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93> “나는 태생적 도돌이표… 걷기를 멈출 생각이 없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세 번째
2023년 01월 12일(목) 14:44
1.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2. 순례길에서 버스킹 하는 분들이 많다
3. 1,800km를 걸은 순례자의 여권
4. Pontemaceira Vella
5. Cape Finisterre. 예전에 이곳에서 신발 등을 태우면서 정화 의식을 치렀다는데 지금은 금지됐다. 흔적 남은 곳에서 나대로 의식을 진행했다.
6. Cape Finisterre.
7. Cape Finisterre. 세상의 끝이니 표지석에 ‘0.00K.M’이라고 적혀 있다.
8. 피니스테레 가는 길
9. 피니스테레와 묵시아로 가는 갈림길 표지석.
10. 순례자들과의 저녁 식사
11.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필자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도상거리 800km를 걸은 지 31일 만에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한 달 이상 걸었을 때 제일 낯설게 다가온 것은 내 외모였다. 집에서 입고 온 옷도 한 치수 정도 커졌다. 한 달 내내 빨고 입고 빨고 입어서 보풀이 일었다. 햇볕 아래에서 걷다 보니 피부가 나도 몰라보게 새까맣게 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을 때면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낯선 나와 조우했다. 새까맣게 그을리고 볼이 홀쭉해졌지만 눈동자만은 반짝 빛나고 있었다.

순례길을 걸으면 외양을 치장하는 것에서 멀어진다. 머리카락을 말리는 것은 자연바람이다. 삐치면 삐친 대로 놔둔다. 한번은 빨래 비누로 머리를 감은 적이 있다. 세면도구를 팜플로나에 두고 오기도 했지만(다시 샀지만) 빨래 비누로 머리를 감을 수 있으면 샴푸가 없어도 된다. 비누 하나로 빨래도 빨고 머리를 감을 수 있으면 짐을 줄이는 셈이다(0.1g의 무게에도 예민해진다). 하지만 엄청 머리카락이 눌어붙은 느낌 때문에 다시는 비누로 감지 않았다. 대신 샴푸로 머리를 감고 빨래도 했다.

화장은 전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거울 보는 것도 멀어진다. 어느 날 내 얼굴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궁금했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선크림만 대충 바르면 끝이다. 1시간만 지나면 땀으로 얼굴이 범벅이 된다.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내 신체 중에서 발이다. 발톱이 빠지고 물집이 잡힌 뒤로 다른 사람들보다 한 두어 시간 일찍 일어나서 걷기 전에 소독해줘야 하고 정성스레 거즈로 감아 줘야 신발 속에 겨우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신경을 써도 양쪽 검지발가락 발톱이 빠지려고 했다. 빠지되, 소란스러운 신고식 없이 빠져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발에 물집이 잡힌 뒤로 바에서 쉴 때면 무조건 신발을 벗었다. 양말까지 벗고 주문을 하고 먹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 순례자가 그랬다. 양말을 벗은 이들의 발을 살펴보면 한두 군데 이상이 있었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발걸음에서도 표시가 났다. 한쪽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한 달 이상 걸어온 순례자들은 훈장처럼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더 즐겁게 인사를 나누었다.

“올레, 부엔 까미노(안녕, 즐거운 순례길이 되길)!”



내가 27일 째 도착했던, 사리아에서는 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켈트족 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고, 중세에 이르러서야 순례자들의 중심지가 된 그곳이 현대의 순례자들에게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100km 이상을 걸어야 순례자 완주 증서를 받을 수 있는데, 사리아가 최소한의 거리 요건이 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완주증서는 받고 싶은데, 시간 여건이 여의치 않은 순례자들이 사리아에서 출발한다.

그래서인지 사리아부터 유난히 상업적인 알베르게와 바가 많다. 장애인 단체 순례자를 이끄는 사람이 순례자 여권을 한꺼번에 걷어서 도장을 찍어가기도 하고 대절한 버스에서 노인들이 무더기로 내리기도 한다. 내가 마주친, 남녀가 섞인 20명 정도 되는 한국인 모 단체 청년 들은 바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산뜻한 향기를 풍기면서 사리아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지도 않았고(숙소에서 다음 숙소까지 배낭을 옮겨주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살이 타지도 않았다. 그들은 새벽부터 걷기 시작하여 11km를 걷고 있는 나를 아주 상큼하게 따돌리고 앞서갔다. 물집이 잡히지 않은 깨끗한 발이어서 바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암암리에 ‘묵은 순례자’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새까맣게 탄 피부로, 먼지 묻은 무거운 배낭과 신발로, 물집이 잡히고 아문 흔적으로… 그래서 이런 표식(?)을 가진 순례자들이 만나면 오랜 친구처럼 출발지가 어디였는지 등 동질감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길 위에서 천사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내가 만난 천사는 걷기 시작한 지 12일 째, 같이 병원에 가준 이탈리아 출신 프란체스코였다. 스페인 의사들은 생각보다 영어를 하지 못한다. 프란체스코는 통역 및 병원비 수납을 위해 부르고스 시내 모 은행에 들르는 등의 일을 할 때 동행을 해주고 배려해주었다. 15일 째 만난 네덜란드 출신 데이비드는 그의 집 앞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여 세 달 동안 1,800km를 걸어온 남자였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되돌아갈 때도 걸어서 간다고 하니, 그는 4,000km는 기본적으로 걸어야했다. 그는 내가 물집 때문에 양 다리의 균형을 잃고 절룩거리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발목 보호대를 내게 양보했다.

이 외에도 길 위에서 많은 천사들을 만났다. 그들 때문에 내가 무사히 완주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내 몸 또한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벗겨졌던 피부에 새살이 돋고 빠졌던 발톱에 새 발톱이 돋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고 100km(피니스테레와 묵시아)를 더 걸을 수 있었고 여전히 지금도 걷고 있다. 그러고보면 나는 태생적으로 도돌이표를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끝났다 싶으면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그것. 그 한없는 순환이 내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위한 것이기에 결국은 시작도 끝도 한 몸이 된다. 이것이 가면 또 다른 ‘이것’이 올 것이기에 지금도 나는 일상에서 걷기를 멈출 생각이 없다. 도착지가 곧 출발지가 되는 반복을 기꺼이 즐기면서 말이다.



<다음 회부터는 오키나와에 관한 여행기를 7회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다음 회부터는 오키나와에 관한 여행기를 7회에 걸쳐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