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만 첫 발 뗀 여순 사건…갈길 먼 치유와 화해
2022년 10월 13일(목) 13:06
김진영 기자
정부가 여수·순천 10·19사건(이하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45명과 유족 214명에 대해 첫 희생자 결정을 내렸다. 여순사건이 발생한 지 74년 만이다.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난 1월 21일 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첫 희생자 결정이다.

이번 결정은 정부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의 길이 열렸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극심한 이념 대립 속 발생한 제주 4·3사건과 뒤이어 발생한 여순사건은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 군·경 진압 작전 과정에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은 '손가락 총'에 지목돼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거나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과 살아남은 유족들은 이후에도 평생 '빨갱이'란 낙인이 찍힌 채 숨죽여 살아야만 했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통과되기 까지 많은 시간도 허비됐다.

제16대 국회에서 제20대 국회까지 여러 차례 법안이 발의됐으나 사회적 무관심과 군사 반란이라는 인식에 부딪혀 무산됐다. 그러다 21대 의회에서 여순사건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계기를 마련됐다. 20여년 간 국회에서 장기 표류한 셈이다.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과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갈길도 멀다.

여순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1만5000여명 가량 추정되지만, 지난 9월 현재 피해 신고는 3300여건에 불과하다. 너무 많은 세월이 흐른 탓에 수많은 희생자가 잊히거나 혹은 피해 신고를 꺼리고 있는 탓이다.

특히 증거는 사라지고 증언을 할 사람들도 얼마 남지 않아 집단학살 매장지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배·보상 문제도 남아있다. 현행법상 의료 및 생활지원금은 희생자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이번에 희생자로 결정된 45명 모두 이미 사망하면서 지원을 받지 못한다.

유족 생활지원금 지원, 특별재심 등 실질적 명예 회복과 지원을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진상규명과 함께 기념사업, 재단 설립 등 치유와 화해를 위한 대책도 뒤따라야 한다.

유족들은 여순사건을 "가해자가 없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동원된 군경들도, '손가락 총'으로 이웃을 지목해야 했던 이들 역시 모두 현대사의 비극에 휘말린 희생자들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의 명예회복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지역 정치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한 시점이다.

김진영 기자 jinyo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