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획시리즈>"박현숙 선배의 '오월정신' 우리가 이어갈게요"
●5·18 43주년 캠페인 - 학교내 기념공간 조성하자 (5)송원여상
계엄군 총에 희생된 박 열사 모교
후배들 추모비서 묵념 "정신 계승"
박 열사 언니 "희생 헛되지 않았다"
송원고 김기운 열사 추모공간 전무
계엄군 총에 희생된 박 열사 모교
후배들 추모비서 묵념 "정신 계승"
박 열사 언니 "희생 헛되지 않았다"
송원고 김기운 열사 추모공간 전무
2023년 05월 14일(일) 18:33 |
박현숙 열사의 후배 송원여상(당시 신의여고) 2학년 학생 7명이 빈 교실에 모여 박 열사의 언니 박현옥씨에게 박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강주비 기자 |
5·18민주화운동 제43주년을 맞아 박현숙 열사의 언니 박현옥씨와 박 열사의 후배 송원여상 2학년 학생 7명이 교내 추모비에 묵념을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
지난 10일 송원여상에 박 열사의 언니인 박현옥씨가 방문했다. 7명의 2학년 학생회 위원들이 현옥씨를 맞았고 이들은 함께 ‘故 박현숙 추모비’ 일곱 글자가 박힌 검은 비석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묵념이 끝난 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현옥씨는 ‘정말 고맙다’며 학생들의 손을 꼭 잡았다. 이들은 추모를 마친 뒤 빈 교실에 둘러앉았다. 현옥씨가 박 열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기 위해서다.
이날 처음 만난 사이지만, 학생들을 보는 현옥씨의 눈빛은 꼭 동생을 보듯 애틋했다. 현옥씨는 “19살이었던 당시 동생의 모습과 똑 닮았다. 우리 현숙이도 ‘단발머리’였다. 교복 입은 학생들만 보면 현숙이가 생각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학생들 또한 감정이 북받치는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분의 침묵 끝에 입을 연 현옥씨는 43년 전 민주화를 위해 몸 바친 박 열사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늘어놓았다.
현옥씨에 따르면, 박 열사는 도청서 시신 닦는 일을 하다 시신 담을 관이 부족해지자 관을 구하러 화순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고 지원동 주암마을서 매복하던 계엄군에 의해 총상을 입고 숨졌다.
현옥씨는 “이후 동생과 관련해 ‘전남대 뒷산에 묻혔다’, ‘교도소 뒤에 시신이 있다’ 등의 소문만 무성했다. 가족들은 상무관에 가 시신을 하나하나 다 열어봤지만, 시신들의 상태가 모두 너무 처참해 알아볼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3개월 뒤인 그해 8월이 돼서야 현옥씨는 무명열사 묘 96번에 동생이 묻혀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옥씨는 “동생이 맞는지 직접 시신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경찰의 압박으로 보지 못했다”며 “동생의 묘를 신묘역으로 이장한 1997년에 처음으로 유골을 봤다. 동생은 비닐에 싸인 채로 묻혀있었는데, 좋은 옷 하나 입혀주지 못하고 보낸 것이 너무나 한이 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현옥씨의 이야기를 전해 듣던 학생들의 두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주선영(18)양은 “박 열사에 대해 기사로 접하던 것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며 “선배(박 열사)에게 직접 전할 수는 없지만, 선배의 언니분께라도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울먹였다.
현옥씨는 “추모비를 통해 학생들이 선배가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앞장섰다는 사실을 알고, 기억해 준다면 동생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고 답했다.
박현옥 열사의 송원여상(당시 신의여고) 재학 당시 사진(위)과 생활기록부. 박현옥씨 제공 |
김 열사는 당시 송원고 2학년 재학 중 임시휴교령이 내려지자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옛 전남도청으로 향했다가 행방불명됐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인 2001년 유전자 감식을 통해 김 열사가 무명열사 묘에 묻혀있던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김 열사는 국립5·18민주묘지 4묘역에 안장돼 있다.
송원고는 과거 학생들과 5·18민주화운동 주간에 김 열사의 묘를 찾아 참배하는 등의 행사를 진행한 바 있지만 이마저도 꾸준히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5·18민주화운동으로 김 열사를 포함한 11명의 학생이 부상·구속당한 송원고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편,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재단 소속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5·18관련자(사망·부상·구속)는 △송원중학교 2명 △송원고등학교 11명 △송원여자고등학교 1명 △송원여자상업고등학교 1명 등이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