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후 9년, 연극을 만난 엄마들
광주독립영화관 ‘장기자랑’ 시사회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일상 담아
김소현 감독 "인간적 모습 그려내"
수인·동수·순범 엄마…관객과 대화
4월5일 전국 개봉…광주극장 상영
2023년 03월 29일(수) 15:33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를 자녀로 둔 일곱 엄마들의 좌충우돌 일상을 담은 다큐 영화 ‘장기자랑’ 시사회가 지난 28일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진행됐다. 도선인 기자
세월호 엄마들은 그날 이후 9년동안 상흔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나날은 지독했고 진실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 웃으면서 대화도 하고 케이크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때론 사소한 일에 세상을 다 건듯 갈등을 빚기도 하는 남들의 보통날처럼.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를 자녀로 둔 일곱 엄마들의 좌충우돌 일상을 담은 다큐 영화 ‘장기자랑’ 시사회가 지난 28일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진행됐다. 영화 상영 이후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의 활동가 추말숙(문화예술교육공동체 연나무 대표) 배우의 사회로 ‘관객과의 대화’도 이어졌다. 영화 ‘장기자랑’의 이소현 감독, 영화에 출연한 순범 엄마 최지영 씨, 수인 엄마 김명임씨, 동수 엄마 김도현씨가 참석했다.

영화는 단원고 희생자 및 생존자 학생들의 엄마들이 극단을 구성, 연극 무대에 서는 일상을 담았다. 엄마들은 2015년 심리 치유을 위한 바리스타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또다시 집에만 있을 엄마들이 걱정돼 고민하다 나온 것이 바로 ‘연극’이었다. 엄마들은 지나가듯 말한 ‘재밌겠다’ 한 마디였지만, 안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단 ‘걸판’ 출신의 전문 연극인 김태현 감독이 한달음에 달려왔고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무대 위에 서있는 순간을 맞이한다. ‘자식 잃고 뭐가 좋다고 연극을 해? 사람만 모이면 도망가자’라는 생각도 잠시. 그런데 웬걸, 엄마들은 ‘연기’라는 뒤늦은 재능을 발견하고 열정을 불태운다. 급기야 세번째 작품 ‘장기자랑’의 배역 캐스팅을 두고 엄마들 사이의 질투와 갈등은 깊어지고 극단은 해체 위기를 겪는다.

실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세월호 희생자 및 생존자 학생들의 엄마들로 구성된 극단이다. 현재 수인 엄마 김명임씨, 동수 엄마 김도현씨, 애진 엄마 김순덕씨, 예진 엄마 박유신씨, 영만 엄마 이미경씨, 순범 엄마 최지영씨, 윤민 엄마 박혜영씨가 소속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첫번째 작품 서민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그와 그녀의 옷장’을 시작으로 두 번째 작품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한 여정을 담은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세번째 작품 수학여행을 앞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기자랑’, 네번째 작품 의인화된 ‘노란리본’이 바라본 세월호 유가족들의 삶을 다룬 ‘기억여행’까지 마무리하며 전국 200회 이상의 공연을 올린 베테랑 극단이다.

영화 ‘장기자랑’은 사회적 참사와 그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전형성을 비껴간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들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그들을 진상규명이나 피해자로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는다. 단지 우연히 연극을 시작하며 세상 밖으로 다시 발을 내민 엄마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게 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극단을 묵묵히 이끌어가는 엄마가 있는 반면, 어떤 엄마들은 주인공 자리를 두고 서로 질투하며 극단을 나가버리곤 한다. 정신적 지주 리더 수인 엄마, 극단의 막내 동수 엄마, 외유내강 애진 엄마, 주인공 전문 에이스 예진 엄마, 재능 폭발 영만 엄마, 노란색 머리로 살기로 결심한 순범 엄마, 다른 엄마들과 달리 주인공이 아니어서 좋은 윤민 엄마까지.

이소현 감독은 “유독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피해자다움이 요구됐다. 유가족들의 고통을 소모만 한 것 아닐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이웃이다”며 “슬픔을 가진 사람의 욕망을 보여주는 건 불경스러운 일인가? 고민도 많았지만, 이런 것들이 감춰질수록 ‘유가족은 이래야 해’ 하는 편견이 공고해질 뿐이다. 이번에 그 편견을 넘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세월호를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무릎도 아프고 공연 후 진이 빠진다. 그럼에도 이 원동력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아이들 이름 석자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나온다.

순범 엄마 최지영씨는 “진상규명을 생각하면, 굉장히 답답할 때가 많다. 앞이 캄캄하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왜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았는지, 처벌받은 책임자는 왜 없는지를 알아야 한다. 연극을 통해 맘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수인 엄마 김명임씨는 “연극과 영화를 통해 유가족다움에 대한 기대치를 벗어날 수 있었다. 또 공연을 위해 전국을 돌면서 지지해주는 시민들이 더 있구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영화 ‘장기자랑은’ 오는 4월5일 전국 개봉울 앞두고 있으며 광주극장에서도 관람 가능하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아 오는 4월1일과 2일 안산 보노마루에서 엄마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다룬 다섯번째 작품 ‘연속극’ 무대에 선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