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려인>국내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의 특성
김영술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려인 ③ 국내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의 특성
자녀들 대학생이거나 공장에 근무
결혼해 한국 거주 등 초국적 이주자
가족 단위 입국… 한국에 정착 원해
가족 재결합·경제 문제 귀환 변수로
자녀들 대학생이거나 공장에 근무
결혼해 한국 거주 등 초국적 이주자
가족 단위 입국… 한국에 정착 원해
가족 재결합·경제 문제 귀환 변수로
2023년 01월 19일(목) 14:18 |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피해 한국에 온 고려인 가족이다. |
이들은 대체로 가족 단위로 들어오고 있다. 전쟁 통이다 보니 그렇게 집단으로 탈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한국 입국 후 지인들이 있는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 이들이 안산, 인천, 광주, 경주 등으로 가는 것은 이 지역에 친인척이나 지인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중에는 자녀들이 이미 한국에 들어와 대학생이거나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는 딸이 결혼해 한국에 살기도 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은 대체로 한국에 연고가 있었다.
타냐(여, 52세)는 아들과 언니가 경주에 살고 있기에 광주에는 들렸지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가족이 있는 곳이 최선의 피난처가 되고 있다. 그녀의 언니는 전쟁 이전에 들어왔다. 타냐는 인천공항에 마중 나온 아들과 만났다. 아들은 작년 9월에 한국으로 들어왔고, 현재는 대학생이다. 아들이 전쟁 전에 한국으로 왔기에 정말 운이 좋은 경우였다. 그가 우크라이나에 있었다면 군대에 징집되었을 것이다.
또한 안나(여, 46세)는 2022년 5월 12일에 루마니아를 출발하여 카타르를 경유한 항공기에 탑승하여 오후 4시 5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55명은 인천공항에서 5시간 정도 통과 절차를 밟았다. 뉴스에는 46명이라고 보도했는데 9명 정도 정도가 더 추가된 것이었다. 이중에서 44명은 안산시, 인천광역시 등 지역으로 이동했고, 14명은 광주광역시로 이동했다. 이날 오후 늦게 14명 중에서 몇 명은 대구광역시로 이동하였다.
둘째,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은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단기방문(C-3) 비자 등으로 입국한 초국가적 이주와 순환이주 차원의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 H-2, F-4 비자를 받고 들어온 사람은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가 귀환 또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던 중에 전쟁이 발발했거나, 한국 체류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한국에 처음 온 경우만 C-3 비자를 받았다.
H-2 비자는 중국 및 구소련 지역 6개 국가(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출신 만 18세 이상 외국국적 동포들에게 주는 비자로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용이 허용된 업종의 사업주는 특례고용허가를 받아 해당 동포를 고용할 수 있다.
F-4 비자는 외국국적동포가 한국에 체류하기 위해 발급 받아야 하는 비자 중 하나이다. ‘재외동포체류자격’은 체류기간 상한이 3년이며 원칙적으로 연장이 가능하고 단순노무 활동 및 사행 행위를 제외하고는 국내에서의 모든 취업활동이 허용되는 등 광범위한 혜택이 있다. 이 비자를 가진 자가 국내거소신고를 할 경우 주민등록과 유사한 국내거소신고번호를 부여받게 된다. 신분증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대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또한 국내거소 및 이전신고를 할 경우 출입국관리법상 외국인등록 및 체류지 변경신고를 한 것으로 간주된다. 체류기간 내에 출국했다가 재입국시 재입국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C-3 비자는 관광이나 통과, 요양, 친지 방문, 친선경기, 각종 행사나 회의 참가 또는 참관, 문화예술, 일반연수, 강습, 종교의식 참석, 학술자료 수집,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목적으로 90일을 넘지 않는 기간 동안 체류하려는 외국인에게 발급이 가능한 단기 사증이다.
우크라이나 고려인이 국내 입국한 적이 있는 사람은 동포 입증서류 없이 과거와 동일 자격으로 사증을 발급받는다. 그러나 사증을 최초 신청하는 사람은 여권 또는 신분증 등으로 동포임이 입증된 사람 및 가족은 세대별 입증서류 없이 C-3 비자를 발급받는다.
이리나(여, 45세)는 폴란드 한국대사관에서 H-2 비자를 받았다. 한국 방문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2015년도에 OK프렌즈 봉사단을 통해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3개월 비자를 받았는데 약 2주일간 한국에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 있는 한인들을 지원해 주거나 한국 방문 체험 등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즉, 해외에 있는 한인들이 모국에 와서 어떻게 한국인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가정 방문을 통해 체험하는 것이다.
로사나(여, 47세)의 입국 비자는 C-3이었으며 한국 방문은 처음이었다. 한국 입국 후 출입국에 가서 동반 가족(F-1) 비자로 바꾸었다. F-1 비자 조건은 남편(배우자) 체류 조건에 따라 비자 조건 연동해서 움직이게 된다. 한국에 있는 남편 비자는 F-4다.
일부 고려인은 순환이주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이미 한국에 생활기반이 있는 경우다.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수차례 왔다 갔다 한 자들이다. 그래서 한국말도 어느 정도 구사하기도 한다.
알렉산드르(남, 40세)는 2013년부터 광주에 살고 있으며, 2023년이면 10년이 된다. 고향 방문을 하러 갔다가 전쟁이 일어났다. 운 좋게도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햇수로는 이번 입국이 3번째다. 그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출발하여 카타르를 경유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출국 심사가 끝나서 광주로 이동하여서 한밤중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경북 영천 등에서도 일을 했다. 옆에 있는 친구도 한국 입국이 2번째다. 그들은 자신들 주변에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이 많다고 한다.
셋째,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대부분은 한국 정착을 원하고 있는 자들이다. 일부는 귀환을 걱정하기도 했다. 많은 피란 고려인들은 전쟁의 시기에 역사적인 조국을 생각했다. 그들은 한국에 살기를 원한다. 한국 적응, 미래의 문제 등이 산적해 있지만, 이들 피란 고려인들은 삶에 의지를 다지고 살아가고자 했다.
옐레나(여, 50세)는 어머님이 한국에 있어서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있는 남편과 아들이 한국으로 들어올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성들은(남편과 큰아들) 군대 징집으로 인해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래도 전쟁이 끝나면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라고 한다.
율리야(여, 54세)는 연금생활자로 우크라이나가 안정되면 반드시 그곳(살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자식 4명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고, 그녀는 모든 것을 우크라이나에 두고 왔다. 그곳에 아들이 있다. 그 아들 말고 딸들은 모두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이처럼 고려인 중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잠시 전쟁 기간 피란 나온 것이며, 곧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잠깐의 피란이지 난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어디에서 잠시 머무를 것인지는 그렇게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특히 한국에 입국한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과는 달리 유럽에 머물고 있는 우크라이나인 난민들은 일차적으로 주요 이동지는 우크라이나 국경 국가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일부 난민들은 짐을 챙기기 위한 일시 입국, 외국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해서, 또는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일하거나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유로 집으로 여행했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우크라이나인 난민들은 위치가 시민으로 바로 바뀌기도 한다.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