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준 집안 명문가 명성·3대 걸쳐 사회 지도층 배출
1세대 독립운동·2세대 정치인·관료
3세대 학자로 명성
2023년 03월 16일(목) 11:29
장병준 집안 가계도
신안 장산도 일대에 사는 인동장씨 집안은 전남의 명문가로 유명하다. 구한말 장산도 일대 염전과 논밭을 가진 만석꾼 부호였다. 1915년 육지로 나와 광주에 자리를 잡았다. 장씨 집안은 3대에 걸쳐 사회 지도층을 상당수 배출했다. 1세대는 독립운동가, 2세대는 정치인과 관료·의사, 3세대는 학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1세대 독립운동가로 활동

장병준의 아버지 장진섭씨는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식들을 외지로 유학 보냈다. 장남 장병준은 일본 니혼대 법과를 나왔고 장재식 전 장관의 아버지인 둘째 장병상씨는 서울 보성전문을 거쳐 일본 메이지대를 졸업했다. 셋째 홍재씨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해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막내 장홍염씨는 서울 휘문학교와 중국 베이징국민대학을 다녔다. 이들이 장씨 집안의 1세대다.

장홍재씨가 광주학생운동에 앞장섰던 것처럼 다른 형제들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장병준씨는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 측근으로 임시정부 외무부장이었고 장홍염씨는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나와 독립군에 몸담았다. 장홍염씨는 광복 후 반민특위 검사와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다. 장병상씨는 국내에서 철도공무원을 했지만 형과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다 일본 경찰에 끌려다니기도 했다.

2세대 주축은 장병상씨 네 아들이다. 맏이인 장정식씨(사망)는 전남대 의대 교수였고 장하진 전 장관·장하성 교수의 아버지 장충식씨(83)는 한국은행을 다니다 도의원을 지냈다.

셋째인 장영식씨(80)는 장면 정부에서 경제비서관을 하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때 두 번이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한국전력 사장과 뉴욕대 교수를 역임했다. 막내인 장재식 전 장관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국세청 차장과 주택은행장을 지냈다.

● 2세대 사회참여 활발한 학자 두각

1세대가 독립운동을 했다면 2세대는 6·25 참전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아버지 장병상씨가 아들 4형제를 모두 전쟁터로 보냈다. 장정식씨는 군의관으로 참전했고 장충식씨는 미군 2사단 소속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당시 압록강 전투에서 기관총탄에 맞았던 장충식씨는 동료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고 방치했으나 뒤늦게 미군에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고등학생이던 장영식씨와 중학생이던 장재식씨는 학도병으로 지원해 낙동강 전선에 배치됐다.

●3세대 명문대 교수 등 배출

‘하’자를 돌림자로 쓰는 3세대 장씨 가문은 이름난 교수를 여럿 배출했다. 공부만 한 책상물림이 아니라 사회참여로 두각을 나타내는 학자였다. 사회참여가 활발한 것은 할아버지 대는 독립운동, 아버지 대는 6·25 참전 등을 한 집안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장충식씨 맏딸 장하진 전 장관은 학생 운동권 출신 시민운동가로 충남대 교수를 지낼 때 여성을 정치세력화하기 위해 ‘여성 정치세력 시민연대’ 창립을 주도했다. 장관을 지낸 뒤 국민시대 공동대표, 노무현재단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장 전 장관 동생 장하성 교수는 10여년 전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면서 시민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막내 장하경씨는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장하준 교수는 한국인으로는 첫 케임브리지대 교수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책 ‘사다리 걷어차기’를 비롯해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동생 장하석 교수는 런던대 과학철학과 교수를 거쳐 2010년 형이 교수로 있는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로 옮겼다. 이들의 아버지 장재식 전 장관은 “케임브리지대 700년 역사상 형제가 동시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사례는 처음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안=홍일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