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최영태>윤석열 정부 지역대학 육성정책의 겉과 속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한반도 미래연구원장
2023년 02월 05일(일) 14:08
최영태 명예교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대학개혁에 관한 발언을 많이 쏟아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대학과 지자체의 유기적 협력체제 구축론이다. 그가 대학과 지자체의 협력 강화 방안으로 제시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컬 대학 30여 곳을 지정하여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광역단위 지자체 숫자가 17개인 점을 고려할 때 한 지자체에 1~3개의 글로컬 대학을 생각할 수 있다. 둘째, 대학 지원의 행·재정적 권한 상당수를 지자체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교육부가 가지고 있던 대학 재정 지원사업의 50% 이상(약 2조 원 정도)을 지자체로 넘기겠다고 했다.

겉으로만 보면 크게 환영해야 할 내용이다. 대학은 국가적 영역에서는 물론이지만 일차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지역 발전의 씽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지역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산업 분야에 대한 인적 자원 배출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학은 이런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 대학 지원이 중앙정부의 소관이다 보니 대학은 소통 채널을 지역(지자체)이 아니라 중앙정부에 집중시켰다. 대학 지원 권한의 상당 부분을 지자체에 넘긴다면 이런 문제에 큰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주호 장관이 발표한 내용에는 그냥 환영만 할 수 없는 큰 ‘까(가)시’가 담겨 있다. 정부가 글로컬 대학 지원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대규모 구조개혁 및 정원조정 △대학 간 통합(4년제, 전문대, 사이버대 통합 등) 및 학문 간 융합 등을 내세웠다. 특히 이주호 장관은 위 내용을 설명하면서 국립대학이 시립·도립대로 전환하거나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통합하는 방식을 구조개혁의 구체적 사례로 제시했다. 필자는 이게 바로 정부의 본심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국립대학의 시립·도립화 방안은 과거에도 시도한 바 있다.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대학 육성의 책임을 지자체에 넘기려 한 것이다. 이번에도 한 대학당 1천억 원씩 5년 지원이라는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미국이나 독일 등 많은 선진국에서 지자체가 대학 육성의 책임(주립대학)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시도가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책은 그 나라의 역사, 환경 등을 고려하면서 시행해야 성공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연방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고, 지방 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 비교적 잘 된 나라에서는 그게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모든 것이 수도권 중심이고 지역 간 격차도 매우 심하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대학 간 서열은 일차적으로 수도권 소재 여부 및 수도권과의 거리에 따라, 다음으로는 1인당 교육비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교육부가 글로컬 대학 지원책으로 제시한 재정 정도로는 대학 간 차이를 유발하는 원인 제거에 성공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욱 복잡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지역대학이 위기를 맞이한 원인과 배경으로는 학령인구 감소와 열악한 재정 외에 우수 학생들의 무조건적인 ‘인 서울’ 현상이 있다. 지역 거점대학들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인 서울’ 현상을 방어하는 일이다. 그런데 거점대학에 지역의 다른 중·소 대학까지 통폐합하는 과제를 떠맡으라고 한다. 이것은 지역대학은 수도권 대학과의 경쟁을 포기하고, ‘인 서울’ 현상도 눈감은 채 수도권 이남 지역 대학끼리 그냥 ‘도토리 키재기’ 식의 생존에 만족하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최근 광주전남연구원의 분리 문제가 지역의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이 사태는 곧 광주와 전남이 연구기관 하나도 통합 운영할 의지와 환경 조성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광주시와 전남도가 재정과 정책적 면에서 지역 소재 대학을 제대로 지원·육성할 수 있을까? 대학 육성의 권한을 지자체에 넘겼을 때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우리 지역의 거점 중심대학인 전남대와 조선대가 광주에 소재한 것을 놓고 광주시와 전라남도가 갈등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까? 등 여러 가지 걱정이 든다.

정부가 대학과 지역 육성책의 하나로 대학과 지자체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고 이를 진작시키기 위해 지자체에 예산 지원을 하겠다는 취지에는 적극 찬성한다. 그러나 시립·도립화를 구조개혁과 재정 지원의 핵심 조건으로 설정하고 지역대학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학에 대한 지원을 늘리되 지원을 받은 대학에 대한 조건 제시는 좀 더 신중하게, 멀리 보면서 생각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