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돈삼의 마을이야기>탁 트인 다도해 풍광… 꼭 다시 찾고싶은 섬
고흥 쑥섬
쑥이 지천, 쑥애 써서 艾島
외나로도에 딸린 ‘예쁜 섬’
300여종 꽃 계절마다 개화
개와 닭 없고 고양이 천국
섬 자체가 꽃밭이자 정원
갯바위·등대…신선대 압권
2023년 05월 25일(목) 13:57
고양이 조형물. 산정의 꽃밭에 설치돼 있다
바닷가에 널린 미역. 섬사람들이 직접 뜯어 말렸다.
쑥섬 풍경. 외나로도에서 본 모습이다.
찔레꽃. 쑥섬의 해안길 풍경이다.
별난 섬이다. 섬을 몇 바퀴 돌아도 강아지 한 마리 만날 수 없다. 닭이나 병아리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나 지천인 무덤도 전혀 없다.

“예부터 내려오는 당제와 연관됩니다. 섬이 다 그렇지만, 쑥섬사람들은 전통에 대한 믿음이 강했어요. 당제를 지내러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되돌아와서 목욕재계를 했어요. 개와 닭의 울음소리도 신성한 제사에 방해가 된다고 기르지 않은 겁니다.”

‘쑥섬지기’ 김상현 씨의 말이다. 마을 뒤편 당산에도 아무 때나,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섬에 무덤이 없는 것도 매한가지다.

쑥섬은 본디 ‘부자섬’이었다. 섬사람들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으며 돈을 많이 벌었다. 섬 밖의 큰 섬이나 도회지에 땅을 샀다. 무덤도 거기에다 썼다. 섬에 초분(임시무덤)을 만들고, 탈골을 거쳐 섬밖에 본장을 하기도 했다. 큰섬이나 뭍을 지향하는 작은 섬 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작은 섬에 살거나, 살았던 사람이라면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개와 닭이 없는 섬을 주름잡는 건 고양이다. 쑥섬은 고양이들의 천국이다. 섬사람은 물론 동물보호단체인 ‘동물구조119’도 고양이 보호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안 쓰는 기자재를 활용해 고양이 집과 놀이터를 만들었다.

주민들은 먹을거리를 주며 고양이를 챙긴다. 방문객들도 사료를 주며 고양이와 어울릴 수 있다. 도시의 수의사들도 참여해 고양이의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다. 바닷가를 어슬렁거리거나 담장 위에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이유다. 길손과 마주친 고양이도 경계의 눈빛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사는 섬이다.

‘고양이섬’ 쑥섬은 나로우주센터가 자리하고 있는 외나로도에 딸려 있다.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사양리에 속한다. 면적은 32만6000㎡, 해안선 길이 3㎞ 남짓의 작은 섬이다. 인구는 주민등록상 30∼40명이 산다.

오래 전, 섬에 쑥이 지천이었다. 쑥애(艾) 자를 써서 애도(艾島)다. 외나로도 축정항에서 배를 타면 5분도 안 돼서 데려다준다. 섬 속의 섬이다.

쑥섬의 산정에서 만나는 정원도 별나다. ‘별정원’ ‘달정원’ ‘태양정원’ ‘환희의언덕’ 등 이름도 이쁘다. 풍경도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다.

정원에서는 300여 종의 꽃이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다. 지금은 기생초, 인동초, 패랭이, 찔레, 마삭줄, 샤스타데이지, 페튜니아, 알리움, 우단동자, 노란괴불주머니가 피었다. 선홍빛의 꽃양귀비와 핫립세이지도 많이 보인다. 백합, 수국도 피기 시작했다.

꽃이 드넓은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피어 더 아름답다. 고흥 발포와 거금도, 소록도가 보인다. 여수 거문도와 백도, 손죽도, 초도가 보이고 완도 평일도와 생일도, 청산도, 소안도, 보길도도 아른거린다. 탁 트인 다도해 풍광이 가슴속까지 후련하게 해준다.

뒤편에는 크고작은 배가 드나드는 외나로도항이 자리하고 있다. 외나로도항은 쑥섬으로 들어오는 배를 타는 곳이다.

꽃을 보면서 쉴만한 나무의자와 평상도 군데군데 놓여 있다. 꽃과 나무는 물론 풍경까지도 다도해와 잘 어우러진다. 섬의 산정에서 만나는 별천지다. 섬 밖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비밀의 정원이다. 섬 자체가 꽃밭이고 정원인 쑥섬이다.

정원은 김상현?고채훈 씨 부부가 20년 넘게 가꿔왔다. 김 씨는 교사, 고 씨는 외나로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이다. 부부는 틈나는 대로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꿨다. 가뭄이 들 때도, 장맛비가 내려도 계속했다. 쑥섬은 전라남도 제1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돼 있다.

산정으로 가는 길도 다소곳하다. 해발 80m의 산정으로 가는 숲길이 이쁘다. 껍질이 얼룩무늬처럼 생긴 육박나무가 보인다. 해병대의 옷과 닮아 ‘해병대나무’로 불린다. 태풍 ‘매미’한테 할퀴고도 의연하게 살아있는 후박나무는 ‘당할머니나무’로 통한다.

남부지방에만 자생하는 구실잣밤나무, 푸조나무, 돈나무, 다정큼나무, 동백나무도 많다. 신선이 먹는다는 ‘천선과’도 신비롭다. 생김새가 무화과를 쏙 빼닮았다. 산딸기는 주전부리의 추억을 떠올려준다. 귀한 숲이다.

섬의 풍광도 멋스럽다. 능선에서 만나는 남자산포바위와 여자산포바위의 전망이 좋다. 산포바위는 옛사람들이 놀던 곳을 가리킨다. 동네 처녀와 총각이 몰래 만나 애틋한 마음을 전한 곳이기도 하다.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신선대의 풍광도 압권이다.

갯바위와 등대도 정겹다. 갯바위에선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감성돔을 기다리고 있다. 갯바위에 핀 강꽃도 어여쁘다. 강꽃은 바닷물이 말라서 생긴 하얀 소금기를 가리킨다.

‘몬당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이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몬당은 ‘언덕’의 지역말이다. 길이 섬의 해안과 언덕을 따라 이어진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마을의 돌담길도 정겹다. 돌담에 붙어살며 꽃을 피운 다육이도 눈길을 끈다.

찾을 때마다 눈과 귀를 흡족하게 해주는 쑥섬이다. ‘쑥섬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찾는다. 방문객들은 풍광에 취하고, 꽃과 나무에 반하고, 섬사람과 고양이와 함께 하늘거린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 / 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