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치유하다'… 광주비엔날레 전시작 첫 공개
호주 여성작가 베티 머플러 작품
이숙경 예술총감독 직접 설명
'비극적 역사' 원주민 세계 표현
“물처럼 약한 자들의 승리 내포”
2023년 03월 13일(월) 17:41
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도선인 기자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작품이 첫 공개됐다.

이숙경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13일 광주 북구 비엔날레전시관 3전시실에서 열린 작품 전시 해포식에서 광주에 도착한 해외 작품 중 처음으로 호주 여성작가인 베티 머플러(Betty Muffler)의 작품 ‘나라를 치유하다’를 공개했다.

이 감독은 첫 공개 작품에 대해 “해당 작품은 비극적인 역사를 가진 원주민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며 “검은 배경에 그려진 추상적인 선의 집합은 외지인이 알 수 없는 흔적이지만, 선주민에게 지도이자 삶의 기록이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작품 중 하나다”고 밝혔다.

베티 머플러는 호주 원주민 지역 ‘피찬차차라’ 출신 아티스트다. 이날 공개된 2018년 작품 ‘나라를 치유하다’를 비롯해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총 5개의 작품을 출품했다. 이 중 2개는 신작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어떻게 함께 살아가며 어떻게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땅을 돌볼지’에 대해 질문한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25일 앞둔 13일 3전시실에서 열린 해포식에서 박양우 대표이사와 이숙경 예술감독 등이 베티 머플러 작가의 '나라를 치유하다' 회화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나건호 기자
이 감독은 작품 공개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슬로건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에 대해 “물의 흐름은 작은 힘이지만, 결국 바위를 깨고 물길을 만든다.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약한 자들이 만든 승리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수자들의 힘은 결국 역사를 바꾼다. 그것이 정의라면, 결국 이기기 마련”이라며 “이는 광주정신과 맞닿아 있다. 부드럽고 강하지 않지만, 예술의 힘으로 승리의 의미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광주정신은 현재 진행형이라 했다. 이 감독은 “이란 히잡투쟁, 흑인 반폭력 운동, 미얀마 민주주의 투쟁 등의 비극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이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정치적인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숙경 감독은 오랜만의 한국인 감독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2006년 이후 17년 만에 한국인이 메가폰을 잡았다”며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큐레이터로 참여했었다. 이후 여러 국제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관람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해소하고 다양한 시도를 실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은 관객 중심이다. 관람 동선 곳곳에 벤치를 설치한 것도 이 때문”이라며 “관광객들에게는 좋은 여행이, 광주 시민들에게는 좋은 나들이가, 외국 관람객들에게는 한국 예술의 국제적 위상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는 오는 4월7일부터 7월 9일까지 94일간 개최된다. 해외 작품 반입은 이달초부터 시작됐으며 작품 설치 작업은 이달 중순부터 본격화될 예정이다. 총 3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운송 예산만 13억여원이 소요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은 4개의 소주제별로 전시 공간이 구획되는데, ‘은은한 광륜 (Luminous Halo)’은 광주의 정신을 영감의 원천이자 저항과 연대의 모델로 삼는다. ‘조상의 목소리(Ancestral Voices)’는 전통을 재해석해 근대성에 도전하는 예술적 실천을 탈국가적으로 조명한다. ‘일시적 주권(Transient Sovereignty)’은 후기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미술 사상이 이주, 디아스포라 같은 주제와 관련해 전개된 방식에 주목한다. ‘행성의 시간들(Planetary Times)’은 생태와 환경 정의에 대한 ‘행성적 비전’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본다. 마지막 5전시실은 전체 주제를 조망하는 작품이 설치된다.

한편 이숙경 예술감독은 홍익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26세 때 최연소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됐고 이후 영국 에섹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2007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큐레이터가 됐으며 현재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