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다큐’
2023년 02월 07일(화) 16:24
이용환 논설위원
“우리는 게임을 하고 있어.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선물로 탱크를 받을 거야.” 1997년 로베르토 베니니가 제작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때로는 거짓말이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2차 대전 말기, 아들 조슈아와 함께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귀도.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비참한 처지였지만 귀도는 아들에게 ‘게임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그는 태연하게 병정 놀이를 하듯 사형장을 향해 걸어간다. 귀도의 거짓말로 조슈아는 밝고 구김없이 자란다.

지난 2019년 독일 철학자 베티나 슈탕네트가 쓴 ‘거짓말 읽는 법’은 인류가 지난 2000년 동안 다듬어 온 거짓말의 정의를 소개한 책이다. 저자가 말한 거짓말은 ‘지극히 인간적인 능력’이다. 말과 실천을 분리할 수 있는 인간만이 거짓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짓말쟁이에 대해서도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짓말을 할 뿐만 아니라, 능숙한 거짓말 솜씨로 자기가 우월하다고 느끼는 엘리트’라고 정의한다. ‘거짓말의 힘은 그가 가진 지식에서 나온다’는 결론도 의외다.

거짓말은 인류에게 숙명이다. 종류도 여러가지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들을 위해 귀도가 한 거짓말은 ‘선의의 거짓말’이다. ‘가식의 거짓말’은 아첨처럼 남을 즐겁게 해주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반사적 이익을 생각하는 거짓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악의의 거짓말’도 있다. 특히 악의적인 거짓말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지식인의 전유물이기도 하다. ‘거짓말 읽는 법’에서 슈탕네트는 “악의적인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지식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대표와 검찰, 정치권 등이 사건의 진실을 놓고 ‘거짓말’ 공방을 벌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 대표가 검찰의 수사를 ‘소설’이라고 한데 대해 여당은 ‘다큐멘터리’라며 공세를 더하고 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한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어느 것이 소설이고 어느 것이 다큐일까. 지금의 상황에서 저런 거짓말을 과연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진실이 밝혀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거짓말이 사라지는 것일까. ‘거짓말은 지극히 인간적인 능력’이라는 슈탕네트의 주장만 귓가에 맴도는 우울한 하루가 이렇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