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로 오월의 진실을
김혜인 사회부 기자
2023년 03월 21일(화) 16:26 |
김혜인 기자 |
먼저 북풍은 강한 바람으로 외투를 날려버리려고 했으나 바람이 세질수록 나그네가 더 옷을 여미기만 할 뿐 끝내 벗기지 못했다. 하지만 태양은 나그네에게 다가가 뜨거운 햇빛을 내리쬈고 날씨가 더워지자 나그네는 외투를 벗어던졌다. 결국 태양이 승리했다.
5·18공법단체 2곳과 대한민국 특전사동지회가 추진한 ‘포용과 화해와 용서, 대국민 공동선언식’과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를 보며 떠오른 이솝우화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광주시민의 염원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나 성격을 두고 시민사회와 추진 단체 간의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며 진상규명의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가를 수 차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지난 14일 3공수여단 소속이었던 김귀삼 중사의 증언과 고백이 진행됐다. 공교롭게도 김씨의 옆자리에는 김태수 부상자회중앙회 이사가 앉아있었고 이 둘은 광주교도소 앞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것으로 밝혀졌다.
왜 쐈냐는 질문에 김씨는 “교도소로 접근하는 모든 차량을 진압하라는 명령이 하달됐고, 이에 따라 위협사격 차원으로 자동차 바퀴를 겨냥해 쐈지만 인명피해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그러자 당시 5·18 현장에서 부상당하거나 사태를 목격했던 이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포로로 잡아들인 계엄군의 이름을 언급하며 기억나는가를 묻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전남대 일대에서 발포한 적이 없다는 김씨의 말에 내가 전남대 교정에서 총을 맞은 당사자라며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속해서 손을 들어 그날의 진실을 묻는 모습을 지켜보며 얼마나 이들이 진실에 목말랐을지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광주 시민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군홧발로 짓눌리고 몽둥이로 수 차례 두들겨 맞아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저항정신이 ‘북한군’, ‘폭도’라는 이름으로 지워질 뻔한, 지난 세월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러한 진상규명을 계엄군 당사자가 협력하고 나선다는 것에 그 누구도 말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진실을 덮은 외투를 붙잡고 벗으라며 강한 북풍을 날리는 것이 아닌, 화해의 마음으로 따뜻한 햇살을 비춘다면 진상규명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고백하고 광주시민들과 영령들에게 사죄할 수 있도록 계엄군을 향한 반목은 이제 접어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