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세이·최성주>핵심 자원수입국 이란, 전략적 상황관리 절실
72>시아파 이란, 핵문제와 시위사태
최성주 고려대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2023년 01월 30일(월) 13:42
최성주 특임교수
지난 16일 UAE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이란=UAE의 적” 발언의 여진이 이어지는 듯하다. 지난해 9월 여성의 히잡 착용 문제로 촉발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유혈진압으로 600명 가까이 사망했고 시위 주동자에 대한 사형집행으로 이란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해 있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이슬람 지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준 일대 사건이었다.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 및 서유럽이 이란의 핵개발을 적극 차단함에 따라 이란은 중국, 러시아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게 된다.

북한이 1956년 원자력 협력협정을 통해 소련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이란은 1950년대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정이 미국과 원자력 협력을 개시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핵개발을 시작한 이란은 1967년 최초의 5메가와트(MW) 실험용 원자로를 비롯해 훈련용 장비와 원자력발전소 등을 갖추기 시작한다.

원자력 능력 자립을 위해 이란의 팔레비 국왕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연료 재처리 등을 추진할 이란 원자력청을 1974년에 설치한다. 이어서, 1979년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도 가입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이은 미국 외교관 인질사건으로 미국이 외교관계를 단절함에 따라 미국과 이란은 적대관계로 돌아선다. 양국 간 원자력 협력도 중단된다. 이란은 주로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미국의 압박으로 서유럽과의 원자력 협력이 어려워지자 이란은 파키스탄 및 중국 등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란은 ‘파키스탄 핵무기의 대부’로 불리는 칸(A.Q.Khan) 박사의 네트워크를 통해 1987년부터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수입한다. 칸 박사는 이란을 비롯해 북한과 리비아 등과 확산망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불법적인 협력 채널을 통해 이란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핵무기 개발계획인 ‘아마드 프로젝트(Amad Project)’를 시행한다. 이는 무기급 핵물질의 확보와 핵무기 부품의 실험 및 독자적 핵무기의 제조를 포함한다. 이란 정부는 동 프로젝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2002년 프랑스에 있던 이란 반정부 단체 ‘국민저항평의회’는 나탄츠 우라늄 농축시설과 아라크 중수생산시설 등 이란 내의 미신고 핵시설을 폭로한다.

2006년 2월 이란 핵문제가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 이래 안보리는 총 6개의 제재 결의를 채택한다. 국제사회는 이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와 제재’라는 양면 전략을 시행해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을 극력 저지하기 위해 핵미사일 과학자를 수시로 암살하고 핵시설을 사이버 공격하는 등 독자적인 선제조치를 선호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은 이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이란과의 외교협상에 돌입했다. 2년여에 걸친 마라톤협상 끝에 2015년 7월 역사적인 이란핵합의(JCPOA)가 채택된다. JCPOA는 이란의 원심분리시설 및 중수 관련 활동, 무기급 플루토늄 추출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2018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JCPOA는 붕괴되기에 이른다. 2021년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JCPOA에의 복귀를 선언하여 일단 불씨는 살려놓은 상태다. 그런데 작년 9월 이후 이란은 국내의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러시아에 드론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 전개로 인해 JCPOA의 정상화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JCPOA가 이란의 핵개발 야욕을 근본적으로 차단하지 못한다면서 이의 파기를 부추긴다. 과거 북한과 이란, 이라크와 리비아는 대표적인 ‘확산세력’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이라크 후세인과 리비아 가다피가 제거된 이후 북한과 이란이 양대 확산세력으로 잔존해 있다.

북한의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완전한 비핵화 대신에 핵무기를 고도화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은 미국 이외 숙적인 이스라엘과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 등 지정학적 고려요소들을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계속되는 반정부 시위는 이란 정부를 국내외적으로 곤경에 빠뜨리는 상황이다. 이란이 유혈진압 방식을 버리고 개인의 자유 특히 여성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사태를 수습하길 바란다. 우리에게 이란은 원유 등 핵심 자원수입국이면서 주요 경제협력 대상국이다. 대통령의 UAE 방문 중 불거진 ‘설화(舌禍)’가 진정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상이한 종교와 정치역학 등에 따른 대(對)이슬람 외교의 민감성을 감안, 신중하면서도 전략적인 상황관리가 절실히 요구된다.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