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83-2> "불안·우울 장애학생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위탁교육기관 내년 초 사라져
병 치료·학업 연장 학생 대부분
“위탁기관서 증상 호전됐는데…”
전문가 “사회적 관심·협조 절실”
2022년 12월 28일(수) 18:21
광주전남 소재 한 정신건강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이 치료·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오늘날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에서 큰 상처를 입거나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대안교육을 찾는다. 이 중에서도 심각한 우울·조현병 등으로 학업이 중단된 학생들에게 대안교육기관은 훌륭한 울타리가 되어 준다. 그러나 광주·전남 학생들은 이마저도 먼 이야기가 될 위기에 처했다. 돌봄·치유·학업연장 등이 가능한 교육 기관이 사라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 “공부하고 놀고 싶지만… 적응 어려워”

김준민(19·가명)군은 지난해 다니던 고등학교를 휴학했다. 신청 사유는 ‘개인 사정’이다. 휴학을 마치고 나니 홀가분한 마음보다 옥죄였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김군은 지난 2년간 별 이유 없이 우울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김군은 평소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했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에 감정을 잘 표출하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지럼증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자, 점점 심리적으로 위축돼 갔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졌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게 꺼려졌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고립 심리’가 더욱 심해졌다. 결국 그는 병원에서 지적·공황·불안·우울장애 등을 진단받았다.

김군은 “나와 같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되레 고립될수록 밖에 나가는 걸 더 두려워하게 된다“며 “결국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나는 꿈도 있었고 이대로 학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군의 바람을 들은 부모님은 치료·학업이 병행 가능한 기관을 수소문했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 한 상담 센터에서 거주지 인근의 정신건강 대안학교를 추천받았다. 김군은 그길로 곧장 위탁 교육을 신청했다.

김군은 이곳을 두고 ‘인생 학교’라고 칭했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안정을 찾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해당 학교는 광주시교육청과 위탁 교육 계약을 진행한 기관으로, 학교생활 및 수행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장애인들에게 한시적으로 교육을 지원한다. 필수 교과목 외에도 미술·음악치료·심리상담 등 다양한 커리큘럼이 꾸려져 있다. 당연히 학업 인정도 이뤄진다.

김군은 “여기는 유일하게 ‘평범함’이 뭔지 깨닫게 해준 곳이다. 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됐다”며 “친구들과 일상을 보내며 내 문제들도 많이 좋아졌다. 한 마디로 인생이 달라졌다”고 뿌듯해했다.

● “정신건강 학교 지속 위한 지원·관심 필요”

광주·전남지역엔 두 곳의 정신건강 대안교육기관이 있다. 두 기관 모두 광주시교육청으로부터 대안교육 위탁을 받아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내년 2월을 기점으로 광주시교육청과의 계약이 종료된다.

당장 이곳에 있는 수 십 명의 학생들은 내년 초 학교를 떠나야 한다. 시 교육청이 계약 연장·새로운 위탁 기관 등을 찾고 있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

2월 계약을 종료하는 모 정신건강 교육 기관 관계자는 “아이들을 위해서 해당 교육 과정은 지속되야 된다는 입장이지만, 여러 사안을 통해 더 이상 운영하는 것은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앞으로는 장기간 입원이 가능한 대학병원이나 지자체 기관에서 맡는 게 어떨까 한다. 이 일은 책임감만 가지고 하기에는 많은 부담이 있다”고 입장을 전했다.

활동·전문가들은 정신질환 학생들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관심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광주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는 “그간 지자체·국가 등에서 (대안교육기관에) 합당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당 기관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그것은 온전히 위탁병원의 책임이 된다. 이러다 보니 다들 선뜻 맡지 않으려고 한다. 교육·치료·약물 등 전반적인 비용에 대한 지원을 관계 당국에서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구청소년센터 관계자는 “담당했던 아이들 중, 해당 기관에서 일상 회복에 성공한 학생들이 많다. 그만큼 정신건강 대안교육기관은 우리 사회에 굉장히 필요한 시설”이라며 “점차 정신질환을 앓는 학생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들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정신질환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사회 각계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