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된 임대차… 집값 하락에 시행사 “퇴거 불가”
서구 민간임대아파트 계약 분쟁
시세 1억 하락… 계약해지 봇물
“임차기간인 10년간 퇴거 불가”
법조계 “집값 하락 관련법 미비”
2023년 03월 23일(목) 17:47
지난 20일 서울시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대단지 모습. 뉴시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에 계약을 맺은 민간임대아파트 사업자가 시세가 떨어지자 계약해지를 거부해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역전세난(전세 시세가 계약 당시보다 내려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 때, 혹은 전세 수요의 감소로 임차인이 구해지지 않는 상황)에 임대사업자가 꼼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민간임대주택법이 악용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23일 광주 서구의 한 A아파트 민간임대차 계약자들에 따르면, 최근 시행사가 ‘임대사업기간인 10년 동안 계약해지를 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혀 계약자들이 소송을 준비 중이다.

계약자 B씨는 지난 2020년 12월 A아파트 시행사와 임대차계약을 4억3700만원(84㎡)에 체결했다. 임대사업기간은 10년이며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최근 집값이 대폭 하락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0년 12월 당시 A아파트 인근의 동일한 평수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3억7000만원~4억원 수준이었으나 현재 시세가 3억2000~2억7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적게는 5000만원에서 최대 1억3000만원까지 하락했다.

그러자 시행사는 말을 바꿔 임대사업기간 동안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B씨는 “계약 당시에는 10년 동안 무조건 거주해야 한다는 내용의 안내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임대 기간 도중에 퇴거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집값이 이렇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누가 4억을 주고 입주하겠나. 게다가 이 가격대에 계약해지를 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꿔 아예 족쇄계약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호소했다.

A아파트 시행사는 임대차계약이 이미 체결됐으며 계약자들이 해지를 원한다고 해도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A아파트 시행사 측은 “계약서에 분명히 최초 입주개시일로부터 10년이라는 임대차 계약기간을 명시됐다. 또한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고지했는데도 갑자기 일부 계약자분들이 해지를 요구해 난감한 상황이다”며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민간임대주택법)에서도 특정 사유에 해당되지 않으면 해지할 수 없다고 명기됐다. 다만 사유가 없음에도 해지를 원한다면 새로운 임차인으로의 명의변경을 통한 조건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집값 사정이 바뀌자 관련법을 두고 꼼수해석을 벌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임대주택법 제45조에 의거 임대사업자는 임차인이 의무를 위반하거나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한 때를 제외하고는 임대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는 기간 동안 임대차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하거나 재계약을 거절할 수 없다.

해당 법은 임대사업자가 보증금 상승 등의 이유로 임차인을 일방적으로 쫓아내는 등의 불공정 사태를 막기 위한 취지로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집값이 하락하면서 되려 임차인을 나가지 못하게 하는 법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에 계약자들은 광주 서구에 중재를 요청해 시행사 측과 계약자들이 면담을 나누기도 했지만 최종 합의를 보지는 못했다. 이들은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했으며 법적 소송 절차도 밟기로 했다.

임지석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임대사업자 입장에서 주택가격이 한창 오를 때는 임차인의 계약 해지를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불합리한 가격 인상으로 임차인을 쫓아내려는 사례가 많아지다 보니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는 등 정부의 조치가 이어졌다”며 “그러나 사상 초유의 집값 하락 사태를 맞이하면서 최근 3~4개월 동안 의뢰받은 소송의 양상도 반대가 됐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한 임대차 관련법도 미비한 탓에 소송도 장기전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