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34> 레베카 호른, 죽음의 문턱서 기록한 실존적 삶
■경험이 만들어낸 실존적 실험 예술
2022년 09월 04일(일) 17:20

1971년 미국의 미술잡지 Artnews 1월호에 실린 에세이에는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왜 지금까지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 없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당시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는데(사실 50여년이 흐른...) 지금도 미술사의 주 이론으로 적용되던 사고들은 현대 미술사에 권력으로 독점한 백인 남성들의 성차별적인 구조 뿐 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로확장되어 사회적 이슈의 숙제로 남아있다. 노클린은 '예술이란 오로지 천재적 재능을 지닌 한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 한다.' 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 천재 미술가가 탄생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환경과 교육제도 때문이라는 것이 질문의 주요 관점이었다.

이후 '페미니즘feminism' 미술사조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펼쳐지게 되었다. 이때 주목 받았던 독일 대표작가 레베카 호른(Rebecca Horn, 독일 1944년~ )은 1960년대 후반부터 퍼포먼스,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동시대 작가의 진실성을 탐구해 나가는 작업에 집중한다.

레베카 호른(Rebecca Horn)__깃털, 금속 장치, 모터_90×90×23cm_가변설치_1994년

레베카 호른(Rebecca Horn)은 1944년 독일 미헬슈타트(Michelstadt)에서 태어나 함부르크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런던의 세인트 마틴스 미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유리섬유와 폴리에스테르를 조각 재료로 다루면서 심각한 폐질환을 앓게 되어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는데, 이러한 경험이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계기가 된다. 거기에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 대한 기억이 덧입혀지면서 자아와 세계 간의 구조 관계를 탐구하는 자전적 작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의 작가적 출발은 1960년대 신체미술 및 행위예술과 관련이 깊다. 1968년경부터 신체의 일부를 길게 늘이거나 끈으로 묶거나 깃털로 감싸는 일종의 <신체조각(Body Sculpture)>을 선보였다. 첫 신체조각 작품인 《연장된 팔(Arm Extensions)》(1968)에서는 여성의 속박과 신체 학대를 다루고 있으며, 신체를 검은 깃털로 덮은 《파라다이스 미망인(Widow of Paradise)》(1975)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혼성물로 쾌락과 죽음을 상기시켰다. 1980년 이후 인체를 움직이는 기계로 대치한 설치작업으로 방향을 바꾸어 '움직이는 조각(moving sculpture)'이라 불리는 기계 설치 작업은 인체 작업의 일시성에 대해 영속성을 부여하고 무생물에 생명의 요소를 불어넣고자 작가적 열망을 담아냈다. 기계는 작가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고 기계와 인간을 동일시 혹은 조합한 작품을 통해 모든 사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퍼포먼스를 기록하던 영상은 점차 극적인 영화 형태로 발전하여 호른이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고 배우를 캐스팅해 총 3편의 영화를 완성하기도 한다. 그의 신체조각과 기계 설치작업들은 영화의 주요 모티브와 소품으로 등장하여 상징적 요소를 더해준다. 영화는 가상의 흥미로운 장치들과 그만의 독창적인 위트로 채워져 있었지만 당시 대중들에게는 마치 부조리극을 보는 듯하고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호른은 1986년 카셀 도큐멘타상(Casel Doctumenta Award), 1988년 카네기상(Carnegie Award), 2006년 파이펜브록 조각상(Piper block sculpture) 등 세계적인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파리 퐁피두센터, 런던 테이트갤러리,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졌다. 그는 올해 78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베를린과 뉴욕, 파리에 거주하며 활발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거장 현대미술가 중 한명이다.

레베카 호른(Rebecca Horn)_'유니콘' 퍼포먼스Unicorn performance_1970~72년

레베카 호른(Rebecca Horn)_Touching the walls with both hands simultaneouly_ 퍼포먼스 영상_1974년

" 깃털은 육체의 연장이다. 육신은 나중에 죽은 후에 사라지지만 육신의 연장인 깃털, 예를 들어 인간의 머리카락 같은 것들은 육신이 없어진 후에도 존재 한다. "

1974년 작품은 방 한가운데 서서 양손을 새처럼 벌리고, 손가락 끝에 막대기들을 매달아 신체를 연장시켜 양쪽 벽을 두드리며 거울을 붙여 만든 의상을 입고 거울 속에 보이는 파편화된 자신의 모습들을 더듬어 외부와의 접촉을 시도하는 실험 행위를 볼 수 있다.

호른은 결코 "나는 페미니스트(feminist) 예술가다" 라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인간(여성)의 육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나 평화와 치유, 화해 등의 큰 메시지에서는 페미니즘을 넘어선 여성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유태인 수용소에서 2년간 작업하며 만들었던 대표 작품 <부헨발트를 위한 콘서트(Concert for Buhenwald)>(1999)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저질렀던 유태인 학살행위와 이로 인한 상처들을 형상화한 것으로 "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독일에서 태어나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온 몸으로 겪으며 자랐다. 그때 느낀 처절한 고통과 아픔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이로 인해 과거 독일인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수많은 희생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치유하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평화의 하모니를 형성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졌다. 전쟁 당시 탑과 건물들이 전쟁으로 망가지고 닫혀 있었지만, 주변의 나무와 풀 같은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더라. 닫힌 건물을 예술 작품으로 새롭게 열어내며,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 시대의 고통과 상처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고 전한다. 제3의 예술가 눈으로 마주한 세상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진수로 구현하는 작가, 레베카 호른은 실존주의 프랑스 문학가 이자 도둑출신이었던 장 주네(Jean Genet, 1910~1986)의 <도둑 일기>에서 "인생을 모르고는 예술이 있을 수 없다"는 영감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실존적 삶과 경험을 담은 예술적 여정을 기록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레베카 호른(Rebecca Horn)_Touching the walls with both hands simultaneouly_ 퍼포먼스 영상_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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