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 줄여준다는 '나비약' 함부로 드시면 안돼요"
마약류 식욕억제제 복용자 급증 ||부작용 등 처방 엄격해야 하지만 ||광주 의원서 상담 1분만에 구매 ||3년간 7억정 처방·1인당 193정|| “경각심 가지고, 예방 교육 필요”
2022년 10월 17일(월) 17:08

지난 11일 광주 서구 상무지구에 위치한 의원 2곳에서 마약류 식욕억제제 '디에타민' 총 38정을 처방받았다. 강주비 수습기자

"당연히 가능하죠. '약 타러 왔다'고 하면 검사 없이 바로 처방 가능해요."

서울 등지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식욕억제제 '디에타민'이 광주에서도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모양이 나비처럼 생겨 '나비약'이라고 불리는 '디에타민'은 '펜터민'이라는 마약 성분이 포함돼 환각, 환청 등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할수 있다. 때문에 안전사용 기준을 준수해서 처방해야 하지만 상당수의 의사가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 쉽게 처방해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쉽게 구입한 약은 SNS 등을 통해 10대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판매, 살포된다는 점에서 관계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 11일 병·의원이 밀집된 광주 서구 상무지구 일대 내과, 피부과 중 무작위로 15곳에 전화를 걸어 '디에타민 처방'을 문의했다.

그 결과, 10곳에서 '처방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약의 종류를 말하지 않고 '비만 약'을 구매하고 싶다고 할 때는 의원 측이 먼저 '디에타민이라는 약을 판매하고 있다'며 홍보하기도 했다. 또 10곳 중 9곳이 비만 여부와 관계없이 처방할 수 있다고 했다.

실구매도 수월했다. '디에타민' 취급 여부를 확인한 의원 중 2곳을 방문해보니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상담 후에 각 4주, 10일 치의 디에타민을 곧바로 처방해줬다. 두통, 우울감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례적인 설명 외에 투약 목적이나 다른 식욕억제제 복용 여부 등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이렇게 의원 2곳을 방문해 상담 시간까지 포함 약 30분 만에 총 38정의 디에타민을 처방받았다. 중복 처방을 확인하지 않아 원한다면 다른 곳에서 추가로 구매하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영주 광주약사회 약물안전이사는 "디에타민에 포함된 펜터민은 '필로폰'이라는 마약의 유사체로 중독 위험성이 매우 크다. 복용을 중단하면 금단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단순히 '살 빼는 약'이라고만 생각하고 접했다가 중독된다. 의사들이 처방 과정에서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경고했다.

지난 11일 트위터에 '디에타민 판매'를 검색하니 디에타민을 판매하는 게시글 여러 개가 떴다. 강주비 수습기자

식약처의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에 따르면 BMI(비만도를 나타내는 체질량 지수) 30 이상에 해당할 경우에만 디에타민을 처방할 수 있다. 당뇨, 고혈압 등의 합병증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BMI 27 이상이 기준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진료 시간이나 장비 여건 등의 이유로 BMI 측정을 위한 체성분 검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이에 식약처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의사가 제공한 처방·사용 정보를 분석, 오남용이 의심되는 처방 사례를 추적하고 서면으로 경고하는 등 조처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자료 제출이 이뤄져 실시간 단속이 어렵고, 적발된 경우에도 1~3개월가량의 마약류 취급 업무 정지 기간이 끝나면 다시 진료하는 등 한계가 많다.

또 구입이 쉽다 보니 복용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까지도 약에 노출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었다.

트위터 등 SNS에 '디에타민 판매'를 검색하니 '#나비약' 해시태그와 함께 '디에타민을 양도한다'는 게시글이 쏟아졌다. 미성년자도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용 마약류의 조제·투약 현황'에 따르면,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2019년 2억5054만정 △2020년 2억5371만정 △2021년 2억4495만정 처방돼 지난 3년 동안 7억정이 넘게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환자 수가 127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1인당 한 해 평균 193정을 복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부작용 위험에 따라 4주 이내 단기 처방하고 1일 1~3정 투여하게 돼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마약류 식욕억제제 중 하나인 '디에타민'. 나비 모양의 알약으로 '나비약'이라는 별칭으로 유행하고 있다. 복용 시 우울감, 환청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대웅제약 제공

전문가들은 의사들이 마약류 식욕억제제에 대한 부작용을 충분히 알리고, 예방 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광주약사회 관계자는 "의사가 처방 전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해 환자의 중복 투약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진료 시간이 짧다 보니 대부분이 잘 활용하지 않는다. 의사들이 마약류 오·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미량 한국마약퇴치본부 광주전남지부 상담실장은 "마약류의 경우 의료용이라도 중독되면 끊기가 힘들고 회복 비용도 크기 때문에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현재도 학교에서 약물 중독 예방 교육이 의무적으로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부족하다. 오남용 위험이 있는 약물을 종류별로 세세하게 교육해야 실제 상황에서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주비 인턴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