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두리둥퉁 못방구소리 남도 들녘에 울릴 봄이 온다
●못방구
모내기때 사용 북과 북치는 일
못방구 울리는 일은 살림 ‘내고’
사람들의 마음을 ‘내는’ 의례
모내기때 사용 북과 북치는 일
못방구 울리는 일은 살림 ‘내고’
사람들의 마음을 ‘내는’ 의례
2023년 02월 23일(목) 14:06 |
영암 갈곡들소리 이윤선 촬영 |
못방구란 무엇일까
모내기할 때나 만드리(질꼬냉이) 등의 풍장굿을 할 때 사용된 북과 북치는 행위를 통칭하는 말이다. ‘못’과 ‘방구’의 두 측면을 주목할 수 있다. ‘방구’는 반고, 방고, 방구, 벅구, 버꾸, 법고 등으로 불렀다. 지난 칼럼에서 물방구와 활방구를 자세하게 다루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 사물놀이 북과 소고의 중간쯤의 크기다. 삿갓과 큰북으로 바뀐 사례도 있다. 동아시아 전반적인 패턴들을 보면 큰북과 소고 사이의 중간 사이즈 형태가 비교적 오리지널하다. 근대 이후 농악이 재구성되면서 분화하여 ‘버꾸놀이’ 등 독립적인 형태로 사용되기도 한다. 윤명철 교수가 이름 지었던 동아지중해권이 공유하는 문화다. 그 중심에 쌀농사가 있다. 논농사에는 보편적으로 이 북을 사용하였다. ‘못’은 모판, 못소리, 모내기, 모뜨기, 못짐, 못줄, 못밥, 모지기, 못일 등의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벼농사의 ‘모(싹)’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못방구’라 함은, 모내기할 때 사용하던 중간 크기 형태의 북이라 할 수 있고, 논일이나 두레 관련 일을 하면서 활용되었다고 정의할 수 있다. 발음이 유사하여 물방구 및 활방구 혹은 사장구(도자기 장구) 등과 등가의 악기로 생각하기 쉬운데, 물방구나 활방구 등이 생활 용구를 활용한 준악기인데 비해 못방구는 모내기와 관련된 북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불교의 ‘법고(法鼓)’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방구’라는 악기의 역사나 출처 혹은 내력을 좇아 오르면, 굳이 ‘못방구’라는 이름을 지어 호명했던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 기회가 되면 조목조목 소개하기로 한다.
못방구의 유래 및 역사
못방구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방구’의 내력을 불교의 법고(法鼓)나 북의 형태로서의 반고, 혹은 민속신앙으로서의 벅구 등의 사례로 확장하면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을 것이다. ‘못’이라는 접두어가 있어 ‘모내기’에 한정해야 하므로, 이앙법(移秧法)이 도입되거나 실시되었던 시기로 추정할 수 있다. 직파 중심의 벼농사가 이앙법으로 바뀐 것은 고려시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전반적으로 확대된 것은 숙종 재위 17세기 후반이다. 주목할 것은 모내기라는 용어에 담긴 속뜻이다. 모판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운 후 본판에 모를 옮기는 것을, ‘옮긴다’고 하지 않고, ‘낸다’고 한다. ‘북소리를 내다’ 등의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내는’ 일은 안에 깃들어 있는 무엇인가를 끄집어낸다는 뜻이다. ‘낳다’라는 의미도 있다. 여기에 두레농악과 모내기 노래, 못방구라는 악기의 내력이 깃들어 있다.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의례에 ‘못방구’라는 타악기가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다. 못방구의 방구는 오늘날 벅구, 버꾸, 법고 등으로 혼용하여 호명하는 타악기다. 일본의 남부에서부터 오키나와를 포함하여 대만까지, 한반도 전 해안 및 동아시아 해안지역을 관통하는 이 악기는 나라별로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나 용처가 다르다. 하지만 모내기 등의 벼농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죽끈이나 노끈 등으로 얽어매 만드는 방식은 유사하다. 북통으로 사용하는 재료를 큰나무의 속을 파서 통으로 쓴다든지 나무 조각들을 덧대어 원통을 만든다든지 다 사용한 얼멍치(어레미의 남도 말) 테두리를 활용한다든지 하는 재료 사용과 제작의 차이는 있다. 창호지를 수십 겹 덧대서 생콩을 찧어 바르거나, 들기름 등으로 기름을 칠해 종이가 탄탄하게 만들기도 하고, 각종 무명천을 잡아당겨 매고 기름 등을 발라 가죽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북통에 손잡이가 있으면 소고처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채를 쥐고 치고, 손잡이를 만들지 않은 경우는, 북끈으로 한 손을 잡아매고 다른 한 손에 채를 쥐고 친다. 못방구의 오래된 역사를 상고하니 엉거주춤이 떠오른다. 막춤을 이르는 우스갯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함을 형용하는 부사일 뿐이니, 춤도 아니고 북도 아니다. 못방구의 형태야 크든 작든 변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을 더불어 울려 쌀을 기르던 공명(共鳴)의 내력이다. 못방구에서 애오라지 읽어내야 할 교훈이라고나 할까. 두리둥퉁 두리둥퉁 못방구소리 남도 들녘에 울릴 봄이 오고 있다.
<>남도인문학팁
스스로 울던 자명고(自鳴鼓), 못방구와 못방구춤
1970년대 초 남도들노래 사진을 보면, 논두렁 바깥에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모두 못방구를 들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했지만 1950년대 초 일본영화 <7인의 사무라이> 마지막 장면에도 모내기하면서 못방구 형태의 북을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못방구의 고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시기 못방구 대신 못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논물에 잠길 듯한 긴 삿갓에 큰북을 매고 북을 치는 형태가 되었다.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버꾸놀이’로 불리는 이른바 ‘농악 벅구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도들노래의 경우, 비록 중간 크기쯤의 북이었던 못방구가 삿갓을 동반한 큰북으로 변했지만, 모내기가 갖는 민속의례와 신앙의 함의(含意), 북을 두드린다는 원시적 의미들이 내밀하게 스며들어 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이것이 불교 전래 이후 법고(法鼓)라는 용어나 의미를 차용하는 방식으로 전승되어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려시대 이앙법 전래 이후 생성된 것으로 보이는 못방구 혹은 못북은 모내기와 북을 치는 연행이 습합된 일종의 의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예컨대 전쟁할 때 진군나팔과 함께 북을 치는 행위도 다르지 않다. 사랑을 위해 뿔나팔과 북을 찢어버린 낙랑공주와 호동이야기도 연관된다. 쌀을 ‘살’로 발음하는 경상도 발음에서 보듯이, 쌀은 살과 뼈와 몸을 말하는 생명 살림의 다른 표현이다. 모내기에서의 북소리는 이 쌀을 기르기 위해 천지를 공명하는 고천제(告天祭)다. 북이 스스로 울었다는 자명고(自鳴鼓) 전설이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다. 못방구 울리는 일은 살림을 ‘내고’ 사람들의 마음을 ‘내는’ 의례다. 오래 묵혀두었던 못방구를 꺼내 먼지를 닦으려니, 문지방 펄럭이는 춘풍이 나를 속이는가. 자명고 소리에 놀란 싹들이 남도 산하를 밀고 일어서고 있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