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2일(수) 14:39 |
"남극해에 관해 아시나요?" 질문을 받았을 때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한반도를 포함해 지구상 육지의 70% 정도가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고, 전체 인구의 90%가 북반구에 거주하고 있으니, 일반인들에게 남반구에 위치한 남극해는 당연히 생소할 것이다. 필자 역시 학위 과정 동안에는 동해 관측과 연구를 주로 수행했었기 때문에 남극해는 교과서에서만 접할 수 있는 곳이었고, 박사 학위 취득 이후 극지연구소에서 재직하게 되면서부터 남극 관측에 참여하고 남극해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독자들의 남극해에 대한 생소함을 일부 해소해보고자, 필자가 그동안 남극해를 공부하면서 확인한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남빙양으로도 불리는 남극해는 남반구에 위치한 거대한 바다로 영어로는 'Southern Ocean' 또는 'Antarctic Ocean'이라 부른다. 남극해는 남반구에 위치한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과는 다른 특성의 바다이지만, 이들 대양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대륙이나 해저지형 등의 경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아 하나의 바다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통상적으로는 남극을 둘러싸고 시계 방향으로 순환하는 남극 순환류(Antarctic Circumpolar Current, 일명 ACC)를 남극해와 다른 대양을 구분하는 경계로 간주하며, 남극 순환류가 발달하는 남위 60도 부근을 기준으로 이보다 남쪽에 위치한 바다를 남극해라고 정의한다.
남극해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보다 그 면적은 작지만 다른 어떤 바다보다 활발한 해양 운동이 발생하는 곳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또는 지구의 열을 저장하는 거대한 천연 저장고 역할을 한다. 또한 남극해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무거운 해수가 생성되며, 대양에서 온 해수들을 차갑고 무겁게 만들어 남극 순환류를 통해 다시 대양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전지구 해양 순환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극해는 남극이라는 얼음 대륙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남극해 해수의 수온 및 순환의 변화는 남극 용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용융은 고체에서 액체로 상태가 변하는 물리적 과정으로 얼음이 녹는 것을 의미함.
보통 해양에 존재하는 해수는 물의 어는점 0℃보다 높은 수온을 지닌다. 하지만 남극해에서 관측되는 해수들은 기존 대양의 해수들보다 평균적으로 수온이 낮고, 이 0℃ 부근으로 다양한 수온 분포 모습을 보인다. 우선, 남극해 연안에서 겨울철 매우 강한 바람과 차가운 대기 조건에 의해 생성되는 해수인 대륙붕수(Shelf water)는, 수온이 약 영하 2℃ 정도로 매우 차갑고 무겁다. 이 대륙붕수가 바다에 떠 있는 얼음인 '빙붕' 하부로 유입될 경우 아주 느리고 적은 양의 용융을 발생시킨다*. 실제로 로스해, 웨델해, 그리고 동남극 부근에 위치한 빙붕들의 용융 속도가 느린 것은 바로 이 때문이며, 이 곳을 차가운 물 공동(Cold water cavity)이라고도 부른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압력이 높아져 물의 어는점이 낮아지며, 수심 200m에 있는 물의 어는점은 영하 2℃ 보다 낮음.
반면, 남극 순환류를 따라 흐르는 해수인 환남극 심층수(Circumpolar Deep Water)는 수온이 2℃ 정도로 남극해에서 발견되는 해수 중 가장 따뜻하며, 빙붕 하부로 유입될 경우 아주 빠르고 많은 양의 용융을 발생시킨다. 대표적으로 아문젠해 부근에 위치한 서남극 빙붕들이 환남극 심층수 유입으로 얼음의 용융 속도가 빠르며, 이곳을 따뜻한 물 공동(Warm water cavity)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남극해는 남극의 얼음을 항상 빠르게 녹이는 것이 아니며, 남극해에 의한 남극의 용융 정도는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최근 급격해진 기후변화 영향으로 서남극 빙붕으로 유입되는 환남극 심층수 양이 더욱 많아져 따뜻한 물 공동은 더 빠르게 녹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차가운 물 공동도 서서히 따뜻한 물 공동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측 연구도 발표되었다. 또한 많은 기후변화 관련 보고서들에서 남극해가 전지구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남극해의 지속적인 모니터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외부 강연을 다니면서 극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또 극지를 연구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많아지고 있음을 느끼는데, 극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극해에 대한 이해가 항상 함께여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