에 ‘오월愛’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처음으로 동국대 오빠의 이름이 ‘박병규’라는 것을 알게됐다”며 “꺼낼수록 아픈 마음을 뒤로하고 지난 2011년 5·18유네스코 등재 위원회에 일기를 기증했다”고 말했다.
한편 주씨가 기증한 일기는 여고생의 시각으로 참담했던 항쟁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해 ‘한국판 안네의 일기’라 평가받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