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한국은 ‘졸’이 아니다
박성원 편집국장
2023년 04월 12일(수) 12:48 |
박성원 국장 |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른 건 미국이 우리 대통령실을 도·감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 등 동맹국의 내부 논의사항을 국방부에 보고한 기밀문건 100여 건이 SNS에 대량 유출됐고, 뉴욕타임스가 그 내용을 검증해 보도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문건에는 지난달 사임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나눈 대화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 비서관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훼손 가능성을 지적하자, 김 실장이 155㎜ 포탄 33만개를 폴란드에 우회 판매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고위직 인사들의 민감한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대통령실이 도·감청의 타깃이 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정보기관의 불법 정보수집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3년 국가안보국(NSA)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이 주미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동맹국을 감시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미국에 의한 도·감청 의혹에 국민은 분노하고 있지만 대통령실의 반응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미국이 악의를 가지고 도·감청을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도·감청 자체가 불법인데 선의인지, 악의인지 그 의도를 따지는 모습이 우습다.
미국이 우리 대통령실을 도·감청한 게 사실이라면 명백한 주권 침해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얼마나 한국을 ‘졸’로 봤으면 이런 짓을 벌였을까 하는 분노가 인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미국에 엄중하게 항의하고 해명을 요구해야 한다. 강력한 대응이야말로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